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
세월의 무상함 보다는 성숙함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에단 호크, 줄리 델피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작품이었다. 두 작품 사이에 10년 가까운 텀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시간을 고스란히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적용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비포 선셋' 이후 다시 9년. 이들은 '비포 미드나잇'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찾아왔다. 제시 (에단 호크)와 셀린느 (줄리 델피)는 어느 덧 41살이 되었고, 관객 역시 이들과 고스란히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 버렸다.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은 전혀 의외의 시점과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 Sony Pictures Classics. All rights reserved
당연히(?) 이번에도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할 것만 같았던 영화는, 서로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자녀를 두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스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온 제시와 셀린느의 가족은 여느 부부가 그렇듯 아이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 삶과 사랑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를 하고 그리고는 정말로 오랜만에, 하지만 관객들로서는 가장 기다렸을 두 사람 만의 저녁 시간을 갖게 된다.
전작들이 그러하였듯이 '비포 미드나잇'도 이렇다 할 줄거리라고 할 것이 거의 없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또 한 번 이 두 캐릭터를 두고 끊임없는 대화의 대화를 이어간다. 거의 러닝 타임의 전부가 대화로만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결코 수다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그 대화의 전개 양상이나 이야기 거리가 우리도 삶에서 자주 겪게 되는 것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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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휴양지로서 그리스라는 곳을 택한 것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제시와 셀린느가 나누는 대화를 쭉 듣고 있노라니 왜 그리스를 선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비포 미드나잇'은 사랑의 근원에 대해 다시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오랜 시간 사랑해왔던 둘 이 처음의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의 근원 혹은 그 정의에 대해 한 번 더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했다. 한참을 육아를 위해 인생을 보내다가 오랜 만에 서로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된 제시와 셀린느는 자신들이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부터 지금 사랑해 오기 까지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여느 연인들이 다툴 때 처럼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감정을 비껴 가던 날 선 대화들은, 결국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에 까지 닿게 되고 서로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까지 이르게 된다.
이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연인들 간의 대화가 1차적으로 특별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굉장히 디테일 한 삶의 묘사 때문이었다. 즉, 평범하고 보편적인 다툼의 요소들로 인해 오히려 한참을 이야기하는 데도 집중해서 그 둘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둘째는 이 작품만이 갖는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영화처럼 아름다운 만남과 사랑을 나누었던 이들을 보았었고 또 이들과 똑같은 세월을 함께 한 관객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은 이들의 대화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너무 나도 나와 여자친구 사이의 관계를 문득 문득 떠올려 보게 만들고, 앞으로를 내다보게 만들어 더 깊이 와 닿는 대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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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다투고 나서 해변가 카페에 앉아 나누는 이 둘의 대화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왜 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것 때문 이라기 보단, 오히려 그래도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라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남녀가 지내다 다투고 화해하고 하는 것이 전부인 시놉시스인데, 그 시놉시스가 얼마나 정교하게 실제 남녀 사이에 근거해서 만들어 졌던 지 나 외에도 수 많은 전 세계의 관객들이 '이건 내 얘기야' 하고 보게 될 듯 하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커플의 미래의 이야기이거나 과거의 이야기 임은 분명할 것이다.
세월의 무상 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보다는 성숙함, 부정하고 싶지 않은 성숙함을 담아낸 멋진 어느 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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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마지막 장면의 대화를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오래 연애를 했다 거나 오래 결혼 생활을 한 이들이라면 무언가 느껴질 수 밖에는 없는 장면이 될 거에요.
2. 어디선가 이 작품이 마지막 편이 될 것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정말 안타까울 것 같아요. 제시와 셀린느가 더 나이를 먹고 등장하는 '비포 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ㅠ 2020년 쯤 나올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3. 줄리 델피의 깜짝 노출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의도를 갖고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 장면을 가져갔다는 생각 도요.
4. 영화 음악도 참 좋았습니다. 국내 발매된 '비포 미드나잇' 사운드트랙에 해설지를 제가 쓰기도 했는데, 영화 만큼이나 잔잔하면서도 편안해 지는 음악들이 담겨 있어요.
5. 홍주희 씨가 번역을 맡았는데 아슬아슬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역시 요새 유행하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긴 해요.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번역이 누구인지 인지할 정도이긴 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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