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인형 OST (空気人形, OST by World's End Girlfriend)
슬픔으로 위로 받는 음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공기인형'은 그의 전작들 때문에 배두나의 출연을 접어두고서라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기대작이었다. 영화 외적으로 또 하나 관심을 갖게 된 점이라면 바로 'World's End Girlfriend' (이하 WEG)가 참여한 사운드 트랙이었다. WEG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모노 (Mono)' 때문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그들의 앨범 'Heartbreak Wonderland'의 자켓과 내한 공연에 초대 받았으니 그 전에 들어봐야지 하며 들어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그런데 정작 내한공연에는 가질 못했다;). 'Heartbreak Wonderland'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좀 묘한 것이었는데,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슬픈 감정이란 것은 그리 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매우 소소한 것으로 정리할 수도 없는, 참 듣는 사람을 무력하도록 만드는 '슬픔'이었다. 이 앨범은 이것저것 말할 것 많은 앨범이었지만 결국 남는 감정은 '슬픔'인 그런 앨범이었다.





내가 WEG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랬다. 그들의 'Heartbreak Wonderland' 앨범은 정말 좋은 앨범이었지만 우울한 날 듣고자 하는 용기가 쉽게 나지는 않는 음악이었고 (Radiohead나 Nell 등을 들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런 앨범이었다. 그런 그들의 곡이 한 두곡 정도 실린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그들의 정규 앨범에 가까운 형식의 사운드 트랙이라 '공기인형'의 OST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참여한다는 걸 미리 알고 보게 된 영화이긴 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과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지는 WEG의 음악에 다시 한번 동화될 수 밖에는 없었다. 특히 이번 사운드트랙은 감독이 WEG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알려졌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을 감명 깊게 본 이들이라면, 이 둘 간의 만남이 얼마나 적절한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 'Heartbreak Wonderland'는 어찌보면 상당히 실험적인 음악이 담긴 앨범이었다. 클래식과 엠비언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이렇다할 일반적인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음악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험적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굉장히 치밀한 앨범이기도 했다. 그래서  'Heartbreak Wonderland'를 듣고 나면 실험적임에도 이 완성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공기인형' 사운드트랙은 이런 실험적인 면은 조금 덜하지만 전체적으로 장면 장면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커다란 이야기로 연결되는 점은 역시 완성도 측면에서 짚고 넘어갈 만 하다. 사실 좋은 사운드트랙이란 완전히 음악이 인식되지 않거나 반대로 음악만 들어도 그 장면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극과 극의 상황을 들 수 있을텐데, 이 앨범의 경우는 음악을 듣고 있어도 장면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전자처럼 음악이 인식되지 않는다 라는 측면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영화에서 음악이 사용된 방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공기인형' 속 영화 음악은 '장면'에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전체적인 '이야기'에 사용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어도 어느 한 장면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계속 뇌리를 맴돌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감독이 전하려던 메시지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사운드트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작에 비해 엠비언트 느낌이 강한 실험적 곡들은 덜 배치되었지만, 무채색의 영화 톤처럼(혹은 공기처럼) 영화의 이곳저곳을 감싸며 떠도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음악이었다. 현의 사용이 더 깊어졌고 몽롱함보다는 오히려 애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슬픔'의 정서는 계속 이어진다. WEG가 만드는 슬픔의 정서는 펑펑 터지는 울음이라기 보다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냥 말없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에 가깝다. 왜 우는 지도 모르는 채 울게 되는 경험을 '공기인형' 사운드트랙은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전작에 수록되었던 '百年の窒息'를 사운드트랙을 통해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이 곡은 본래도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영화 속의 애절하고 쓸쓸함이 더해지니 또 한번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영화는 이 음악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황량하고 쓸쓸한 영화의 미장센을 위로하듯 감싸는 것은 WEG의 음악이며, 이 음악은 묘하게도 더 슬프게도, 더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공기인형' 사운드트랙은 가끔씩 꺼내어 보게 될 것 같다. 슬프거나 위로 받고 싶을 때 말이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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