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의 여름은 특별히 기억할만 했다. 민주주의 라는 것.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가슴으로 느껴보지는
못했던 것을 거리에서 직접 피부로 알 수 있던 시기가 바로 지난 해 여름이었고,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에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무언가 주권을 행사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을 수 있었던(대통령 선거시에도 느낄 수 없었던) 시기였으며, 아직 대한민국이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뜨거운 여름이었다. 여중,고생들의 촛불 시위로 시작되었던 이 작고
미약하지만 의미 깊었던 행동은 정부의 더해만 가는 실수와 잘못된 일들을 통해 눈덩이 불어나듯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모든 국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가 하면, 직접 거리에 나오지 못하는 시민들은,
아프리카를 통한 인터넷 생중계로 밤을 지새워가며, 내 나라에서 내 국민들이 어떻게 권력에 의해 상처를 받고, 민주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해 나가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뜨껍던 여름이 가고 벌써 겨울이 왔다. 아직 촛불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지만(촛불은 아직도 곳곳에서 불타고 있다!),
사실상 많은 이들이 전장과도 같았던 거리에서 돌아와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요즘, 2008 촛불을 돌아볼 수 있는 책 한권을
만나볼 수 있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 미사에서 나온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제목으로 차용한
이 책은, 다양한 사진들과 글들로서 이 당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이 같은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닝만적으로만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라는 책 속 등장 문구처럼, 촛불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당시 있었던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서 평정심을 잃게 되는 실수는 하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속 내용은 촛불이 일어나게 된 계기서
부터 이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진화되어 갔으며, 어떤 현상들을 일으켜 왔는지에 대해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차근차근
이야기 해 나가고 있다. 사실 어느 한 쪽을 확연히 두둔하는 입장을 가진 화자에 입장으로 쓰여진 도서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갖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촛불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외에도,
그동안 촛불의 뜨거운 현장을 그저 친북좌파 빨갱이들이 주도한 폭정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려는 듯,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려 애쓰고 있다(애쓰고 있다고 표현한 점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진실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개인적 의견이 반영된 터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이 촛불의 행동들을 가지고 일부 급진적 무리가 이끄는 폭동에 가까운
사건으로 생각하는 일들이 많았었다. 각종 외곡된 뉴스와 신문 등을 통해서만 정보를 접했던 이들이라면 이런 오해가 전혀 무리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시청 앞 거리에 나가보았다면 이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했던 이들은, 운동권도 아니었으며, 친북좌파 세력은 더더욱 아니었고,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자주 행동으로 표현했던 이들도 아니었으며, 그저 나도 문제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도 있었기에 그러면 안되겠다고
문제제기를 한 평범한 시민들이었으며, 전경의 군화발 아래 무참히 밟히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집안에서 두고만 볼 수는
없겠다 라고 생각한 일반인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굳이 객관적이지 않아도
될만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촛불이 처음 켜지게 된 시작점부터 이야기를 차근차근 진행해 가면서 왜 평범한 중고생들이,
왜 아이를 갖은 유모차 부대들이, 왜 예비군들이 다시 군복을 입게 되었는지, 왜 회사원들이 가정을 소홀히 해 가며 거리로
나와야했는지에 대해 시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서술 방식은 단순히 정부가 잘 못 해서 국민이 혼을 내러 나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무엇을 잘못했고, 왜 나섰으며,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정확히 짚어내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객관성을 담보로 진실을 더욱 진실되게 하기 위해, 이 과정 속에서 벌어졌던 몇가지 부정적인 이들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거론하고
있다. 실제로 촛불 시위 혹은 문화제가 커져가면서 몇가지 부정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정부의 생각과는 달리
특별한 주도 세력이 있었던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언가 큰 결정을 해야만 할 때에는 결정 과정에 문제를 겪기도 했으며,
평화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대부분의 생각과는 달리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려는 일부의 움직임도 생겨났으며,
이른바 '프락치' 논란도 생겨나게 되었다.
지금 같은 정부의 분위기를 보자면 이 같은 사항들을 거론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없이 여지를 만드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책 제목과도 같이,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명제에 근거하여 이 책은,
이런 여지를 두는데에 전혀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를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세력이
이를 들먹여 진실을 외곡하려 한다해도, 아니 외곡한다해도 결국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객관성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책 속 화자들의 입장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쓰여지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촛불에 시작부터 열렬히 참여했던 이들도 있으며, 뉴스에서 거론이 된 시점부터 나서게 된
이들도 있고, 몇 번 나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만 응원했던 이들도 있다. 물론 그 현장 속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싸워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되겠지만, 이렇듯 다양한 입장에 처한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근거해서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형식이 좀 더 객관성을 부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서론에 언급했던 것처럼 2008년 여름,
거리에서 뜨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에게 보내는 감상에 젖은 추억의 사진첩이 아니라, 촛불을 오해하고 아직까지 여기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 못한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제안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조금이나마 이 촛불행렬에 동참했던 사람으로서 좀 더 감상적이어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기억될 뿐이고, 촛불 밖에 있던 사람들은 끝까지 진실을 오해한채 살아갈 뿐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면에 있어서 좀 더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간결한 문체와 더불어 다양한 사진자료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이 만약 딱딱한 문체와 많은 글들로만 채워졌다면 훨씬 더 접근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복잡하고 어려운 글보다는 쉽게 쓰여진 글들과 쉽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진들로
주로 이뤄져있다. 사진들 역시 자극적인 사진들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라 이 촛불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볍고 친근한 사진들부터 충격적인 사진들까지 골고루 수록하고 있다.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를 무등 태우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라던가, 교복을 입고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서로 웃으며 위로하는 시민과 전경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뉴스나 언론등을 통해 전해졌던 자극적이기만 했던 이면에는,
이렇듯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일깨우는 한편, 현장에 가깝게 있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현장을 담은 사진들을 통해서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싸워야만 했는지에 대해 저절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을 한장 한장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현재도 거리 곳곳에서 촛불을 켜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존경심과 미안함이었다.
지난해 여름 촛불에 함께 할 수 없었던 이들은 물론이고,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격렬히 저항했던 '촛불시민'의 일부조차
현재는 대부분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와 이를 추억처럼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지난 여름처럼 대규모의 불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소규모로, 다른 형식을 통해 촛불은 계속 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왔으며
본래 촛불이 이루려던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위해 여기저기서 활활 불타고 있다. 보통 이런 서적이 발매될 당시 같으면,
어느 정도 사건을 정리하는 측면에서 '그 때는 그랬었지' '이런 사건들이 있었다'라는 식으로 서술하게 되지만,
아직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이 책 역시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물론 지난해 여름과 촛불을 정리하는 의미를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종결으로서가 아니라 진행형으로서 촛불의
행동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이 책은 그 작은 시작입니다.'
라는 표지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촛불이 가장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망각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촛불은 이제 끝났어 라고 생각하는 타인들을 위해, 그리고 지난해 거리에서 촛불을
함께 들었지만 현재는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추억이 아니라 현재에서도 촛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아주 작은 행동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더 함께하지 못해 부끄러웠고, 나 조차 망각했었던 부분이 떠올라 더욱 부끄럽기도 했다.
여러가지 미사여구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7월 5일 V for Vendetta 퍼포먼스 후기 #2
7월 5일 V for Vendetta 퍼포먼스 후기 #1
2008.06.30 _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2008.06.10 _ 6.10항쟁 거리에서.
2008.06.07 _ 촛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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