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투기 (2013)

계속하는 것은 힘이 된다



'잉투기'를 보았다. 이미 시사회를 통해 관계자들로부터 신선하다, 제2의 류승완 류승범 형제다 라는 등 (이런 표현 개인적으로는 제일 안 좋아하지만;;)의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보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기대 만큼 좋은 작품이었다. 언제부턴 가 '청춘'이나 '젊은이'들의 현실을 논하는 작품들은 모두 다 전형적인 전개로 이어졌고 캐릭터들도 너무 전형적이라 오히려 그 작품이 추구하려 던 현실 감과는 전혀 다르게, 비현실적이고 만들어진 캐릭터 같은 이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런 측면에서 '잉투기'의 청춘은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어쩌면 가장 특이하고 긱(Geek)한 청춘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과장하지 않고 판타지로 나아가지도 않으며 그냥 있는 그대로를 감싸 안는 듯한 이야기가 좋았다.



ⓒ KAFA Film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많은 부분을 실화에 근거하고 있는데, '칡콩팥' '젖존슨' 등의 닉네임도 그렇고, 디씨인사이드를 통해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과 지명, 장소 등을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 디씨인사이드를 이용하는 갤러 들이라면 또 다른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잉투기'는 결코 그들 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가끔 단편 들을 통해 TV에서 보여주는 것 말고 실제 젊은이들이 즐기고 있는 독특하지만 그리 생소하지는 않은 문화에 대해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그저 특이한 문화를 소개하거나 그 생경 함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잉투기'는 역시 같은 생경 함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것의 디테일에 집중하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몰락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무너져 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있다. 제목 만 놓고 보았을 땐 현실에서 잉여로 불리는 청춘들이 벌이는 작은 사건에 기반하여 현재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메시지까지 전개 되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잉투기'는 참 담백했고,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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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장르적 매력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엄태화 감독은 이 작품을 완전한 장르 영화에 두려 하지 않으면서도 장르 영화 만이 갖는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작은 장치들을 배치하고 있다. 서부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 사용도 그렇고, '젖존슨'을 찾아가는 미스테리 구조는 얼핏 이 영화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음에도 은근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자칫 미스테리로 인해 본래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흔들릴 수도 있었으나 딱 매력적일 정도로만 장르를 활용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한 영화 안에 다양한 이야기,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나, 인물, 설정을 찾아보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잉투기'에도 그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젖존슨'을 추적하다가 발견하게 되는 아이돌 그룹 '볼케이노'는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는데, 그들의 곡 '데칼코마니'와 그 뮤직비디오는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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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가 중반까지 진행될 때까지도 '아, 무언가 좀 아쉽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태식과 영자, 희준의 이야기는 분명 나아가고 있었으나 갈 곳을 잃은 듯도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답답함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 수록 이 영화의 작법이 이해되기, 아니 공감 되기 시작했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땐 무언가 뭉클 하는 감정 마저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잉투기'는 쉽게 부릴 수 있는 욕심을 끝내 부리지 않는 절제하는 영화처럼 보이는데, 보통의 이런 데뷔 작이 주체하기 힘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에 포커스와 매력이 있는 것과는 달리, '잉투기'는 상당한 절제가 엿보였다. 만약 그냥 에너지를 끝까지 쏟아내는 방식이었다면, 아마 영화는 겉으로 보여지는 힘은 더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태식의 분노와 심정은 더 큰 공감을 얻었을 수도 있고, 영자의 행동 역시 오히려 더 큰 통쾌함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잉투기'는 거기서 멈췄다. 아니 세상이 바라는 방식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잉여로 불리는 이들은 세상이 주목하고 공감하는 방식으로 응어리를 해소하는 대신, 비록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자신 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계속하는 것을 택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그들 만이 이해하는 작지만 큰 통쾌함이 있는 동시에 한 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끌어 안을 수 밖에는 없는 쓸쓸한 정서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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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은 참 인상적이었다. 결국 그들을 둘러 싼 현실이 이들을 바라보기엔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모습이지만, 태식과 영자, 희준이 과연 무너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은 자신 만의 방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쩌면 반드시 나아갈 필요조차 못 느끼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계속 했고, 영화 속 문구처럼 계속하는 것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잉투기'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좀 울컥했다.



1. 본문에도 썼지만 볼케이노의 데칼코마니는 꼭 한 번 라이브로 듣고 싶어요 ㅎ

2. 영자 역을 연기한 류혜영 배우는 단연 눈에 띄네요. 다른 작품도 기대됩니다!

3. 무드살롱의 '한강블루스'도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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