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애니+다큐멘터리

2008년 칸 영화제가 주목하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전미 비평가 협회 작품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 참고로 수상은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일본 영화 ‘굿바이’였다 - 등 그 해 영화 팬들에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아리 폴만 감독의 애니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Vals Im Bashir, 2008)’ 이었다. 이 작품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중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벌어졌던 학살사건에 대해, 감독인 아리 폴만의 자전적인 시점으로 이야기 한다.





이 작품이 영화적은 물론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 번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당시 발생한 사건인데, 팔랑헤 (기독교 민병대) 당 지도자이자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시르 제마엘이 취임을 앞두고 폭탄테러로 인해 암살 당하자 팔레스타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팔랑헤 당원들이 테러범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에서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고 그 수는 무려 800 ~ 3,000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는 부녀자와 어린아이가 대부분이었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바로 이 학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사건의 영화화가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수백 명이 사망한 끔찍한 학살이었음에도 결국 어느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군은 이 작품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이 학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조명탄을 쏘며 주변을 밝게 해 팔랑헤 민병대들이 학살하는 것을 방조했다는 주장에서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그를 2001년 희생자 유가족들이 벨기에 법정에 고소했지만, 벨기에 법정은 원고 가운데 벨기에 국적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 결국 이 학살 사건으로 인해 처벌 받은 이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이후 2002년 1월 24일, 학살의 주동자였던 민병대 사령관 엘리 호베이카는 폭탄테러로 인해 암살을 당하게 된다.





역사적 사건을 영화화 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당사자(가해자 혹은 피해자)와 제3자 중 누구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느냐는 점을 들 수 있을 텐데, ‘바시르와 왈츠를’은 당시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 중 한 명으로 많은 것을 목격했던 감독 아리 폴만 본인의 기억과 경험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점은 작품에 그대로 나와 있는 것처럼, 아리 폴만 본인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많은 기억이 지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당시 함께 참전했던 동료들과 이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건을 다시 더듬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같은 영화의 전개방식은, 이 사건과 관련된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국에게 또 한 번 논란거리를 던진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인인 아리 폴만의 입장은 한 편으론 배신 행위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는 반면,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진보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땐 당시 이스라엘 군의 범죄를 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은 아리 폴만의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리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논란거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는 제 3자라 할 수 있는 양국 외에 관객들이 작품에 흥미를 갖고 빠져들게 될 만큼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영리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아리 폴만은 본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으나 이 작품은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애니메이션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개를 총으로 쏴 죽였던 것을 비롯해 자신에게 끔찍한 경험이었던 장면들을 실사로 촬영할 수는 없었던 개인적인 이유를 비롯해, 몇몇 상상과 꿈과 같은 장면들을 실사화 하기 어려웠던 - 예산 문제 역시 - 점도 있었다. 또한 본인 스스로도 아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정말 지루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워낙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터라 평범한 다큐멘터리였다면 더더욱 다가가기 어렵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 밖에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갖게 된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아마도 영화의 맨 마지막 차마 보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했을 때 그 충격이 다른 어떤 다큐나 극 영화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구성적인 면 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실 처음 ‘바시르와 왈츠를’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작품인 ‘웨이킹 라이프’나 ‘스캐너 다클리’ 등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었던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인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촬영 영상 위에 애니메이션을 입힌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백지에서부터 시작한 완벽한 애니메이션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장면을 대부분 실제로 촬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림을 새로 그렸다는 점일 텐데, 이것이 로토스코핑 기법과 같은 효과를 내긴 했지만 이것과는 또 다른 미묘한 감성과 속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실제 촬영 본을 기본으로 애니메이션화 한 것 외에도, 삽화를 디지털화 하여 각 그림을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해 한 뒤 다시 결합하는 방식 (기술)을 도입한 것도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결국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은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그 가운데 있었던 한 개인의 기억과 망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와 기억, 이 두 가지 상대적인 개념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두 가지 장르의 결합처럼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와 망각의 교차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그 노력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Blu-ray 메뉴






블루레이 메뉴 가운데 각각의 메뉴 선택 시 표시되는 노란 점의 경우, 영화 속 등장하는 노란색 조명탄의 불빛이 연상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Blu-ray : Picture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답게 탁월한 화질을 선보인다.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물씬 나는 거친 영상을 만날 수 있는 동시에, 칼 같은 선예도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이 역시 충족시켜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인물이나 움직이는 사물의 경우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분리하여 다시 결합한 결과물로서 각각의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배경의 경우 이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일반적인 배경 묘사보다는 훨씬 외곽선의 표현이 강한 편이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면 블루레이로서의 출시가 꼭 필요하지는 않았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바시르와 왈츠를’은 많은 장면을 이미지와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음으로 블루레이의 장점이 발휘되는 부분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깊은 음영의 표현은 블루레이의 고화질을 통해 좀 더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Blu-ray : Sound Quality

돌비 TrueHD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우수한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탱크의 발포음, 여러 명의 총격 시 발생하는 효과음과 중간중간 삽입된 영화음악의 전달까지. 대사 위주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특히 영화음악이 삽입된 장면에서 좀 더 강렬한 음장감을 확인해볼 수 있으며 블루레이 사운드를 좀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에 출연하는 인물들의 목소리 연기는 직접적인 출연이나 본인을 밝히기 꺼려한 이들을 제외하면 감독인 아리 폴만을 비롯해 대부분 본인이 직접 연기하고 있는데, 이들의 음성 역시 뭉개짐 없이 선명하게 전달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바시르와 왈츠를’ 블루레이에는 DVD에는 수록되지 않은 아리 폴만 감독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작품 자체가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니, 이 음성해설 트랙만큼 많은 정보를 담은 부가영상은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음성해설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와 배경이 되는 정치적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며, 극 중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인물들에 대한 뒷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당시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담 외에 애니메이션화로 인한 기술적, 연출의 변 또한 만나볼 수 있다.




감독 인터뷰와 Q&A 질의 응답에서는 대부분 영화의 특별한 형식적인 면에 대한 부가 설명과 실제 겪었던 자신의 경험에 대해,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관해 들려준다.




제작과정과 애니매틱스에서는 실제 촬영한 영상과 뼈대가 된 애니매틱스 영상을 서로 비교하여 어떤 방식으로 애니메이션화 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또한 인물의 얼굴을 표현할 때 15개의 큰 부분으로 나눈 뒤 다시 120개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작업한 과정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게도 극 영화와 같은 현실감을 부여하려 노력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었으며, 모든 부가영상은 아쉽지만 SD영상으로 수록되었다.



[총평]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인 동시에, 개인적인 전쟁의 경험과 우연히 알게 된 망각의 경험에서 시작되고 또 전개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와 같은 작품이 국내에서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될 수 있다는 것에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반갑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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