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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

지금, 가장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겠다. 하나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거나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는 꿈으로서의 영화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메시지로서의 영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더 옳거나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가 갖는 의미는 그 나름대로 중요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화에서 다루는 현실은 누군가에겐 진짜 현실이자 또 누군가에겐 공감되지 않는 판타지 같은, 또 누군가에겐 이마저도 꿈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평범한 누군가 (혹은 이웃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라는 식의 영화들 가운데서는,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은 평범한 누군가이지만 이를 접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평범해 보이는,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영화 속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는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고 소개되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이는 평범해 보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서두에 언급한 영화의 기능(종류) 중 어떤 것이냐고 물었을 때, 현실에서 흔히들 거리를 두고자 하는, 내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발견할 수 있는 삶이지만 부러 돌보려 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삶을 끄집어내 절망에서 희망을 이끌어내는 영화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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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인물이 겪는 짧은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극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한 채 그와 그가 만난 케이트 가족의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고 때론 위트 있게 그려낸다. 일단 말이 나온 김에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위트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단순히 구성상의 리듬이나 호흡 만을 위해 선택된 도구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블레이크가 옆집에 젊은 친구와 나누는 위트 있는 대화들이나 그가 갖고 있는 캐릭터에서 드러나는 작은 유쾌함 들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희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다워'로 대표되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켄 로치가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캐릭터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자존심, 존엄성을 피력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블레이크가 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말도 안 되고 또 막막할 정도로 어렵고, 답답한 과정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외적인 악조건들에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 당당함과 떳떳함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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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며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지점은 평범한 시민인 블레이크와 케이티 가족이 겪는 어려움들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와 이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희망의 메시지보다는, 나는 과연 이 시스템 가운데 어디쯤에 속해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글의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이 내가 속한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냉정히 말해서 내가 속한 지점은 블레이크와는 달리 그가 힘겨워하고 이겨내지 못한 디지털 시스템의 절차와 복잡함을 금세 터득하고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거나 불편을 겪었더라도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넘겨 버린 지점이 아닐까 싶었다. 더 냉정히 말하자면 거리에 노숙자들을 보며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하기보다는 '누구 힘들지 않은 이가 있나? 더 노력을 했어야지'라며 그 노숙자를 비판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고, 복잡한 프로세스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고충을 두고 역시 시스템 개선에 관한 생각 이전에 '왜 더 노력해 익숙해지지 못하지?'라는 비판 아닌 비판의 생각이 더 앞선 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내가 속한 현실의 지점에서 보았을 때 켄 로치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평범하지가 않았다. 시놉시스만 놓고 보자면 이 영화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완만한 굴곡과 관객이 공감 혹은 감동할 지점이 예상되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그러했지만 그 과정을 풀어내는 켄 로치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켄 로치는 바로 나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왜 그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는 없었는지 혹은 이 시스템이 누군가에겐 최선을 다해도 넘어설 수 없는 잘못된 것임을 몸소 깨닫게 해준다. 즉, 내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발견할 수 있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단순한 동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그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공감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다는 것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시놉시스를 가진 영화는 많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그들과 다른 이유는 바로 이점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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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는 그럼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역시 시스템에 수용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던 케이티 가족에게 블레이크가 도움이 된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티 내지 않고 블레이크에게 작은 도움을 준 이들을 영화는 돋보이게 그려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희망으로 그려낸다. 만약 그들의 도움을 극적인 순간으로 묘사했다면 이는 현실에서 절대 벌어질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우연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켄 로치는 이런 도움이 누구나 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인 동시에 우리 주변 곳곳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 불완전하고 승자에게만 편리한 시스템의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꿔나갈 수 있는 대안으로써 제시한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래서 지금 내게 더 깊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었다. 2016년, 이기적인 것이 생존의 유일한 무기이자 자랑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각박 해져만 가는 사회 속에서, 반드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를 담은 꼭 필요한, 간절한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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