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잘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내 생애에 꼭 보고야 말리라 마음먹었던 3개의 공연.
bjork, Red Hot Chili Peppers, U2. 이 가운데 레닷은 지난 2002년 내한했을 대 미친듯이(역시 실감못하며)
즐긴 바가 있었고, bjork과 U2는 특히 bjork은 '과연 죽기 전에 볼 수나 있을까(특히나 이 한국 땅에서!)'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배적이었는데, bjork을 안지는 10년이 되었으나, 어찌보면 이리도 빠른 시간내에 그녀를
한국 땅에서 보게 될 줄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었고, 믿겨지지도 않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제 2월 16일,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났으며, 나는 마치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한 거리에서
그녀의 공연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녀가 내 눈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었다니. 내가 내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내 생애에 가장 오랫동안 깜빡이지도 않고, 가장 미칠듯이 초롱초롱했던 눈망울이었을 것이다.
그 만큼 단 1초도 놓칠 수가 없었던 그녀의 공연이었다.



공연의 시작은 7시. 스탠딩 입장은 5시라고 알려진바.
어차피 입장 순서가 이미 예매로 정해져있던터라 일찍 가 있는다고 더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비요커들은 2~3시 부터 와서 공연장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어제는 올림픽 공원의 매서운 바람과 더불어 제법 추운 날씨였는데, A구역 스탠딩 35번째 입장순서였던 나는,
한 4시쯤 스탠딩 관객들을 위한 대기장소인 지하 주차장에서 약 1시간 반을 넘게 대기한 뒤,
차례로 입장할 수 있었다. 나는 맨앞 팬스에서 바로 다음줄, 그러니까 사실상 거의 맨 앞에서 관람하였는데,
맨 앞줄이 거의 다 여성분들이었음으로, 시야확보는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자리에서는
정말 손을 뻗으면 거의 bjork이 만져질듯한 거리였다(그래서인지 막 만지려는 손길이 내 앞뒤로 마구
뻗어나왔다). 그녀의 표정 하나 하나를 느낄 수 있었으며, 작은 미소도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었던
너무나도 가까운 위치였다.


(공연 시작전 판매하던 티셔츠. 공연이 끝나면 사야지 했는데, 끝나고서는 사람들이 하도 몰려나와 결국
구매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Volta'투어로 이뤄진 이번 공연답게 첫 번째 곡은 역시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인 'Earth Intruders'였다.
미친듯이 쿵짝거리는 비트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 'Earth Intruders'. 혼 연주자들이 입장하고 그 뒤에
bjork 내 쪽에서 입장하는데, 이 때까지도 전혀 눈 앞에 상황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공연장은 이때부터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이번 bjork 공연의 특징이라면 다른 뮤지션들의 공연과는 달리,
(물론 내가 그 최전선인 스탠딩의 맨앞에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열혈 비요커들이
가득 모인 공연이었기 때문에, 다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몇몇 여자 관객들은 눈물을 보였을 정도로,
눈 앞에 펼쳐진 bjork의 모습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 특유의 영어인사 '쌩큐'를 현장에서
듣게 될 줄이야! 이어서 'Hunter'와 'Aurora'가 이어진 뒤, 다시 한번 장내를 감동으로 물들이게 했던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All is Full of Love'. 나도 이 곡의 전주가 흘러나왔을 땐 눈물이 글썽거렸다.
모두가 함께 부르는 후렴구는 더욱 더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이 곡 보다 조금 더 감동적인 곡이있었다면
바로 'Jóga'. 많은 비요커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Jóga'의 그 익숙한 현으로 연주하는 전주가 흐를땐
정말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Army of Me'와 'Innocence'에서 공연은 다시 한번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사진의 저작권은 NEWSIS에 있습니다)

사실 최근 'volta' 투어에 대한 정보는 잘 찾아보질 못하고, 그녀의 풀 버전 공연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Vespertine'투어 DVD였기 때문에, 이번 공연이 이리도 격렬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굉장히 정적이었던 'Vespertine'투어에 비해 이번 'Volta'투어 공연의 수록곡들은, 이번 앨범의
강력한 비트와 어울리게 정적인 곡들과 함께 상당히 하드한 일렉트로닉 곡들이 배치되었는데,
앵콜곡에서 모두를 미치게 만들어버린 'Declare Independence'를 비롯하여, 'Pluto'와 콩콩 댄스를
만들어낸 바로 그 곡 'Hyper-ballad'까지! 그녀 특유의 손동작과 발동작, 독특한 춤사위를 오랜만에
마음껏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bjork이 원래 공연에서 저렇게 많이 웃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중간 중간 객석을 살짝 보고는 수줍은 미소를 짓곤 했는데, 분명 그녀도 한국에 비요커들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마지막에 앵콜을 부르러 나와서는 혼 연주자 가운데 한 명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관객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등, 확실히 팬들과 완전히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혼 연주자들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중에 무대 앞에 나와서 연주할 때에는,
이들 역시 무대 위에 연주자라기 보다는 그저 함께 공연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흠뻑 빠져들어있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물론 bjork역시도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로 모든 이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사진의 저작권은 NEWSIS에 있습니다)

'Jóga'나 'Hyper-ballad'만큼이나 좋아하는 'Bachelorette'가 나왔을 땐 또 한 번 어쩔 수 없이
빠져버렸으며(사실 어느 한 곡 미칠듯이 빠지지 않은 곡이 없었다), 본 공연의 마지막 곡인
'Pluto'가 끝난 뒤 bjork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관객들은 모두 한 소리로 앵콜을 외쳤으며,
이내 나타난 bjork과 스탭들은 앵콜 송으로 'The Anchor Song'과 'Declare Independence'를
연주했는데, 마지막에 엄청난 종이 눈이 내리는 가운데 다같이 하나가 되어 공연장을 들썩일 정도로
춤추게 만들었던 'Declare Independence'는 정말 흥분 그 자체였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 bjork의 워낙 독특한 음악성 탓에 정작 그녀의 가창력에 대해서는 별로 깊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제 공연을 보며 정말 그녀가 놀라운 가창력의 소유자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쉽지도 않은 그 노래들은 정말 거의 CD와 똑같이 모두 소화한 그녀의 가창력은
일렉트로니카 디바로서는 독보적인 수준이 아닌가 싶다.


(사진의 저작권은 뉴스엔에 있습니다)


그렇게 내 생애에 가장 흥분되었고 믿겨지지 않았던 bjork의 내한공연은 거짓말 처럼 끝이났다.
bjork의 팬은 아니지만 나 때문에 같이 갔던 여자친구는 '마치 사이비 교주와 신도들 같다'라고 했었는데,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공연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그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자체가 영광이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죽기전에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정말 황홀했던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또 언제 그녀를 볼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다시한번 '나=비요커' 라는 공식을 확인시켜준 공연이었으며, 집에 올 때는 다리가 풀리고 목이 뒤틀리고,
등이 뻐근할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다 소비했던 상태였지만, 앞으로 살아갈 엄청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벌써 추억이 되다니! 아쉽다 ㅜㅜ
고마워요 bjork!!!



Set List

1.Earth Intruders
2.Hunter
3.Aurora
4.All Is Full Of Love
5.Hope
6.Pleasure Is All Mine
7.Vertebrae by Vertebrae
8.Jóga
9.Desired Constellation
10.Army Of Me
11.Innocence
12.Bachelorette
13.Vökuró
14.wanderlust
15.Hyper-ballad
16.Pluto

------------------------

17.The Anchor Song
18.Declare Independence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