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 (Speed Racer, 2008)
눈이 부신 블록버스터 가족영화
5월을 맞아 속속 개봉하고 있는 기대작들 가운데 우리 배우인 비(Rain)가 출연하여 국내에서는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던 <스피드 레이서>도 분명 그 중 하나였다. 사실 비가 나와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이 영화에 대해서 엄청난 기대를 갖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내 개인적인 성향을 봤을 때
반드시 그래야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극장을 찾게 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인지 최근 개봉했던 액션 영화 <아이언 맨>정도의 재미를 예상하고 감상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언 맨>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뭐 딱 그 정도의 재미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이 영화 <스피드 레이서>는 기대한 화려한 영상미와 레이싱 장면은 물론, 기대하지 않았던 성장, 가족 영화에서
등장하는 메시지들과 더불어 의외의 눈물나는 감동(!)까지 얻었을 정도로 대단한 경험이 되고야 말았다.
나는 왜, 이 영화의 감독이 내가 한 때 분석하기 까지 했었던 <매트릭스>트릴로지의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겉핥기 식으로 B급 문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알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누구보다 이 분야에 정통하고 있는 이른바 마니아 혹은 오타쿠이자, 장인이 아니던가!
극장을 나오는 순간, 바로 재관람을 결심했을 정도로(오랜만에 재관람이될듯)최고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시피 일본 애니메이션인 <마하 고고고>(국내 방영제목 '달려라 번개호')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보는 내내 프랭크 밀러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씬 시티>가 떠오를 정도로,
원작을 그대로 재해석하는데 무엇보다 집중한 작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제작연도상 <마하 고고고>보다는 <사이버 포뮬러>세대라고 봐야할 텐데,
이렇듯 원작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도, (어쩌면 오히려)더 재미있게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화려한 영상미를 들 수 있겠는데,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하는 만큼, 이를 실사로 옮겨옴에 있어서 과도한 CG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워쇼스키 형제는 이를
좀 더 자연스럽게, 실제에 가깝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더 CG틱하게, 더 애니메이션스럽게 만들어내면서,
더 독특하고 화려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특히 거의 러닝타임 내내 보여주었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화면분활 시퀀스는 조금 과도한 점은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내에 비교적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했던
노력을 표현하는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고, 비쥬얼 적인 면에서도 여러모로 높은 효과를 보여주었다.
제목에 보면 '눈이 부시'다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아이맥스로 관람하는 화면 가득한 레이싱 장면은
눈이 부실정도로 화려한 것이었으며, 또 다른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눈을 땔 수 없는'이 있겠다.
레이싱 카가 앞으로 가는 것보다 옆으로 가는 장면이 더 많았을 정도로, 실제 레이싱 과는 거리가 있는
공상에 가까운 레이싱이지만, 뭐 이 작품은 <드리븐>같은 정통 레이싱 영화도 아닐 뿐더러, 만화적인 상상력을
어떻게 표현해내는 가가 관건이었던 영화였기 때문에, 이 같이 실사와 그래픽을 자주 오가거나 함께하는
구성방법은 탁월했다고 생각된다(특히 사막의 레이싱 장면에서, 모래 연기가 폴폴~ 나오던 장면은 완전히
애니메이션이었다 ㅋ)
이 영화는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고 있는데, 그 부분은 긴 원작을 압축하는
데에서 생긴 스토리 상에 문제와 동생 스프리틀과 침팬지 '침침'의 개그에 대한 반응이 주요한 요소로
작용되고 있는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에 있어 스토리상에 대한 기대치가 스릴러 영화처럼
그리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는 생각이고, 동생과 침침의 개그는 오히려
사실상 전체 관람가에 가까워(12세 관람가),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이 같은 요소가
더 많은 관객을 끌어 안는 동시에 중간중간 재미를 주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극장에 많은 어린이들은 둘의 개그를 매우 재미있어 하더라). 더군다나 다른 분들의
리뷰에서 보니 이 둘을 비롯한 대부분의 캐릭터는 원작에도 그대로 존재하는 캐릭터로서, 그대로 그 분위기를
잘 살린것이 아닌가 싶다.
이 둘의 개그 장면에는 마치 그내들이 좋아하는 액션 대전 게임처럼, 화려하게 지나가는 영상을 배경으로
쿵푸 대결을 펼치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어찌보면 유치하기 짝이없으나, 이 유치함은
이것을 유치하게 느끼기 보다는, 그 나름대로의 멋스러움과 유머가 있다고 생각된 워쇼스키 형제의 오타쿠적
감성으로 가감없이(오히려 확대해서) 추가한 장면으로서 보기에도 재미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보는데에 있어서
이런 장면들이나 만화적인 요소가 유치하게 느껴졌다면 확실히 큰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이 영화가 단순히 전체관람가에 가까운, 화려한 영상만이 있는
어린이 영화가 아니라, 소년의 성장영화이자, 진정한 의미의 가족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인공 '스피드'는 어린 시절부터 레이싱 밖에는 몰랐던 아이로서, 레이싱 외에는 전혀 관심도 알지도 못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아이였지만, 우상과도 같았던 형이 레이싱 사고로 곁을 떠나게 되고, 자신도 레이싱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반대로 그것 밖에는 몰랐던 '레이싱'을 통해 가족과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소년 '스피드'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비싼 성장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가족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는데, 전혀 촌스럽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었던 렉스를 아들이기 이전에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레이싱 회사에 레이서로 받아들였던,
렉스가 떠날 때는 '그 문을 나서면 앞으로 영영 나가가는 거야'라고 말했던 아버지가, 스피드가 비슷한 상황을
맞았을 때에는 '항상 문은 열려있으니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말하게 되면서, 가장 변화를 두려워하는 존재인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조차,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항상 따뜻하게 스피드를 응원하는 어머니와 여자 친구인 트릭시, 말썽꾸러기 동생과 '침침', 그리고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과도 같은 스파키까지.
