영화 관련 글을 쓰고 읽다보면 드는 당연한 생각은, 영화는 어차피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정말 당연한 일인데 가끔 영화평들을 읽고 있으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맞다, 틀리다'로 접근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평론가의 글들에서 이런 점을 많이 살펴볼 수 있는데 (일반 관객들의 평은 어차피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고, 스스로 확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 평들을 보면 '이건 영화도 아니다' 수준으로 혹평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자신의 소신대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후자의 경우 여지를 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만약 어떤 영화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라는 사람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다. 그런데 B라는 사람은 돈이 아깝다, 시간을 버렸다 싶을 정도로 재미 없게 본 경우다. B는 이런 감정을 실어 여지를 전혀 두지 않는 퍽퍽한 글을 남겼다. A가 이 글을 보았다. A는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밖에는 없다. 몇몇은 자신의 영화를 과연 '제대로' 본 것인가에 대해 의문마저 갖게 된다.

그런데 과연 '제대로' 본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 '제대로' 보는 것이 존재는 할까?
영화에서 얻는 재미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감독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나름의 재미가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또 다른 영화로 소화하는 방식도 재미있는 보기의 방식이다.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맞고 틀리는 것은 없다. 예전 류승완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나눴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영화는 프린트(필름)는 하나지만, 다 다른 영화를 본다는 것이 흥미로운 것 같다'라는 말. 비단 영화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그것이 혼자의 힘으로 만들었을지언정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텐데, 감독의 의도를 모두 알아채고 감독이 주려는 재미를 100% 즐긴다면 그것 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 만의 이야기를 전개해도 즐겼으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본 이들에 대해서 '넌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영화는 정답이 없는 예술, 받아들이는 자의 것이다 라는 것과 이런 영화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옳고 그름을 강요하지 말자 라는 것이었다. 무언가 자신의 의견과 대비되는 의견을 접했을 때, '그럴 수도 있군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라는 정도로 그쳐도 좋을 것을, '영화를 도대체 제대로 본겁니까?' '이건 논할 가치도 없네요' 등의 숨막히는 말들로 받아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이런 식으로 여지를 두고 글을 쓰면서 매번 작은 딜레마에 놓이곤 하는데, 이렇게 여지를 둔 글은 여지를 두지 않은 글보다 설득력이나 힘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렇다'와 '이럴 수도 있다'의 차이인데, 가끔은 그냥 '이렇다'라고 죄다 바꿔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경우도 있다. 확실히 여지를 둔 글에게서는 글쓴이의 확신이 부족하게 느낄 수도 있으니, 이 정도를 잘 조절하는 것이 어쩌면 글 쓰기의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일 듯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첨언하고 싶은건, 나는 영화를 보는데에 있어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영화로 만난 사람들과 비교를 해보아도 나는 대부분의 영화에 있어 무척이나 몰입을 잘하는 편이다. 영화는 일단 몰입하면 크게 실망할 일은 없다. 간혹 드라마를 평할 때 보면 오랫동안 정을 쌓았던 작품을 마지막 회 하나, 장면 하나 때문에 망쳤다며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오랜 기간 그 작품에 애정을 갖고 함께 했다면 '아쉽다' 정도이지 '보상해라'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 여튼 몰입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나는 참 행복한 영화 관객이다.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실망하는 작품에게서도 주인공의 심리에 잘 빠져드니 말이다. 간혹 그래서 남들이 다 유치하다고 하는 작품에도 공감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어떠랴. 영화는 어차피 개인이 즐기는 예술인데.


2010.03.31 pm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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