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이라니, 일단 제목은 그럴싸 했다. 폴란스키라는 이름과 대학살이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느껴지는 조합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라일리라는 출연진은, 어지간해서는 실망하기 어렵겠다는 안전성마저 느끼게 해주었기에 주저없이 극장을 찾게 되었다. 사실 전혀 영화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보자는 주의라 이번에도 감독과 배우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코미디라는 점도,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몰랐는데, 역시나 몰랐던 것이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연극을 보았거나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았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이 네 명의 주인공이 처음 현관까지 나갔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아, 이 영화 이 공간 안에서 끝을 보겠구나!'하며 더 흥미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SB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스포일러랄 것도 없고 줄거리랄 것도 없는 것이 이건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이자 스포일러인 영화다. 각자의 직업으로 대변되는 점을 좀 더 부각하여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 그냥, 배울 만큼 배운 어른들 네 명의 아웅다웅 정도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그 '아웅다웅'이 어찌나 현실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흥미진진한지! '대학살의 신'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그럴싸하게 느껴질 정도의 티격태격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주 심플한 인트로로 시작된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작은 다툼이 일어나는데, 이 배경으로 스쳐지나쳐도 좋을 일이 얼마나 큰 (하지만 쓸데없는) 어른들의 일을 야기시키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면 역시나 '문명의 대학살'까지 운운한 어른들의 싸움과는 달리 아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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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위의 포스터 이미지와 같이 방안에 각각 위치한 네 명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이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와 심리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동작과 표정을 취하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의 변화를 보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아, 이건 아닌데'하는 지점에 빠져버릴 때가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본인 스스로를 완벽히 컨트롤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일 수록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도 될텐데, '대학살의 신'은 바로 그 점, 사회적으로 성숙한 계급 아닌 계급에 살고 있는 어른들을 아주 작은 아이들의 일로 모이게 해 놓고, 정말 유치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과정을 숨김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더 재미있는 이유는 그냥 멀쩡하게 생긴 캐릭터들이 유치한 말과 행동들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 가운데 나도 종종 살면서 범하는 실수들이 담겨 있어서 순간순간 섬짓 했기 때문이었다. 이 네 명의 대화 가운데는 짧지만 우리가 쉽게 범하곤 하는 삶의 작은 실수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뭐랄까, '내가 저런 실수를 했을 때 저렇게 하찮게 보였겠구나'라며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랄까. 정말 우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진짜 나도 별일 아닌 거 가지고 저렇게 유치하게 덤빈 적도 있었는데...'하며 웃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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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벽한 유치함을 완성하는 데에는 역시 네 명의 배우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정말 캐스팅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인데, 헐리웃에서도 지적인 이미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조디 포스터가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이 지지 않으려고 정말 목에 핏대를 세우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주장을 펼칠 때에는 코미디 이상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여기에는 조디 포스터의 연기력도 물론 한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조디 포스터라는 배우의 이미지 자체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라면 역시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캐릭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조디 포스터 못지 않은 반전 연기는 물론 무엇보다 그 '몸연기'! 선반에 기대거나 벽에 기댄 모습, 그리고 방바닥에 정말 초라하게 웅크리고 앉은 그 몸연기는 올해의 연기 후보에 올려도 좋을 정도로 참~ 볼품 없었다 (과찬임 ㅋ). 존 C.라일리 역시 나머지 세 명과는 조금 다르게 능청을 부리며 이 셋을 비꼬는 듯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도 극도로 유치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했으며, 케이트 윈슬렛은 의도치 않은 한 방(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그 것!)과 더불어 세련됨과 정제됨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 지를 정말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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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이 네 명의 배우가 유치찬란한 연기를 멋지게 연기했는지, 이제는 스틸컷 속 이들의 얼굴만 보아도 절로 '큭큭'하며 웃음이 날 정도다. 영화의 러닝타임과 영화 속 리얼타임이 동일하고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네 명의 '어른'들 밖에는 없지만, 무언가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를 만난 듯한 그런 영화였다.
1. 처음 원작에 대해서 몰랐을 때에는 폴란스키가 홍상수 영화를 찍었구나 싶었어요 ㅋ
2. 아, 홍상수 영화와의 차이점이라면 배우의 수는 비슷하지만 스텝의 수는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점
3. '다즐링'은 최소한 저에게는 유행되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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