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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보다 어딘가에 (2007)
지리한 청춘


지난 달에 있었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처음 포스터로 만났던 영화였다.
옥상으로 유추되는 곳에서 한 소녀가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는 스타일리쉬한 포스터, 그리고
'8월 극장에서 꿈을 부르다!' 라던지 '그래도.....꿈꾸라고 말해줘' 같은 홍보 문구들은
'아, 이 영화가 이러이러한 음악영화구나'하고 예상을 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전혀 음악영화가
아니었으며, 단지 현실적이고 지루한 청춘에 관한 영화 였다.
이 영화를 만든 이승영 감독도 인터뷰에서 '음악 영화가 아니다'라고 밝혔던 것처럼, 전혀 음악영화의
플롯을 따르지 않고 있는데, 음악 영화처럼 포장된 것이 일단은 좀 아쉽다.
제목과 인상적인 포스터, 그리고 무언가 소소한 아름다움이 있는 영화일 것 같다라는 생각과는 달리,
영화는 어찌보면 참 짜증도 나는, 너무 현실적인듯 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한번 외곡된 청춘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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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이란 캐릭터는 꿈은 뮤지션이다. 남미의 해변 같은 곳에서 매니아 취향으로 음반도 발표하고 공연도
하고 싶어하고, 리버풀로 유학도 가고 싶어하는 스물 여섯의 여성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수연에게는
꿈을 위한 노력이나 열정이 전혀 없다. 이 영화가 음악영화가 아닌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수연은
자신의 꿈이라는 뮤지션이 되기 위해 사실상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며, 그저 청소년 시기의 객기처럼 집을
나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가볍게 이것저것 시도해볼 뿐이다. 음악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뮤지션이라는 꿈도 정말 꿈인지 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에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특히 주인공인 수연 캐릭터의
경우 개인적으로 <미스트>의 카모디 부인 만큼이나 짜증이 나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
그녀는 노력을 안하는 것은 물론이고, 너무도 이기적이며, 너무도 한심하다. 집안이 그리 어려운 사정도 아니고
버젓한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졸업 후 벌써 몇년간을 집에 눈치보며 살아온 듯 한데,
엄마가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동생 게임기를 거의 훔쳐다가 내다팔려고 하지 않나, 자신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짜증을 내고 무작정 집을 나온다. 집을 나와서 자신의 친구인 동호의 집에 무작정 들어가는데,
자신이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수연이 동호에게 하는 짓들은 하나하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돈 좀 벌어보겠다고 피아노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는데, 제대로 할리 없으며, 마음대로 수업을
빼먹어 놓고는 원장에게 '원장님이 제 사정을 좀 이해해 주셔야죠'하며 오히려 큰 소리다.

결국 자신의 노력과 돈 없이 동호의 노력과 돈 만으로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는데, 거기서도 갑자기
아무런 이유없이 무대를 떠나 결국 페스티벌도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는 무슨 큰 슬픔이 있는냥 아무말도
없이 울기만 하는데, 정말 이 슬픔에는 아무런 동기가 없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고 어려워서 꿈을 이루고
싶어도 형편이 안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기회를
우연히 잘 살린 것도 아니고, 그런데 엄청난 고민이 있는냥 그냥 울고 만다. 이건 장면만 본다면 인상적일지
모르지만 내용적으로는 하나도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수연에게 동호나 주변사람들이 건네는 말 뿐이었다.
'너보다 더 힘든 사람 많거든' 이런거나 '니가 음악을 한다는거 자체도 우끼다' 이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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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요즘 세대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요즘 젊은 이들의 무기력함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고 한다. 이런 의미라면 의도되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무기력함을
그저 보여주기만 할뿐, 영화 자체도 굉장히 무기력한 지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에 감동적인 드라마타이즈 방식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청춘의 감성에 빗대어 그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무기력함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만약 영화의 내용처럼 영화도 무기력해져, 이런 무기력한 청춘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 진정
의도였다면 그것은 성공이라 하겠다.
'성공하지 않는 젊음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성공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노력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의 일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왜 안돼'하며 굳이 성공할 필요 없잖아 하는 것은
오만이다.



1.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는 수연의 친구만이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캐릭터였다.
2.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음악이 아깝다. 까메오로 출연도 했는데...
3. 방준석이 맡은 역할은 그야말로 악역이다. 시대착오적 악역이랄까.
4.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질은 굉장히 좋아보였다. 아마도 HD카메라로 디지털 촬영을
   한 것 같은데, 화질은 정말 쨍하더라.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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