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필드 (Cloverfield, 2008)


(스포일러 살짝 있음)
국내에는 TV시리즈 <로스트>와 <앨리어스>. 그리고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J.J.에이브람스가 '감독'이 아닌 '제작'을 맡은 작품.
괴물이 나온다는 정보 외에는 의도적으로 영화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누출하지 않는 것을 마케팅으로 삼아
결국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게 될 영화. 사실 이 영화는 처음 정보를 접하고 나서는 올해 1월의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으나, 본 사람들의 하나 둘 이야기를 들어보면 괴물보다는 사람이 중심이 된 영화인듯 하여
역시나 낚이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던 영화였다.
결과적으로는 네러티브는 부족하지만 영화를 바라보는 시점의 변화로 인해 어쩌면 특별하지 않은 괴수 영화가
매우 특별해짐으로서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었던 흥미로운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로서, 극중의 인물이 캠코더로 촬영한 시점에서 모든 러닝타임을
소화하고 있다. 또한 극중에서 캠코더를 쥐고 주로 촬영하는 인물이 완전히 아마추어임을 대사로서
다시 한번 확인시키며, 좀 더 현실적이고 거친 영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또한 배우들을 모두 신선한 얼굴의
신인들을 기용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 '가짜' 다큐멘터리를 좀 더 '진짜'로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이라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존의 여느 영화들에서 쓰였던 핸드 헬드 기법들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요동치는 화면은
분명히 현실감을 넘어서 어지러울 정도이지만(FPS게임을 즐겼던 이들이라면 큰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을 듯
하다), 사건과 인물을 철저히 캠코더만으로 바라보면서 철저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즉 보통의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괴물이 등장하면서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주인공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며, 결국 괴물과 인간들이(대부분은 주인공이 그 중심에 서고)
괴물과 맞서 싸우는, 그리고 괴물을 격퇴시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이 사건에
한 가운데에 있지만 보통 영화 속에 등장하는 피난 가는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중 하나가 촬영한 캠코더
영상만을 담고 있기에 어디선가 괴물들에게 당하는 이들이나 혹은 어디선가 괴물과 맞서 싸우려고 모여서
공격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이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가 없는 것이 맞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괴물보다는 주인공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는 영화이며,
그래서 이 엄청난 사건 속에서 괴물 퇴치 등 대의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몇 시간 전에 심한 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어려움에 처한 여자친구를 구하러 가는 주인공 일행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괴물 영화들과는 달리 괴물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특성을 지녔고,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 아니 대충의 설명도 영화 속에서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이라는 설정은 이렇게 내용적인 면 말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매우 장점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어두운 밤 먼지와 잔해가 쏟아지는 난리통 속에서 좋지 않은 화질의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이라는 점에서 괴물을 표현하는데에 있어 철저하게 현실적인 수준으로만 표현을 하면 되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으며(물론 디테일이 허접하다거나 대충만들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많지 않음에도 그 스케일과 공포의 정도를 극대화 할 수 있었다.

영상이 이런 반면 사운드는 오히려 다른 영화보다 더 현실적인 소리가 필요했던 것이 이 영화일 텐데,
이 영화는 사운드면에서는 확실히(오히려 괴물의 모습보다 소리가 훨씬 공포스러울 정도로) 괴물 영화스러운
스케일을 선사하고 있다. 난리의 한 복판에 위치한 주인공의 귀가 느꼈을 사운드는 극장에서도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으며, 괴물의 크기를 짐작케하는 엄청난 걸음소리와 군인들이 쏘아대는 총과 대포소리는
실로 '겁나게' 우퍼를 통해 울려퍼진다. 즉 영화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대사의 볼륨을 높이고 효과음과
대사를 가능한한 겹치지 않게 하기 보다는, 좀 더 실감나게 하기 위해 정신없이 흔들리는 화면과 어울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사운드로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물론 괴물이 등장했을 때(눈에 보일 때)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소리로 인해 공포감을 조장하는 장면이 더욱 많았다.



9.11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진 공포 영화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9.11 이후의 미국 사회의 공포에 대해 담고있다.
이 영화는 사실 조금 직접적인 편이다. 뉴욕 한 복판의 건물들이 폭파되고, 자유의 여신상의 얼굴이 파괴되어
길거리에 나뒹굴고, 브룩클린 다리가 부서지고 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적으로 삼는 '사람'에서 '괴물'로
그 주체가 바뀌었을 뿐, 이제는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갖게 하는 공포가 되어버렸다. 특히나 괴물이
등장한 초반에 건물이 무너져 그 잔해와 먼지가 거리로 몰려오는 장면은 실제 9.11 사태를 뉴스에서 접했을 때의
앵글과 완전히 닮아있었다. 9.11 이후 미국은 영화 속 괴물처럼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먼 나라가 아닌
자신들의 생활 터전에서도 갑작스레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생겼고, 그것이 한동안 (어쩌면 영원히)은
무의식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음을 이후 공포영화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클로버필드>는 괴물영화라는 떡밥을 던지고 그 안에 반응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캠코더라는 제한된 방식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괴물의 모습도
제법 등장하여 그 위용을 보여주었으며(이런 설정에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영화로 기대하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면 모두들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바로 그 난리 속에 직접 들어갔다 나온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후덜덜한 체험이었다.


1. 도대체 이 캠코더는 어느 회사 제품인지 베터리는 당최가 떨어지지도 않더군
(꺼지기는 커녕 부족하다는 신호도 없더라)

2. 이 영화의 비현실적인 요소를 꼽으라면 첫 째는 당최 무슨 사명감이 있는지 그 난리통속에서도
목숨이 위태한 순간속에서도 끝까지 카메라를 놓치 않았던 허드 이며, 둘 째는 허드를 제외하고는
모든 주인공들이 너무 잘생기고 예쁘다는 것이다 --;

3. 엔딩 크레딧의 폰트 크기가 일반 영화 크레딧의 폰트 크기보다 조금 크더라.

4. J.J.에이브람스가 정말 떡밥의 제왕이라면, 나중에 2편 겪으로 이 테입을 발견한 가까운 미래의 인간들이
아직 살아있는 괴물을 없애기 위해 이 테입을 참고로 본격적인 괴물과의 사투를 벌이는 영화를 직접
감독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괴물과 싸우다가 정신을 잃어서 깨어나보면 역시 그곳은 상하이? ㅋ)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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