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13인의 자객 _ 미이케 다카시의 비장한 사무라이 영화



미이케 다카시의 2010년 작 '13인의 자객 (十三人の刺客, 2010)'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특별한 추억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평소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던 나는 지난해 두 번째로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 여행의 목표 중의 하나가 일본 극장에서 일본 영화를 한 편 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신주쿠의 'WALD 9 CINEMA'이라는 제법 큰 멀티 플렉스 영화 관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작품과 이상일 감독의 '악인' 가운데 어떤 작품을 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왕이면 스크린에서 더 볼만한 작품을 선택하자는 생각에 따라 '13인의 자객'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은 터라 거의 모험에 가까운 영화 보기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때를 떠올려 보면 눈치와 분위기로 반절 정도 이해했을까 싶은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열연과 작품 전체에 드리워진 무겁고 비장한 분위기 탓에 일본 극장에서 본 영화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후 국내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에 어떤 의미에서 누구보다도 반가웠으나 사실상 단관 개봉 (그것도 이 작품의 스케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은 관에서)으로 스치듯 지나쳐버린 현실에 극장에서 제대로 볼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쳐버리기도 했었다 (또 한 번이라고 한 이유는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장 상영의 기회를 놓쳐버린 후에 사실상 국내에서 정식으로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또 없겠구나 하며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DVD출시도 아닌 블루레이 출시 소식은 그야말로 엄청난 반가움이었다.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고화질과 최고의 사운드로 즐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이케 다카시의 비장한 사무라이 영화

에도시대 말기. 아카시번(明石藩) 최고 가신인 가로(江戶) 마미야(間宮, 우치노 마사아키)가 로쥬(老中, 국정을 총괄하는 관직) 도이(土井, 히라 미키지로) 가문의 문전에서 할복자살했다. 마미야의 죽음은 타고난 잔혹한 성격으로 죄 없는 민중의 학살을 일삼는 아카시번의 영주 마츠다이라 나리츠구(松平?韶, 이나가키 고로)의 폭정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나리츠구는 쇼군 이에요시(家慶)의 동생으로 내년에 로쥬에 취임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막부를 동요시킨다. 이대로 두면 막부, 나아가 국가의 존망과 관련되리라 직감한 도이는 나리츠구 암살을 결심, 시마다 신자에몬(島田新左衛門, 야쿠쇼 코지)에게 명을 내린다. 그리하여 신자에몬은 이 거사를 치룰 사무라이 자객단을 모집하게 된다.




'13인의 자객'은 에도 말기 폭군이었던 나리츠구를 암살하기 위해 일어난 사무라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인을 구성하는 과정은 담고 있으나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기 보다는 이렇게 모인 이들이 신자에몬을 중심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사무라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시대적으로 의미를 새겨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극의 배경이 되고 있는 에도 시대 말기는 이전 과는 다르게 평온한 시기로서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흔들림을 갖게 되었던 때로 그려진다. 극 중 대사로도 등장하는 것처럼 나리츠구의 암살을 위해 모인 정예 사무라이들 조차 사람을 실제로 베어 본 이는 한 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사무라이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점점 더 의식을 갖기 힘든 때에 나리츠구라는 폭군에 대항하기 위해 다름 아닌 사무라이 정신으로서 일어나게 되는 남자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폭군으로부터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해내기 위한 목숨 건 시도가 아니라, 사무라이로서 스스로 사무라이의 삶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여기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화두들이 던져져 있는데, 미이케 다카시는 사무라이가 더 이상 본연의 소명을 다하기 힘든 시대를 배경으로 그 속에 남아있는 사무라이들의 마지막 불꽃을 그리는 동시에, 사무라이 라는 계급을 무조건 숭배하기 보다는 살짝 비틀며 고집스럽고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여지도 남겨둔다. 이세야 유스케가 연기한 산사람 코야타 캐릭터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극의 흐름을 깨는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는 너무 무겁고 사무라이만을 외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영화에 새로운 가능성과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13인의 자객'을 일반적인 사무라이 클래식으로 부르기가 어려운 것은 코야타 캐릭터도 그러하지만, 사무라이의 시대를 스스로의 손으로 마무리하는 또 다른 사무라이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떠올리기도 한다.





