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The Throne, 2014)
이야기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력
아마 많은 이들이 사도세자 이야기가 또 한 번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이미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인데 더 할 이야기가 있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도세자 이야기는 조선왕조의 수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준익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최대한 다른 시각으로, 즉 역사적 의미나 더 정확한 역사 구현이 아닌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연으로 사도세자 이야기를 풀어냈다.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와 당시 왕이었던 영조의 역사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영조 그리고 아버지가 조선의 왕이었던 아들 세자의 이야기에 깊게 파고 들었다.
ⓒ (주)타이거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사도세자 이야기가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로 소개되었다고는 하나 이전에 관객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감안하지 않는다 해도 '사도'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한다. 이준익의 전작 '왕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영화 '사도'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비극과 깊은 슬픔이다. 영화는 이 비극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플래시백 형태로 보여준다. 즉, 영화의 첫 장면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극적 사건을 미리 보여주고,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 지를 보여줌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시작부터 비극적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것은 영화가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의 기운이 감도는 작품이다. 또한 그 비극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걸 (굳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느끼게 함으로서, 인물들의 슬픔이 더 깊게 느껴지도록 한다. 영화가 영조와 세자, 특히 세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로움 그 자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운명에 처한 것도 애처로운데, 그가 바랐던 것이 어쩌면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로 세자를 비극적 운명을 자처했다기 보다는 선택권 없이 놓여 버린 가여운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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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그 영화의 애처로운 시각에 관한 것인데, 세자와 그를 지지하는 인물들은 물론, 그를 시기하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인물들조차 날이 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통 극 중 인물을 관객이 애처롭게 여기도록 만드는 방식으로는 주인공과 다른 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 더 가혹하게 주인공을 밀어 붙임으로서 그 효과가 더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는 대표적인 대립 구도에 서 있는 영조의 묘사 방법은 물론이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여러 가신들과 인물들에게서도 그러한 가혹함 혹은 날 섬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 '사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자에 대한 안쓰러워 하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모든 인물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함으로서, 관객들이 세자에게 더 큰 감정적 몰입과 동정의 마음을 갖도록 했고, 그것은 정확히 통했다.
'사도'가 슬픔을 전하는 방식은 주인공을 사면초가로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사면초가에 운명적으로 놓여버린 인물을 애처롭게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주변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을 극대화 한 인물이자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영조의 묘사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영조라는 캐릭터를 철저하게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려 한 것이 그것이다. 즉, 겉으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심이 아니었던, 혹은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송강호라는 배우를 통해 120%로 표현해 낸다. 예전에 '색, 계'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배우의 영화 외적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겨우가 있는데, '사도' 역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인상이 영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잘 모르는 배우이거나 악당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더라면 아마 영조의 깊은 진심이 미처 다 전달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강호라는 호소력 짙은 배우가 이를 연기함으로서, 관객은 최소한 좀 더 영조의 진심을 듣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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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역시 영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배우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연기력 그 자체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인데, 유아인이 최근 작 '베테랑'에서 악역을 연기했음에도 워낙 잘 한 덕에 그 초점이 연기력으로 집중되었던 것은, '사도'를 만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유아인이 연기한 세자는 그러한 기대를 넘어서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사도 세자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거의 연달아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조태오가 아직도 생생한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짧은 시간에 완벽히 사도 세자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을 만큼 유아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만약 올해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연기력 만으로 꼽자면 이 영화 '사도'를 주저 없이 꼽을 만큼, 유아인과 송강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설득력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영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결국 이 비극적 운명에 놓여야만 했던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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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 속 이야기가 너무 슬픔과 비극을 강조할 땐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분명 비극을 감정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설사 강요라 해도 넘어가고 싶을 만큼의 힘을 가진 비극이었다. 그리고 '왕의 남자' 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때 한 명의 인물을 깊이 그리워 하게 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아인은 지금이 전성기다. 그가 만든 사도 세자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사도'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1. 전 워낙 사전 정보를 얻지 않은 터라 문근영이 나오는 줄도 몰랐어요;;; 후반부의 분장은 좀 충격;;;
2. 소지섭이 깜짝 등장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몰랐더라도 영화를 보게 되면 그가 분명 나오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정도로 닮은 아역이 나옵니다 ㅎ
3. 좀 가벼운 얘기로 영화 속 영조와 사도 세자의 이야기는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 딱 어울리는 주제라는 생각이 ㅋ
예법과 공부를 엄하게 가리켜 훌륭한 왕으로 자라길 바랐던 아버지와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간절했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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