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보았던 판타지 영화는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뒤에도 뇌리에서 쉽게 잊혀 지지 않곤 한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판타지 명작 중에 하나가 아마도 이 작품 <라비린스>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 (아마도 당시에 많은 작품을 출시하던 ‘CIC 비디오’가 아니었었나 싶다)보았던 <라비린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영상과 내용이었으며, <네버 엔딩 스토리>가 그러하듯이 특히 어린이들이 빠져들 만한 요소가 가득한 판타지 영화의 보석 같은 작품이었다.
스필버그가 주름 잡던 어린 시절 SF영화들 사이에서, 짐 헨슨이 만든 <라비린스>는 공상과학 보다는 판타지라 불러야할 영화였으며, 주류라기보다는 비주류 적인 요소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더 애틋하게 찾게 되는 작품이 된 것 같다. 조지 루카스가 제작, 기획에 참여하였고 록 스타 데이빗 보위가 주연과 음악을 맡았으며, 어린 시절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제니퍼 코넬리가 주인공 ‘사라’ 역할을 맡아 청순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스타워즈 시리즈의 ‘요다’ 역할로 유명한 프랭크 오즈가 참여하여 완성도를 더하였다.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은 없었으며 비디오로만 출시되었으며, TV에도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사라의 미로여행’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라비린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환상적인 캐릭터들, 배경 디자인들과 데이빗 보위의 매력적인 보이스가 돋보이는 'Magic Dance'등의 수록곡들일 것이다. 최근 DVD로 다시 감상한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들은, 매해 기술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익숙해진 탓에 척 봐도 엉성한 티가 쉽게 느껴지지만, 1986년이라는 제작년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만한 정도이며, CG가 사용된 영상처럼 매끄러움과 자연스러움은 부족하지만, 직접 스텝들이 인형을 손으로 조작하는 아날로그 적인 방식은, 그 방식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쁜 인형들이기보다는 괴상하고 독특하고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었기에 더더욱 눈 하나하나 깜빡이는 것,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미 <머펫>시리즈와 <개구리 커밋>시리즈로 인형극에는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감독 짐 헨슨은 <라비린스>에서 본격적으로 캐릭터들을 다양화 시켰으며, 판타지 영화에 걸 맞는 그야말로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하던 캐릭터들을 스크린 속에 살려냈다.
<라비린스>는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종종 뮤지컬로 불릴 만큼 음악적인 요소도 중요한 작품이다. 데이빗 보위가 트레버 존스와 함께 직접 담당한 영화 음악은, 영화의 줄거리는 기억이 얼핏 해도 주요 수록곡의 멜로디는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Chilly Down' 'As the World Falls Down'등의 곡과 특히 영화의 초중반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고블린의 왕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곡 'Magic Dance'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다. 이제와 DVD로 감상하니 데이빗 보위의 곡이 여전히 흥겨운 것은 물론, 이 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형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모두 다 움직임을 갖고 춤추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새삼 놀라게 되었다. 이것 외에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다가 몇몇 감탄한 장면 혹은 설정들이 있었는데, 똑같은 문이 매번 열 때마다 다른 장소로 연결되는 설정이나 미로에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었던 캐릭터와 퀘스트, 그리고 마지막 고블린의 성에서 펼쳐지는 공간이 뒤섞인 계단들의 설정은 이후 SF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DVD로 출시된 <라비린스>의 화질과 음질은 사실상 크게 논할 거리가 아니다. 화질은 최근 출시되는 영화들에 비하면 노이즈 끼가 선명하고 외곽선의 표현 또한 선명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정도 화질이면 DVD로 소장하는데 큰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 국내 DVD로 출시되기 이전에 영화의 팬들이 해외 사이트에서 코드 1번 타이틀을 주문해 소장하거나, 비디오테이프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화질에 타박을 주는 것은 행복한 비명에 불과할 것이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는데 이 역시 채널 분리도가 활발하거나 영화 속 노래와 스코어를 웅장하게 전달한다거나 하는 데에는 부족하지만, 감상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서플먼트로는 포토갤러리와 필모그라피, 스토리보드, 예고편, 메이킹 다큐멘터리 등을 제공하는데, 특히 57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Inside the Labyrinth'는 팬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몇 안 되는 영화 관련 영상이 될 것 같다. 고인이 된 감독 짐 헨슨의 인터뷰는 물론 데이빗 보위의 인터뷰 영상은 소장가치 있는 영상이며, 영화 속 캐릭터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숨 쉬게 되었는지의 해답이 될 장면들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어린 시절 추억의 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영화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라비린스>는 내 인생에 첫 번째 판타지였음은 물론, 가장 최근의 판타지를 선사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2006.05.04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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