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라이스 내한공연 (Damien Rice)

기타 하나로도 가득했던 전율 그리고 재미



펜타포트에서 거의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최종 참여가 어려워지면서 만남의 기회가 미뤄졌었던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의 내한 공연이 바로 엇그제 있었다. 개인적으로 데미안 라이스는 포크 뮤직에 서서히 빠져들 때쯤 2002년 자연스럽게 알게 된 뮤지션이었는데, 남들처럼 영화 '클로저 (Closer. 2004)'로 인해 알게 된 경우는 아니었지만 인상 깊게 본 영화로서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 까지는 말 못 하겠다. 어쨋든 U2나 Radiohead 같은 밴드들의 내한 공연은 매번 꿈꾸면서도, 정작 그 만큼이나 좋아하는 데미안 라이스 같은 포크 뮤지션의 내한공연은 별로 꿈꿔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른 말로 하자면 스케일과 임팩트를 자랑하는 대형 록밴드나 뮤지션들의 경우야 '라이브'에서만 전달 받을 수 있는 감흥이라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조금만 좋아하더라도 '꼭 한 번 실제로 보고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음반만으로 전달하는 감성의 순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는 포크 뮤지션의 경우는 아마도 조금 덜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물론 이 예상이 빗나갈 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이긴 했지만, 이건 그냥 빗나간 정도가 아니었다. 데미안 라이스는 '라이브'에서만 전달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들을 모두 걷어낸 채 홀로 무대에 섬으로서, 라이브가 전달하는 새로운 종류의 감동을 만들어 냈다.





퇴근하고 겨우 시간을 맞춰 도착한 저 끝 올림픽 공원 내 올림픽 홀. 대부분의 내한공연이 그러하듯 정시에 시작하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고 오프닝 게스트가 누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오프닝 게스트가 나올 법한 시간 (8시 10분쯤?)에 누군가가 어두운 무대 위로 홀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는 준비된 기타를 매고 첫 곡을 부르기 시작했으니, 바로 데미안 라이스였다. 뭐랄까. 아직 예열도 다 안끝난 상황에서 등장한 탓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런 분위기는 그가 노래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바로 진정되었다. 멘트 없이 바로 Delicate를 연달아 불렀는데, 이 때 부터 급격하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도 몇 곡을 거의 멘트없이 바로 이어서 홀로 불렀는데, 이 때 까지만 해도 '아, 계속 이렇게 멘트 없이 노래만 듣는 공연도 괜찮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한 데미안 라이스. 그 본격적인 시작은 'Volcano'였다. 자신과 함께 노래부르고 싶은 사람은 무대 위로 올라오라는 말에 처음에는 다들 동요하지 않자, 나는 50명이 넘는 사람과도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해 봤다고 관객들을 부추겼고, 결국 이를 넘은 관객들이 무대 위로 올라 그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Volcano'를 나눠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은 올림픽 홀 같은 큰 공연장 보다도 이렇게 사람들에 둘러쌓여 부르는 그림이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었기에, 이 장면은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었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예전 지산에 벨 앤 세바스찬이 왔을 때 관객들을 무대 위로 올려 함께 춤추던 그 날의 행복한 기억이 떠올랐을 정도로, 소박하지만 너무나 행복한 장면이었다.





