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告白, Confessions, 2010)
지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삶에 대한 고백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등을 연출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문제작 '고백 (告白, Confessions)'을았다. 이미 전작들을 통해 독특한 색감과 강렬한 스타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의 신작이기에 기대를 가졌던 것은 물론, 미나토 가나에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 자체가 화제였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원작을 읽지 않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충격을 그대로 몸으로 다 흡수할 수 있었는데, 2000년작 '배틀로얄'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 하지만 결국 그 속에 담긴 사회적인 문제나 냉혹하리만큼 차가운 시선 때문에 더 강렬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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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날 교사 '유코 (마츠 다카코)'가 자신의 어린 딸을 죽인 살인자가 자신의 반 학생들 가운데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 '고백'은 총 5명의 다섯 가지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 유코의 고백이 가장 강렬한 것이 사실이다. 학생에게 깍득이 존댓말로 대하는 유코의 성격답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차갑고 냉철하게 조목조목 설명해 가는 이 첫 번째 고백은, 이 영화가 '누가 죽였느냐'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왜 죽였느냐', 더 나아가 그 '왜'를 둘러싼 이야기들과 이 '왜'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한다. 

영화 구성의 특성 때문만이 아니라 첫 번째 유코의 고백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어지는 다른 이들의 고백에 등장하는 직접적인 살인 장면이나 자극적인 장면들보다도 선생인 유코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때 벌어지는 교내의 상황들이 훨씬 더 지옥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교권이 무너지고 학급내 아이들 사이에서도 친구 관계가 더 이상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는 거대한 하나의 권력 집합체로 연결되어 있는, 그래서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다수의 권력에 위배되는가 아닌가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 이 중학교 한 학급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모습 중 하나였다. 하나같이 중학생의 풋풋함을 갖고 있고 꾸미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아직 어린 생기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학생들로 캐스팅한 것 역시 이런 효과를 더욱 배가 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소년, 소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갖고 있는 이들이 살고 있는,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이 지옥같은 곳을 묘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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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른 아이들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포스러운 아이들만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아이들이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어른들과 사회의 잘못을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아이들 못지 않게 악마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얼마전 개봉했던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서 잘 표현되었듯이, 큰 상처를 받고 지독한 복수를 계획한 피해자는 그 복수가 진행될 수록 본래 가해자 보다도 더한 악마같은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고백'에서 복수를 차분하게 진행해 가는 유코의 모습에서는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한 악마같은 냉혹함을 엿볼 수 있다. 나오키의 어머니의 행동과 말 역시 인정에 기인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이기적인 것에 근거했기에 또 하나의 지옥의 조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코의 후임으로 온 선생 베르테르의 캐릭터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지에 가까운 그의 캐릭터는, 비록 알지 못하고 행한 행동이나 말이라도 상대에게 죄를 범할 수 있으며, 더 잘 알려고 하지 못했거나 결국 이해하지 못한 것도 역시 어른의 죄악에 가깝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다. 더불어 교실과 학교 옥상에서 그리고 강당에서 조회 시간에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선생님(어른들)들의 모습들 역시, 방관 자체가 또 다른 가해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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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동요될 수 있는 부분들을 거의 다 제거했다는 점이다. 즉,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는 없었던 불우한 환경 속에 자란 아이라던가, 유코의 복수가 잔혹하기는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 아이의 죽음 앞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엄마의 행동으로 더 묘사한다거나, 슈야와 나오키, 미즈키의 이야기 모두 그럴 수 있는 여지는 갖고 있지만 결코 이 부분을 부각해 감정적으로 공감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유일하게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장치라면 영상미와 삽입곡 정도 일듯). 사실 이 점이 가장 이 영화에서 논란이 되는 근본의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속에서 흔히 지옥이나 지옥같은 상황을 그릴 때에는 관객이 어느 한 곳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을 두어 연민을 느끼거나,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게 끔 만드는 것이 일반적일테지만, 이 영화 '고백'은 관객이 쉽게 공감하고 마음 줄 곳을 주지 않고 그냥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을 그대로 경험토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논란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확실히 '고백'은 탈출구를 만들어 놓지 않는 구조나 다름없다. 자신도 모르게 지옥에 빠져든 사람, 지옥에 빠져들 수 밖에는 없었던 사람, 이왕 지옥에 빠져들 수 밖에는 없겠다싶어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한 사람, 자신이 지금 지옥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들 모두에게 탈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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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전작들에 비해 화려한 색감을 대폭 줄이는 대신 차가운 톤의 컬러와 영상 그리고 클로즈 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고백'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이 작품이 마치 프랭크 밀러나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과도 같은 영상과 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레이션과 슬로우 모션, 강한 콘트라스트와 타이트한 영상 그리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름다운 하늘들과 Radiohead를 비롯한 감성적인 삽입곡들까지. 감독의 전작들이 마치 형형색색의 동화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고백'은 잿빛의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화려한 색의 마술사에 가까웠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만든 흑백에 가까운 잿빛 영화을 본다는 의미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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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고백'이 담고 있는 표면적인 이야기를 들어 이 작품이 사회적으로 가당한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왜' 이런 지옥같은 고백을 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것과 이 지옥 속에서 서로 뒤엉킨 이들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떠올려보는 편이 더 약이 될 듯 하다. 


1.
  

톰 요크의 외롭고 건조한 목소리는 영화의 매마른 감성과 참 잘 어울리더군요. 진짜 Radiohead 노래가 나올 땐 '왓치맨'의 한 장면 같았어요;;


2.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블루레이 국내 출시가 확정된 상황에서 이 작품도 꼭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워낙에 영상이 한 몫 하는 작품이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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