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2007)

별다른 정보를 얻지 않았음에도 포스터만 보고는 대략적인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었던 작품.
얼핏 포스터를 보았을 때에는 <씨 인 사이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전신마비를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안락사와 영혼의 자유에 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씨 인 사이드>와 이 영화 <잠수종과 나비>는 여러면에서 비교가 될 수 있겠는데,
전신마비를 겪는 사람으로서 느끼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괴로움과 영혼의 자유롭지
못함으로 스스로 애타게 안락사를 원했던 <씨 인 사이드>에 비해, 오히려 그 보다 더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왼쪽 눈만 움직일 수 있는), 오히려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담담하게 책으로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겉으로만 봐서는 전혀 다른 방향에 위치한 영화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이 두 영화는 궁극적으로는 육체가 아닌,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라고 해야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영혼의 자유로움의 관한 이야기를
조금은 특별한 실화를 통해 (두 영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고 있다.



사실 영화가 끝나고 설명 문구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 영화가 실화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너무나도 영화적인, 즉 평소에는 '엘르'의 편집장으로서 위트 넘치고 남 부러울 것 없으며
이른바 '잘 나갔던' 주인공 '보비'가 어느날 갑작스런 희귀병에 걸리면서 그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는 줄거리는 너무나도 영화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런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은 너무 많이 있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영화는 실제 1997년에 사망한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병상에서 써내려간
소설 '잠수종과 나비'를 소재로 하고 있다. 너무나도 영화적인 실화이긴 하지만, 실화라서 더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그냥 본질적인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방식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는 이런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느 다른 영화들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대부분의 이런 영화들은 주인공을 3인칭으로 바라보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할 수 있는 1인칭의 시점으로 상당한 러닝타임을
소화하고 있다. 이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와 상황을 관객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장치였는데, 실제로 왼쪽 눈만이 움직일 수 있었던 주인공이었기에 한 쪽 눈으로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물을 바라볼 수 있던 앵글과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다른 인물에게 전달할 수 없는 답답함,
그리고 자신의 말을 상대에게 전하기 위해 알파벳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원하는 알파벳이 나왔을 때
눈을 깜빡여야 하는 수고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처한 '전신마비'라는 이 상황이 실로
얼마나 '답답한' 상황인지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보는 이가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더 감정이입이 쉬워지고, 극 중 다른 인물들을 대하는 태도역시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철저하게 주인공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화는 이런 전달의 효과와 더불어 영상미에 있어서도 다른 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영상을 만들어냈는데, 말했듯이 주인공이 한 쪽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나 사물을 바라볼 때 촛점이 맞질 않아 사물이 겹쳐 보이거나 희미하게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데 이는 영상미적인 면에 있어서도 상당히 아름다운 화면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주인공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 같은 경우, 눈이 눈물에 젖어 점점 뿌옇게 변해가는 화면을 통해 그 어느 영화의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주인공이 사고가 나기 전 아름다웠던 일들을 회상하는
장면들과 맞물려 몽환적인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본래 쾌활하고 카사노바 기질이 있었던 주인공이었기에 이 영화는, 희귀병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저
슬프게만 그리고 있지 않다. 영화 속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지만, 주인공의 속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관객들은
쿨한 유머와 위트로 상대와 상황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통해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었던 영화 속에서도
위트를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주 단순하게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나 길에서 가끔 마주치게 되는 장애우들에 대해서,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은 그들의 표정만으로 그들을 단정짓고 말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주인공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이 영화를 통해, 적어도 앞으로는 길에서 그들을 만날 때 좀 더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영혼의 자유에 관한 깊은 생각을 또 한 번
해볼 수 있었던 좋았던 2시간이었다.


1. 음악도 참 좋았다.
2. 막스 본 시도우는 오랜만에 악역이 아닌 모습을 본 것 같다 ㅎ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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