나중에 가서 '스피드'는 본질적인 문제인 '왜 레이싱을 해야하나'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되는데,
결국은 그 해답이 자신의 전부인 '가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깨우치게 된다(이것은 단순히 스피드의
성장만을 넘어서서, 그 동안에 조금씩 엇나갔던 가족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
사실 이런 메시지는 하니가 결승선에서 하늘에 계신 엄마를 떠올리며, 갑자기 없던 힘이 생겨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처럼 유치찬란하고 신파스러운 뻔한 구성과 메시지이긴 하지만, 나는 왜인지도 이 장면에서
울컥울컥하는 눈물을 겨우 참아냈다. 아마도 <스피드 레이서>에서 감동을 얻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갑작스레 울컥했던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나에 가녀린 유아적 감성은 이 장면을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주연인 에밀 허쉬는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에서 부러운 녀석으로 보았던 것이 전부였는데, 주인공 스피드
역할로 손색이 없었던 것 같다. 동안인 그에게 아직 소년인 '스피드'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며,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영화들과 좀 더 상업적인 영화들에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가 가족영화로 느껴지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캐릭터는 바로 존 굿맨과 수잔 서랜든이 연기한
아버지와 어머니 캐릭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전형적인 푸근한 아버지 캐릭터인 존 굿맨의 연기는,
코믹과 따뜻함을 넘나드는 풍성한 연기로 <스피드 레이서>에게 좀 더 넓은 스펙트럼을 제공한 것 같다.
수잔 서랜든 역시 '어머니'보다는 '여자'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한 배우라고 생각되었었는데(떠올려보니 강한
엄마로 나온 작품이 몇 작품 있었던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스피드의 엄마 역할로도 나쁘지 않은 자연스런
연기였다고 생각된다.
레이서 X역의 매튜 폭스나 트릭시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 역시 만화 같은 이 영화에서 만화같은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한 듯 하다. 그리고 가장 큰 우려와 걱정에 대상 있었던 비의 연기에 대해서 아니말할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큰 비중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제법 등장하는 비의 비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조연으로 시사회나 각종 쇼에 참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당한 비중이었으며,
영어 대사 연기역시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생각된다. 사실 거의 함께 참여한
박준형의 비중보다 조금더 많은 비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일수도 있다. 말이 나온김에 박준형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정말 몇장면(3~4장면)밖에는 나오지 않지만(대사도 없다), 그래도 이름없는 레이서들
가운데서는 제법 포스를 발산한 경우라 봐야할 것 같다.
사나다 히로유키의 경우에는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것 같다. 비중도 적었을 뿐더러 대사도 거의
없었음으로...
워쇼스키 형제는 정말 대단한 감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매트릭스>트릴로지 만으로도 대단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뭐랄까 자신들이 자신있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대중들에게 영화로서 설명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감성과 관심사를 갖고 있는 감독이 헐리웃에서 메이저 감독으로
활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앞으로는 또 어떤 관심사에 자신들의
장인의 숨결을 불어넣을지 벌써 부터 기대된다.
1. 그랑프리 경기전 연회 장면에서 어디서 본듯한 배우가 있어서, 보는 내내 누군가 생각해 보았는데
끝까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엔딩 크래딧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오웬 페터슨이었다. 매트릭스 DVD 서플을 워낙 열심히 보다보니
이젠 스텝들의 얼굴까지 외워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오웬 페터슨이 까메오 출연한다는 것!
2. 영화의 초반에는 다른 영화들보다도 가장 먼저 <딕 트레이시>가 떠올랐다. 원색으로 표현된 의상들과
배경들은 곧바로 <딕 트레이시>를 떠올리게 하더라. 나중에는 <씬 시티>나 <스파이 키드>등도 살짝 씩
생각났음.
3. 아이맥스로 관람한 영상은 정말 최고였다. 눈에 가득차는 화려한 레이싱 장면에선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더라
4. 비가 연기한 태조 토코칸은 본래는 일본 사람이지만, 조금 각색이된듯 한데, 아버지와 딸은 이름으로
보았을 때 일본인 스럽지만, '토고칸 모터스'라는 한글 명이 등장했던 것처럼 한국사람으로 그려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뭉뚱그려 '아시아인'으로 그려진 지도 모르겠다.
5. 아이맥스로 또 보고 싶지만, 경제 사정상 일반으로 한 번 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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