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 (Juno, 2007)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배부른 엘렌 페이지의 모습도 나름 인상적이었지만, 뭔가 모호하고 독특한 인상을 주는 '주노 (Juno)'라는
이름이 갖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영화를 보면 알게 되지만, 영화 속 '주노'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 신의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 제우스의 부인은 주노가 아니라는 -_-;; ). 그래서 인지 그냥 10대 미혼모가 겪는 해프닝을 그린 드라마 혹은 코미디 보다는
무언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극장을 찾게 되었었다.
국내 포스터에 보면 홍보 문구로 '할리우드가 웃고 전세계가 놀랐다!!!' '세상을 발칵 뒤집은 '주노'가 온다!' 등등의
홍보 문구들이 가득한데, 이런 문구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하다.
<주노>는 포스터와 알려진 줄거리에서 쉽게 엿볼 수 있듯이, 10대에 아기를 갖게 되어 겪는 일들을 통해,
16세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가족과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를 10대의 젊은 감각이 묻어난 음악들과, 유머로
유쾌하면서 아름답게 그려낸 성장 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주노는 친한 남자친구 '블리커'와 관계를 갖고 아이를 갖게 되는데, 일찌감치 자신이 아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입양부모를 찾게 되고, 그 와중에 바네사(제니퍼 가너)와 마크 부부를 만나게 된다.
사실 이 설정이 이 영화가 조금은 특별한 첫 번째 설정이 될 수 있겠다. 보통의 이런 10대 미혼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면, 입양부모로 등장하는 이 부부의 비중이 거의 까메오 급으로 등장할 수 있겠으나, <주노>에서는
이들의 비중이 상당하다(그래서 일부러 포스터도 엘렌 페이지가 단독으로 나온 포스터가 아니라, 등장 인물이
여럿 등장한 포스터를 골랐다). 이 부부가 비중있게 그려지면서 영화는 좀 더 얘기를 다양하고 깊게 끌고 가는데,
단순히 화목해만 보였던 이들 부부에게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10대인 주노는 혼란을 겪게 된다.

겉으로봐서는, 자신과 음악적, 영화적 취미가 같은 마크와 아이를 너무도 원하는 바네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마크는 다양한 취미만큼이나 딱딱하고 안정적인 삶 만을 원하는 바네사에게 잡혀살기 보다는
아직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며, 바네사는 아이를 갖고 싶은 애정이 너무 깊어 여기에만 온 정성을
쏟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부부의 관계가 좋지 않게 흘러갔는데도, 주노는 자신의 아이를
바네사에게 건네기로 하는데, 이는 바네사라는 인물을 단순히 아이만을 원하는 나쁜 이미지로 그리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부부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이른바 '어른'들이
흔히 겪는 현실의 문제이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수한 주노의 눈을 통해, '왜 평생 함께 하지 못하느냐'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새삼 깨닫도록 전하고 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주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를 낳고 예정했던 대로 바네사에게 아이를 건네게 되는데, 아마도 이들 부부가 깨지고,
주노도 아이를 직접 낳는 고통을 겪게 되면서 모성애가 깊어져 결국에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게 되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았다. 주노는 이 특별한 성장통을 겪고 나서 부른 배도 다시 돌아오고, 자신의 아이도 없는,
다시 10대 소녀로 돌아온다는 결말인데,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줄거리를 선택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미워보이지
않고 쿨하고, 유쾌하게 그려낸 시나리오는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의미를 깨달았다면, 남자친구인 '블리커'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또 한 번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지, 그리고 이를 깨닫도록 확신 시켜주는 것이 자신의 배속의 아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의미를 또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이 영화는 분명히 성장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운동장에서 주노가 뱃 속의 아이를 빗 대어 블리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여느 러브 스토리 못지
않은 감동적인 멜로 장면이었다.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함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으며,
이 둘의 대화는 물론, 주노가 극중에서 가족,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들을 통해, 현재 미국의 10대들이
갖고 있는 유머와 말투 등을 엿 볼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의미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가 하나 빠졌는데,
주노의 새 엄마가 약간 딱딱하게 얘기하는 초음파 담당자에게 딴소리 못할 정도로 매몰차게 말로 제압하는
짧은 시퀀스를 통해, 넓은 의미에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또 한 번 얘기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음악이었다.
로우 파이 (Lo-fi)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이 시종일관 흐르고 있는데, 주연 배우인 엘렌 페이지가 적극
추천했다는 뉴욕 출신의 10대 밴드 몰디 피치스를 비롯하여, 소닉 유스, 캣 파워, 킴야 도슨,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이 영화의 인디적인 감각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단백한 음악들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다.
음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극중에서 주노와 마크는 음악과 영화에 있어 상당한 매니아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나누는 대화 장면은 그래서 매우 흥미로웠다. 역시 개인적으로도 팬이기 때문에, 깁슨의 레스폴 기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나, 록 음악의 전성기가 언제냐를 서로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슬래셔 무비를
보면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을 논하는 등, 이 분야의 관심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잠시나마 이 대화에
깊게 개입할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주연을 맡은 엘렌 페이지의 연기에 대해 아니말할 수 없는데,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서 귀여운 모습을
선보여 여러 삼춘 팬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던 그녀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엘렌 페이지 아닌 주노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싱크로율을 선보인다. 뭐랄까 앞으로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그리고 엘렌 페이지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주노'만큼 엘렌 페이지 스러운 캐릭터는 앞으로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옷 입은 것만 보면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가 떠오르긴 하지만, 블리커 라는 캐릭터의
풋풋함을 잘 살린 마이클 세라의 연기도 좋았고, 오랜만에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제니퍼 가너와 <스파이더 맨>으로 익숙한 J.K. 시몬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마치 <원스>가 그랬던 것 처럼, 서서히 멀어지는 카메라가 인상적이었는데,
몰디 피치스의 'Anyone Else But You'를 두 주인공이 함께 부르는 이 마지막 장면은, 성장통을 잘 겪어낸
주노가 그래서 '어른'이 되었다기 보다는 '소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나조차도 아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던 영화였는데, 보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했을 영화였다.




1. 바네사와 마크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록의 팬인 마크가 샀거나 구했을 'Alice In Chains'가 새겨진 티셔츠를 페인트 작업을 위해 바네사가
입고 있는 이 장면을 통해, 이 두 사람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져 있나를 짧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분명 알고 이렇게 설정한 것이겠지 ^^;

2.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해못할 설정이 있었다면, 16세 소녀가 임신을 했다고 부모에게 처음
이야기하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화 한 번 안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미국사회 전체를 반영한다기 보단 이 가족내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봐야할 듯.

3. 음악 정말 참 좋다! 바로 O.S.T 질렀음!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폭스 서치라이트사에 있습니다.


2008/02/25 - [Music] - 주노 (Juno) _ O.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