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과 새로운 인연, 그리고 로드무비.

<엘리자베스타운>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최신작으로 큰 기대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아카데미를 수상한 <올모스트 훼이머스>는 물론이고, 그의 전작인 <클럽 싱글즈> <제리 맥과이어> <바닐라 스카이>등을 통해 평범하지 않은 드라마를 그려내는 연출력은 이미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받기도 했던 카메론 크로우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직까진 레골라스의 느낌이 다 지워지지 않은 ‘올랜도 블룸’과 스파이더맨의 연인에 이어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을 맡는 다는 소식은, 두 청춘 남녀주인공의 색다른 러브 스토리를 기대하게 하는 동시에, SF나 액션이 아닌 장르에서 올랜도 블룸이라는 배우는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또 다른 궁금증도 유발시켰다.

이전의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가 그랬듯이 이 영화 <엘리자베스타운>역시 평범한 로맨스 드라마는 아니다. 영화의 시작부분은 회사(사회)에서 크게 실패와 실연당한 주인공의 인생에 집중되며, 이 후에는 실패에 대한 파장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가족과 나, 나와 다른 사람들에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그 사건 사이에 만나게 되는 새로운 인연인 ‘클레어’를 통해 자살까지 생각했었던 주인공이 희망을 되찾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대충만 훑어보아도 흔하지는 않은 스토리는 카메론 크로우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한 편으론 극장에서의 흥행성적과 평단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처럼, 카메론 크로우의 작품 치고는 조금 부족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엘리자베스타운>이기도 하다.




유머와 감동을 모두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크로우의 말처럼, 이 영화에는 슬픔과 웃음의 요소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하지만 슬픔의 요소는 조금은 중심을 잃은 이야기 구조 덕에 100%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유머러스한 부분도 모두가 공감할 만한(특히 미국 외에 국가에서 충분히 공감하기에는)정도의 것은 아니라 이것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올랜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를 쉽게 놓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 올랜도 블룸이 본격적으로 드라마와 로맨스 장르에서 연기를 펼친 것은 이 영화에서 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전 작품들에서는 칼과 활을 쓰는 액션 때문에 레골라스의 이미지가 어쩔 수 없이 떠올랐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후광 없이도 충분히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커스틴 던스트는 깜찍하면서도 신비롭고 무언가 슬픔을 숨긴 듯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으며, 제시카 비엘, 알렉 볼드윈 등의 조연 연기자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수잔 서랜든의 연기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추모식 장에서 그녀의 마지막 연설과 탭댄스는 그 자체만으로는 훌륭했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그 시퀀스가 의도만큼 감동적으로 전달되기엔 2% 부족했던 것 같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작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에 요소, 장점을 꼽으라면 누구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작들에서는 그저 괜찮은 곡들을 한 두 곡 선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터라 마니아들에게는 반가움을, 대중들에게는 좋은 곡들을 소개해주는 역할로서도 손색이 없는 최적화된 선곡을 보여줬었다. 이 작품 <엘리자베스타운>에서도 사운드 트랙은 절대적이다. 부인인 낸시 윌슨이 만든 곡들을 비롯하여, 엘튼 존, 라이언 아담스, 톰 패티 앤 하트브레이커스 등의 곡들이 요소요소 삽입되어 있다. 사운트트랙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선곡된 곡들이 장면을 한층 부각시켜주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는 장면을 좋은 곡들로 무마시켜버리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만큼,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아마도 선곡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에서 언급했던 스토리에 아쉬움이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면서 마지막 로드 무비 식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도 영화가 거의 끝나는 느낌을 주는 장례식 장면 다음이라 약간 쌩뚱 맞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퀀스였다. 클레어가 만들어준 지도를 통해 음악과 더불어, 의미 있는 여러 곳들을 차례차례 여행하는 형식은, 차라리 영화를 애초부터 이런 스타일의 로드 무비로 끌어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DVD는 최근 출시된 작품답게 수준급의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1.78: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인물들의 클로즈업의 많은 장면과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장면에서 빛을 발하며, 사운드 역시 여러 가지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과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스페셜 피처로는 배우들의 오디션 장면과 리허설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 'Training Weels'와 스탭들을 소개하는 'Meet the Crew', 영화 속 재미있는 소품 영상이었던 ‘아이들 달래기 비디오’를 포함한 두 가지의 확장판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모두에게 권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카메론 크로우의 팬이라면 쉽게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작품임에도 분명하다. 자켓 이미지나 홍보 문구들로만 봐서는 단순히 두 남녀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영화로 오인하기 쉬운데, 오히려 그것과는 다른 세계를, 크로우의 시점에서 관찰한 작품이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

2006.04.10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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