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에 '새삼스런' 이 빠졌다. 영화가 앞으로는 모두 데이터로 대체 될 것이고, 극장이란 곳이 희귀한 장소가 될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합법이든 불법이든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처음 했던 것도 벌써 수년이 흘렀다. 그 때는 단순히 씁쓸한 미래에 대한 예측 정도였는데 '새삼스럽지만' 이것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이것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불법 다운로드의 수준은 '불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문화로 확산되었으며, 내가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최소 마지노선인 '죄책감'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여력 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이야기하자면 불법 다운로드가 합법 다운로드보다 쉽고,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지언정 이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최소한의 죄책감을 갖고 부끄러운 일인 줄만이라도 잊지 말자 라는 것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은 죄책감은 커녕, 내 하드에 얼마나 많은 영화파일을 갖고 있는지와 풀HD급 화질의 소스를 구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최신영화 파일을 얻었는지가 영화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영화 본다는 사람들'에 나는 없다) 자랑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어쨋든 오늘 갑자기 이 새삼스런 이야기에 대해 말을 꺼내게 된 것은 불법다운로드를 하지 말자 라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극장 예술에서 파일형태의 데이터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가끔 이런 얘기를 꺼내면 혹자들은 극장에서 보는 영화만 영화란 말이냐 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BD나 DVD 혹은 합법적인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성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후자의 경우가 영화라는 매체의 핵심 전달 방법이 되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음반업계를 들 수 있을텐데, 최근 극소수만이 CD로 음악을 즐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mp3나 스트리밍으로 음악 자체를 즐기게 된 현상을 보자면 이것은 분명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CD가 아닌 몇백원에 다운받는 파일 형태를 선호하고 즐기기 때문에 뮤지션들은 CD형태로 제작을 할 때는 항상 모험을 해야하고, 어차피 몇백 k정도의 좋지 않은 음질과 이어폰으로 즐기게 될 음악에 사운드적인 퀄리티의 비중을 줄일 수 밖에는 없게 되었다. 현재 국내가요 시장을 보면 앨범 형태로 음반을 내기보다는 디지털 싱글과 스트리밍 서비스에 일일 차트 혹은 주간 차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게 되는 수준까지 왔는데, 이것이 주객이 전도된 대표적인 안타까운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최신 트렌드와 기술,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그대로 남아있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예술은 시대에 맞춰 변화해 왔으며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을 즐기는 소비자나 시장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가 본질을 해치는 수준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음반의 예를 계속 들어보자면 뮤지션들이 기본적으로 음반이나 앨범형태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토양과 이런 형태로 즐기는 층이 유지되는 시장에서 mp3나 스트리밍 등 형태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적응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은 후자의 변화에 본질이 큰 영향을 받아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뒤틀림이 생겨버린 현실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몇몇 감독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극장 개봉과 웹개봉을 동시에 진행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북미에서는 대여용 디스크 시장이 제법 활성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극장 상영을 걱정하고 영화가 자본에 완전히 잠식될 걱정을 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국내의 현실은 이런 암울한 미래가 (누군가에겐 더 편리한 미래겠지만) 머지 않아 찾아올 것만 같다. 영화를 만들 때 스케일이나 극장 환경을 고려하여 영상과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장면을 연출해 내는 것이 보통일텐데 이런 작품이 휴대폰의 작은 화면에서 말그대로 '재생'되길 원하는 창작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역시 음반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나 휴대폰 환경에서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이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가까워져 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워너브라더스가 '다크 나이트'를 시작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최근 페이스북에 누구보다 재미를 느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주 흥미로운 뉴스였지만, 이런 흥미와 기대보다는 점점 극장 시대가 막을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쓸쓸함이 더 느껴졌다. 시장과 문화의 변화에는 발맞춰 가야겠지만, 그것이 본질을 해칠 정도의 속도와 세기라면 조금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아마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는 더더욱 데이터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의 음식들은 배달을 하지 않고 배달음식으로 먹게 된 들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데이터화 된 영화 예술은 영화라는 매체가 담고 있는 참 맛을 과연 전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들에 있어서는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커피 맛이 쓰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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