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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는 압도적인 미장센과 진취적인 이야기 그리고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캐릭터가 위태롭고 매혹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총 3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숙희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2부는 히데코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녀의 입장으로 1부 벌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고, 3부에서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종결지으며 두 여인을 비롯해 백작과 코우즈키의 이야기도 모두 마무리 한다.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1,2부의 제목은 아가씨고 3부의 제목은 아저씨'라고도 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1부의 이야기는 숙희의 입장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히데코와 백작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여주는데, 반전의 요소가 있지만 결코 반전을 위한 구성이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진실이 무엇인지 2부를 통해 소개한 뒤 영화는 3부를 통해 4명의 주요 캐릭터들을 각각 마무리 한다. 즉, 3부는 종결, 해결의 측면 혹은 목적이 강한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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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근래 동성애를 다룬 좋은 영화 중 하나였던 토드 헤인즈의 '캐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캐롤'은 말 그대로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미묘한 감정 선을 유려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박찬욱의 '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는 있지만 동성 간의 사랑이 중심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 중심의 세계 관을 풍자하고 여성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향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즉, 박찬욱에겐 동성애라는 소재가 더 이상 사회 통념 하에 극복해야 할 과제라기 보다는 이미 극복한 다음의 이야기, 즉 '동성애가 더이상 그렇게 특별한 일이야?'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스텝으로 건너 뛴 듯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와 감정을 '캐롤'의 그것과 1:1 비교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서로가 자신의 삶의 굴레를 깨고 나아가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구원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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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아도,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두 여자 인물들에 비해 두 남성 캐릭터인 백작과 코우즈키의 모습은 직접적인 형태로 풍자되고 하찮게 묘사되고 마무리 되는 구조를 담고 있음에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 영화를 추구하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영화가 표현한 방법에 있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엔 여전히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수위 만을 놓고 보자면 제법 파격적인 수준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전혀 야하지 않은, 그러니까 두 인물의 감정 선이 녹아들어 있지는 않은 베드씬이라 다른 동성 간의 (이성 간도 마찬가지고) 베드씬과는 다르게 성적 흥분이 들지는 않는 건조한 장면이었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과연 그 정도의 묘사와 비중으로까지 필요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3부는 두 여성 주인공의 해피 엔딩만큼이나 두 남성 주인공의 배드 엔딩(?)의 비중이 큰데, 마치 이 마지막 베드씬은 두 여성 캐릭터를 위한 (그녀들이 원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두 남성 캐릭터의 배드 엔딩을 더 가혹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더 크게 느껴졌다. 1,2부에 비해 3부는 전체적으로 극이 고조되거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는 느낌보다는, 풀어 놓은 매듭을 모두 정리하는 완결(해결)의 느낌이 더 강한데, 그 보다는 두 여성 캐릭터의 해피 엔딩의 깊이나 감정선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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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단락에 조금만 더 보태자면, 그렇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바로 박찬욱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가도 싶다. 감정적으로 공감대가 넓고 보편적인 방식 대신, 가지 않은 길을 택하고자 많이 고민하고 자신의 취향을 영화 속에 녹여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 그래서 모두가 그를 주목하던 시점에서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같은 영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3부의 전개와 묘사는 1,2부 보다도 더 박찬욱 스러운 모습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스텝들의 결과물도 연출 만큼이나 큰 기대를 갖게 하는데,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 낸 미장센은 '아가씨'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히데코가 살고 있는 코우즈키의 대저택은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인 동시에 스스로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낭독회가 진행되는 공간은 특히 그 거리감과 구도가 예술이었는데, 좌우로 보았을 땐 인물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띄엄 띄엄 앉아 있는 구도가 매력적이었으며, 앞뒤로 보았을 때도 히데코와 남성 캐릭터들의 거리 (가까이 있을 때 보다도 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거리)가 영화에 리듬과 긴장을 담아 내고 있다. 류성희 미술감독에게도 이번 '아가씨'의 디자인은 모든 것이 총망라된 몹시 모험적이고 고된 작업이었을 텐데, 그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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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미장센 만큼이나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히데코를 연기한 김민희와 숙희를 연기한 신인 배우 김태리의 연기다. 이제 더 이상 연기에 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새삼스러워진 김민희의 경우, 연기가 업그레이드 된 것은 물론이요, 그 아름다움이 몇 배는 업그레이드 되어 버린 모습을 '아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속녀로 그려지는 1부 속 숙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히데코의 모습은, 깨어질 듯한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발견은 단연 김태리다. 보통 몇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된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을 끌지도 매력적이도 않은 것이 사실인데, 김태리의 캐스팅의 경우 새삼스럽게 '아..그 수 많은 경쟁자를 과연 물리치고 선택 될 만하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물론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김태리라는 배우의 얼굴 만이 가진 매력이 숙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 시켜준 느낌이었고, 애정, 애증, 행복, 모성애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에 있어서 어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딱 맞는 연기와 캐릭터였다. 그리고 하정우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독보적으로 해냈다. 백작 캐릭터는 자칫하면 풍자의 깊이는 없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우습게 보이는 동시에 연민마저 느껴지는 백작 캐릭터를 적절한 비중으로 연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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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박찬욱의 '아가씨'는 특유의 조소와 미장센이 시대극이라는 배경과 두 여성 캐릭터라는 매력을 통해 발산 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설정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것에 집중해서 영화에 빠져든다면 좀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극장에서 문소리 배우는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이 웅성웅성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동휘 배우는 관객들이 갸우뚱 하더군요 ㅎ
2. 히데코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본적이 없더군요...(이상해;;;)
3. 영화를 보고 나니 주연 캐릭터 중 몇몇은 일본 배우가 했어도 좋았겠다 싶더군요.
4. 아... 앞으로 김태리 라는 배우는 과연 어떤 영화를 보여줄까요. 몹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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