이후 피아노 연주로 들려준 'Rootless Tree', 그리고 이 곡이 어떤 이야기를 통해 탄생되었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한참이나 들려준 후에야 시작된 'Amie'까지. 이 때부터 앞서서 예상했던 '그냥 멘트없이 노래만 들어도 좋겠다'라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공연이 진행되었는데, 영어로 진행되었음에도 상당히 자세하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결국 데미안 라이스는 단순히 에피소드를 설명해주기 보다는 '사랑 (Love)'이라는 가치에 대해 남녀가 겪게 되는 일들, 가슴을 떨리게도 혹은 가슴을 찢어 놓을 때도, 화를 내게도, 행복하게도 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오묘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재미있는 건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었고 그냥 멘트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준이었는데도 짧은 영어 실력으로 거의 다 알아들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많은 얘기를 했는데 95% 이상 이해해버린 자신에게 놀라는 계기이기도 했다 ㅋ 어쨋든 그래서인지 그냥 음반으로 듣던 Amie와는 전혀 다른 Amie를 이 날 듣게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이 좋았는지 아니었는지는 각자 달랐을지언정 말이다 ㅎ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이 경이로웠던 것은, 그 구성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포크 뮤지션들의 공연을 가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완전히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가는 공연은 데미안 라이스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드럼을 비롯한 세션 한 명 없었으며, 그렇다고 미리 사운드를 깔고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말로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 데미안 라이스와 피아노 연주, 이렇게만 구성된 공연이었다. 공연에 오지 못한 분들은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공연이 저렇게 진행되었다면 몹시 심심했겠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텐데, 믿을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말로 무대에 비해 큰 홀이었던 올림픽 홀이 데미안 라이스 한 사람의 목소리와 기타만으로도 가득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오히려 락 적인 요소가 강한 곡에서는 가끔씩 조명이 조금 화려하게 구성되었었는데, 이마저도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목소리와 기타만으로도 충분한 공연이었다. 특히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곡들 간의 느낌이 그렇게 다르지 않은 그의 음악으로 미뤄봤을 때, 두 시간을 혼자 가득채운 라이브는 경이롭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공연을 가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쓸쓸함에 흠뻑 취해 눈물을 흘리고 오겠다'라고 했었는데, 진짜로 오롯이 전하는 그의 울림에 눈물이 글썽였다. 이런 경험은 흔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올림픽 홀 정도의 규모 공연장에서 관객 거의 전부가 완전히 숨을 죽인 채 슬픔의 감동을 받고 있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뮤지션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공연과는 다르게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오는 임팩트는 조금 덜했다. 이건 곡들을 잘 몰라서도 아니고, 감동을 덜 받아서도 물론 아니었다. 다른 공연들에서 받았던 감동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지. '와~'하는 감동이 아니라 이미 곡을 들으며 마음으로 울게 만든 그의 곡에게 보내는 또 다른 찬사였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본 공연 마지막 곡으로는 'Cannonball'을 들을 수 있었는데, 마이크도 쓰지 않고 기타도 엠프에 연결하지 않은, 이른바 '쌩톤'으로 전해졌다. 그 큰 올림픽 홀이 무대 위 데미안 라이스의 작은 목소리에 집중한 탓일까. 전혀 작지 않은 울림이 전해졌고, 행여나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아주 작게 속삭이듯 따라부르는 목소리가 더해져 나오는 소리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포크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고, 아직 'The Blower's Daughter'가 나오지 않았기에 관객 모두는 이 곡을 기다리며 조용히 앵콜을 외쳤다.





아무것도 없는 쌩톤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앵콜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암흑 속에서 'Cold Water'로 시작되었다. 여기서 무릎을 쳤다. '이런 구성이라니!' 완벽하게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와 연주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는 구성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앵콜은 커버곡 'Halleluja'로 이어졌고, 그의 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할 수 있는 'The Blower's Daughter'를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곡들을 더 좋아하기에 이미 더 큰 감동을 흠뻑 받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이 곡이 주는 임팩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당연히 이 곡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공연은 이 때부터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렀다. 갑자기 기타를 내려놓은 데미안은 무대 위 미리 마련되어 있던 테이블에 앉았고, 한 여성이 무대 위로 나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이야기와 함께 둘이서 와인을 한 잔씩 나누기 시작했는데, 이건 하나의 꽁트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서정적으로 마무리 되지 않을까 했던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에서 꽁트 마무리라니! 눈물이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웃음마저 터져나오는 상황. 그리고 이 꽁트는 'Cheers Darling'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정말로 와인 반병을 무대 위에서 마신 데미안은 비틀 거리는 연기까지 하며 이 곡을 완벽한 '라이브'로 승화시켰고, 끝까지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 뒤 웃으며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무대를 떠났다.

아...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에서 이런 마지막을 볼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지만, 공연 내내 흘렀던 감동을 깨거나 방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기에 또 다른 재미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데미안 라이스의 공연은 아주 큰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기대보다도 더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이루말할 수 없는 감동과 재미까지 선사한 그의 음악과 무대를 만난 것은, 내 생에 가장 큰 보람된 일 중 하나로 기억될 듯 하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깊은 여운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1. 공연이 모두 끝나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밖으로 나온 데미안 라이스는 공연장 복도에서 팬들에 둘러쌓여 함께 노래하고 놀았다는 후문이 ㅠㅠ 매번 겪는 일이지만, 내한 공연의 경우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보면 뮤지션과 함께 하는 행운을 종종 얻을 수 있지요.

2. 그리고 그 다음 날 홍대에 와서 몇몇 뮤지션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노래하고, 술값까지 카드로 계산했다는 후문도 ㅠㅠ 나도 그 시간에 홍대에 있었는데 ㅠ 어찌어찌해서 물어물어 가볼 수도 있었던 터라 더욱 큰 아쉬움이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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