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낸 결코 작지 않은 사건

DP와 블루레이 시장에 대해



요 근래 DVD프라임(http://dvdprime.cultureland.co.kr)의 블루레이 게시판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었다. 커뮤니티의 특성상 종종 논란거리로 인해 뜨거워지는 일은 많았지만, 이번의 열기는 논란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같이 해보자는 동의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DVD프라임 (이하 DP)은 영화나 DVD/BD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글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커뮤니티로서의 강한 애착이 있는 곳이라 벌써 1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활동 외에 영광스럽게도 블루레이나 DVD의 대한 리뷰를 회원들에게 먼저 소개하는 필자로서도 활동하고 있어 더욱 애착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사실 아는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국내 2차 영상물 시장은 정말 거의 죽다시피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DVD의 부흥기 시절에는 국내 제작사들도 많았고 해외 제작사들도 국내에서 다양한 런칭 행사, 출시 때마다 호텔에서 기념 행사를 하는 등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분명 당시 DVD시장은 가능성이 보였던 시장이었다. 이제와 떠올려보면 이 때 제작사들에 출시 기념 행사에 초대받아 고급스런 음식 얻어먹고 두 손에는 다양한 기념품도 한아름 안고 돌아오던 시절이 마치 꿈만 같이 느껴질 정도다. 어쨋든 그 이후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불법다운로드와 IPTV가 대중화 되면서 (불법이 대중화 되었다니 쓰면서도 우습다) 2차 영상물 시장은 빠르게 축소되어 갔고 DVD시절이 막을 내리고 블루레이 시대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마지막 힘을 내보려고 했으나 현실은 대부분의 직배사들이 우리나라를 떠났으며, 국내 제작사들도 대부분 업종을 변경하거나 폐업을 하였고 그 많던 DVD쇼핑몰들도 대형몰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사라졌으며, 얼마남지 않은 사용자들만 이런 시장의 피해를 온몸으로 맞닥들이며 해외로 해외로 눈을 돌리며 영어 교육열을 상승시키는 웃지 못할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어쨋든 이 서론만 가지고도 논문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눈물의 역사가 존재하니 이 부분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오늘 본격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런 시장 상황 속에서 피어난 작은 사건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그것은 바로 장철수 감독의 작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블루레이 출시에 관한 일인데, DVD는 출시가 된 상황이었지만 블루레이 출시를 장담할 수 없었던 제작사 측에서는 DP를 통해 어느 정도의 수요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기를 원했고 이런 궁금증은 단순히 수요예측에 그치지 않고 결국 쉽게 말해 선공동구매 형식이 되어 제작을 위해 필요한 최소판매수량을 달성, 하마터면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블루레이 타이틀을 만나볼 수 없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블루레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DVD 리뷰를 의뢰받았을 때부터 제작사에서 블루레이를 출시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었고, 과연 최소수량 정도의 판매가 가능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도 같은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할까 라는 생각은 솔직히 하지 못했었다. 누군가는 어차피 수요를 알아보고 될 것 같으면 제작하고 부족하면 안하면 그만인, 즉 밑져야 본전인 일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밑져야 본전이라기 보다는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다들 눈짐작으로 혹은 체감하는 정도로 어려워진 블루레이 시장을 느끼고 있었다고 해도, 이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노출하며 제작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분명 해당 제작사는 물론 시장 자체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모험이었을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론 이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배수진의 심정에서 나온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적극적으로 반기는 동시에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한 쓰라린 마음도 들었다. 예전에 시장이 살아있을 때는 국내에만 다양한 한정판 혹은 특별 패키지들이 출시되기도 하는 한 편, 마이너한 작품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고 인기작들의 DVD출시를 걱정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에 반해, 요즘은 어떤 영화를 인상깊게 보고 나오면 그와 동시에 과연 이 작품이 국내에 출시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 묻게 될 정도로, 그 어떤 타이틀도 출시를 장담할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 만드는 사람은 과연 이 타이틀이 최소수량은 팔릴까를 걱정해 제작자체를 매번 고민해야 하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원하는 타이틀을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어버려 갈수록 블루레이 생활을 하기 어려워만 지는 현실.


혹자는 이런 소비자의 고민을 보고 그깟 취미생활 쯤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문화생활의 일부분이며 이미 오랫동안 영유해온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버를 조금 보태면 평생을 쌀밥 먹어온 우리나라 사람이, 이제는 국내의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도 손해만 보는 입장이라 거의 농사를 포기한 상태여서 쌀밥을 먹고 싶으면 해외에서 쌀을 수입해 먹어야 하거나, 농부와 직접적으로 딜을 해 농사 지어도 적어도 피해보지 않을 정도의 수량을 소비자가 모아야만 쌀밥을 먹을 수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블루레이 그까이거 안보면 되지'와 '우리쌀 없으면 수입해 먹거나 빵먹으면 되지'나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조상 같다는 이야기다.





어쨋든 이런 풍토 속에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블루레이 출시는 '확정' 되었다. DP를 통해 먼저 구매의사를 묻고 수량을 예측한 뒤 바로 선구매로 이어졌고, 처음에 예상했던 최소 수량 500장은 훌쩍 넘어서서 선주문만으로 1,000장을 넘어서는 대단한 사건 (이건 사건이다!)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 천장 가운데는 냉정하게 얘기해서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아마도 구매하지 않았을 분들의 숫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분들은 단순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영화를 보고 구매한 것이 아니라 국내 블루레이 시장과 DP를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투자의미의 구매가 장기적으로는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관심과 참여가 많은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서 더 많은 분들이 선주문에 참여한 것과 동시에 장철수 감독이 특별 한정판에 대해 싸인을 지원하기로 했고, 표지 커버 역시 초회 선주문 자들에게만 DVD프라임 한정판이라는 문구와 구매자의 이름 or 닉네임이 새겨진 속지까지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단순히 구매자 목록이 아니라 이 타이틀이 탄생될 수 있었던 조력자들의 이름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내 이름도 당당히 포함되었다!)



dp-001이라는 한정판 라벨을 달고 나온 타이틀이 결정되고 얼마지 않아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dp-002 타이틀에 대하나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그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걸작 '시'였다. 사실 dp-001의 제작과정도 결코 쉽지 만은 않았고 현재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어떤 제작사가 쉽게 바로 결정할 수 있을까 의문이라 dp-002에 대한 논의는 조금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는 추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DP와 제작사가 만들어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그리고 이후 진행되고 있는 '시'의 블루레이 프로젝트를 보면서, 이 업계에 몸담았었고 지금도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블루레이 시장에 작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모든 타이틀이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다면 그것은 분명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분명한 것은 도화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도 내가 지금 조금만 힘을 보태면 앞으로 미래에는 혹시나 더 영유로운, 아니 적어도 DVD시절 같은 정도의 문화생활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시장을 포기하다시피했던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런 계기를 발판 삼아 무언가 조금씩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이런 기대를 위해서 이번 DVD프라임의 프로젝트는 두손두발 들어 환영하는 동시에 지지를 넘어서 돈이든 재능이든 기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조금이나마 이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바라보고 있는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얘기라면, 이런 상황 속에서 다 같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니 가혹할 정도의 질책은 참아주시길 그리고 비판보다는 애정으로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하지만 한 때는 뛰어다녔던 아이에게), 빨리 걷는 법과 뛰는 법을 논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 말이다. 지금은 일단 걸을 수 있게 도와주자. 잘 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걷고 난 다음에도 늦지 않을테니.




두번째 프로젝트인 이창동 감독의 '시' 블루레이 타이틀도 꼭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응원, 또 응원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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