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

모든 것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설화



지브리의 신작이자 다카하다 이사오의 신작이라는 이유 만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된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를 보았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의 포스터를 만났을 때는 손 안에 담긴 작은 공주의 모습에 '아, 저런 작은 크기의 공주가 겪는 이야기구나'라고 마냥 생각했었는데, 이야기의 전개는 전혀 달랐다. 전혀 다르긴 했지만 '가구야공주 이야기'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설화인 ‘다케토리 이야기 (竹取物語)'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다케토리 이야기라는 설화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지만, 어느 나라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설화 들이 그러하듯이 다케토리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구조라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설화에서 가구야를 데리러 온 달의 사자가 “가구야공주님은 죄를 저질러서 이 땅에 내려와, 너희처럼 천한 자들 집에 잠시 계신 것이다. 그 죄를 갚는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렇게 모시러 왔다”라는 부분에 대해 감독은 가구야가 달에서 저지른 죄는 어떤 죄며, 달과의 약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출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라는 내용을 보았는데, 이미 이 설화에 너무도 익숙한 일본인들에게는 다카하다 이사오의 이 또 다른 생각의 전환이 새롭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설화의 내용이라는 것이 혹은 교훈이라는 것이 오늘 날에 와서 보면 너무 진부하고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그 새삼스러운 것들의 감정이 모두 솜털이 하나 하나 서 듯 살아나 가슴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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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배경을 떠나서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많은 것을 되돌아 보게 만들었는데, 일단 가장 첫 번째로는 공주의 어린 시절을 보낸 대나무 숲과 그 곳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극장에도 부모들과 온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그 아이들이 이 장면을 보고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나 같은 어른에겐 그저 잠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모습. 풀과 들에서 뛰 놀고, 특별한 무엇이 없어도 그저 자연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그 때가 요즘 아이들에겐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했다. 영화 속에서도 공주의 어린 시절은 훗날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기 때문에 다카하다 이사오는 이 어린 시절을 더 담백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은 너무 단순하고 순수해서 더 기억에 남는 그런 장면들이었다. 한 편으론 다시 그런 시절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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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이 작품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부모의 관련된 정서다.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설화에 근거해 판타지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너무 명백한 부모님에 관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낸 부모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아주 조용하게, 대놓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죄송스러워 아주 조용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자, 어쩌면 이제는 스스로가 부모가 되어 알게 된 그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 하겠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바로 그런 시점에서 작용한다. 공주와 부모와의 거리도 시종일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는 부모의 행동들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영화 스스로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영화의 감정선은 조용히 터져 나온다. 내내 돌아가고 싶었으나 결국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땐 남아있는 것이 훨씬 행복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그 회환과 후회의 감정, 미안함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아주 조용하게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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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 굳이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영화 속 이별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막상 이별을 하게 될 땐 그리 슬플 수가 없었다. 뭐랄까 이 작품이 이 회환과 슬픔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담백하면서도 몹시 간절하달까. 과장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을 최대한 그대로 담으려 영화가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다카하다 이사오가 선택한 수묵화스럽고 스케치만 한 듯한 느낌의 담백한 작화는, 처음에는 빈 듯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그 빈 공간에 감정이 스며들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을 주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요즘 같이 디테일로 꽉꽉 채워진 애니메이션 들에 비해 여백이 있는 이 작화는,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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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영화보며 잘 울컥하는 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데 옆에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아이가 우는 탓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는 단순히 영화 속 이별이 슬퍼서 울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우는 아이와 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이 영화 속 정서와 겹쳐져 더 눈물이 나버렸다. 아직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기 전에도 이 정도인데, 만약 나중에 딸 아이를 낳게 되면 이런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참으며 볼 수 있을까.


참 좋은 작품을 보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tudio Ghibli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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