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2013)
사건과 배경의 사이에서
본 시리즈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의 신작 '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2013)'를 보았다. 폴 그린그래스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장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에는 몇 가지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이미 '블러디 선데이'나 '플라이트 93'과 같이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룰 때 제 3자인 관객을 얼마나 그 사건 속으로 끌어들일까 하는 것과 이 사건 묘사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까 하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건 기대만이라기 보다는 동시에 궁금한 점이라고 해야 할 텐데, '캡틴 필립스'는 그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지는 못한 작품 같았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 이야기는 실화라는 사실을 제외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인질극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관건은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사건 속에 관객들을 얼마나 몰입시키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폴 그린그래스는 본인의 특기인 핸드헬드 촬영 기법과 이야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음을 통해,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필립스의 이야기에 땀을 쥐도록 만든다. 사실 허구로 만들어진 인질극들에 비하자면 '캡틴 필립스'의 인질극 과정은 별다른 극적인 에피소드가 없는 편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인질극 영화였다면 선택했을 몇 가지 극적인 요소들은 이 영화는 거의 선택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상당히 단순하지만 한 가지 (필립스와 소말리아 해적과의 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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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적으로 '캡틴 필립스'를 보며 떠올렸던 건 '리더'와 그의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납치 사건을 맞닥들이게 되는 선장 필립스 (톰 행크스)를 중심으로, 이 납치 임무를 지휘하게 되는 소말리아 납치범의 리더의 결정과 선택에 주목한다. 단순히 보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필립스에게만 집중된 듯 하지만, 사실은 이 두 인물이 거의 대등한 비중을 가지고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립스는 더 직접적으로 그에게 '니가 리더잖아'라고 묻기도 한다. 따지고보면, 납치 이전이 필립스가 리더로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다뤘다면, 필립스를 납치하고 나서는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다뤘다고 할 수 있겠다. 처한 상황만 보면 오히려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가 훨씬 더 어려움에 놓인 것 처럼 보인다. 필립스는 이런 상황에 항상 준비해왔고 적절한 메뉴얼도 있는 상황이지만, 소말리아 해적은 본래 해적도 아닐 뿐더러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더더욱 리더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영화는 오히려 이 준비되지 않은 리더를 준비된 리더인 필립스가 돕는 듯한 양상을 보여주면서, 단순한 인질극이 아닌 다른 긴장감을 갖은 관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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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필립스'의 처음 시작은 조금 달랐다. 평범한 가장인 필립스의 일상을 보여준 것 뿐만 아니라, 인질극을 벌이게 되는 소말리아 인들의 시작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시작을 보고서 나는 '아, 이 영화가 단순히 인질극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소말리아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나 보구나!'라며 더 기대를 갖은 것이 사실인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폴 그린그래스의 의도는 조금은 모호한 느낌이었다. 분명 영화는 필립스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의 심리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필립스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원래부터 해적이 아니라 어부였다는 사실이 강조되며, 그들 역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이들이라는 걸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와 비교되는 이미지로 이 인질극을 해결하려는 미해군과 네이비실 작전팀의 모습은 기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리된 모습이다. 즉, 네이비실이 인질극을 해결하는 장면을 보고나면 '와, 멋지다'라는 느낌 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소말리아 해적을 동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분명 이 영화엔 두 가지 시선이 다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소말리아의 현실을, 그 배경을 더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어부인 그들이 해적이 될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 그것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왜 없겠냐는 물음에 그저 대답하지 않았던 소말리아의 고통스런 현실을 조금만 더 보여주었더라면, 이 인질극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요소를 어느 정도 다루고 있음에도 결국엔 필립스 만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것이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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