앞서 자막도 없이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작품이 갖고 있는 분위기와 메시지가 반절 정도나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라면, 명배우들의 열연과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만들어 낸 비장함 때문일 것이다. 미이케 다카시는 시종일관 이끌어 가던 비장함을 후반부에 들어 대규모 전투 장면을 통해 구구절절 말 없이도 더욱 증폭시킨다. 이 13명 대 수백 명의 대결이 펼쳐지는 전투는 그야말로 혈투로 이어지는데, 단순히 수적으로 열세인 주인공들의 힘에 겨운 결투여서가 아니라 사무라이로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전투여서 더욱 애절함과 간절함이 칼 끝으로부터 묻어난다. 일본의 국민 배우 야쿠쇼 코지야 말할 것도 없고, 야마다 타카유키, 타카오카 소스케 등 젊은 배우들도 13인의 1인으로서 활약하고 있으며, 앞서 말했던 이세야 유스케는 작품과는 전체적으로 한 발 떨어져 있는 코야타 라는 캐릭터를 더할 수 없이 잘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폭군 나리츠쿠는 일본의 유명한 아이돌 그룹 SMAP의 멤버인 이나가키 고로가 연기하고 있는데, 뭐랄까 이건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선택이 아주 적절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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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풀HD 화질은 장면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화질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화질이다. 지글거리는 현상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무엇보다 영상의 질감이 잘 살아있는 화질이라 할 수 있겠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좀 더 칼 같은 선예도의 화질이었더라도 좋았을 뻔 했던 영상미라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극장에서 보았던 화질을 비교해보자면 블루레이의 화질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오히려 좀 더 나은 편에 가깝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비장함을 더하는 영화 음악과 동시에 칼, 활 등 각종 병기들의 부딪힘 소리와 폭발음과 말발굽 소리 그리고 스케일과 디테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대규모 전투 장면까지, 극장에서 느꼈던 사운드적인 쾌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전투 장면은 큰 비중만큼이나 다양한 사운드적 요소들이 담겨 있는데, 폭발 신에서 우퍼 스피커의 활용도는 물론, 칼이 서로 부딪힐 때의 날카로운 충격음 그리고 화제로 인해 지글거리며 타오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만나볼 수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13인의 자객'은 본편과 간단한 예고편, 특보를 수록한 블루레이 1장과 부가영상을 수록한 DVD 한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가영상이 BD로 수록되지 않아 아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부가영상의 HD급 소스가 거의 없는 점을 반영했을 때 SE로 출시되는 DVD의 두 번째 디스크를 블루레이에 패키지로 수록한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13인의 자객> 메이킹은 근래 보기 드문 메이킹 영상으로서 무려 1시간 20분이 넘는 러닝 타임으로 수록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야쿠쇼 코지와 야마다 타카유키 등 몇몇 배우들 위주로만 소개하는 데에 그칠 줄 알았었는데, 13인을 한 명 한 명 모두 자세히 소개하며 캐릭터와 배우들의 이야기를 모두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안에서 작품에 대한 깊이와 미이케 다카시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운 메이킹 영상이었다.





'완성기념 시사회'는 2010년 8월 18일 감독과 출연진 대부분이 참석한 시사회 현장을 담고 있는데, 약 18분 분량으로서 이 영상에서 역시 어느 한 두 명에게 쏠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 한 명 한 명의 인사말과 후일담을 들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모두들 입을 모아 '굉장한 작품이 나왔다'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홍보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한 명 한 명 인터뷰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베네치아 영화제 리포트'에서는 2010년 9월 베네치아 영화제를 찾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야쿠쇼 코지, 야마다 타카유키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질의 응답에 응하는 모습과 영화제 상영 후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후 베네치아 영화제에 초대 받고 해외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된 소감에 대한 짧은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공개장면'으로는 영화 초반 등장했던 야쿠쇼 코지의 낚시 시퀀스가 수록되었으며, 이 밖에 예고편과 특보, TV Spots이 담겨있다.





[총평] 미이케 다카시의 '13인의 자객'은 그 해 일본 영화계 및 해외 영화제에서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으나, 국내에서는 작은 전용관에서 단관 개봉한 탓에 많은 관객들과 만나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더 많은 영화 팬들과 만날 기회를 영영 잃는 것이 아닌가 했었는데, 이렇듯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마지막으로 비장한 사무라이 영화 한 편이 그립다면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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