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이 화제가 된 지도 어느새 조금 시간이 흘렀다. 사실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기하)이 이 정도로 알려지기 전부터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은 몰랐었다. 내가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홍대를 거닐다 클럽 앞을 지날 때 호객꾼이 '자~ 달이 차오릅니다. 장기하와 얼굴들 오늘 출연합니다~' 라고 얘기할 때만 해도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기하가 누구야?'하고 물어올 때였으며, 소수들만 '오~ 오늘도 장기하와 달려볼까!' 라고 말할 정도였다. 장기하가 이토록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발점은 'EBS 스페이스 공감' 에서 헬로루키 코너를 통해 방송출연을 했던 것과 쌈지 페스티벌에서 숨은고수로 출전하여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부를 때 그 많은 관객들이 미미 시스터즈의 그 현란한 안무를 따라하면서 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 때부터 '장기하'라는 이름은 점점 소수를 넘어서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게 되었고, 급기야 몇몇 TV프로에서 새로운 현상과 이슈 메이커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장기하와 '싸구려 커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장기하에 대해서는 늦게 접한 편이다. 뭐랄까 개인적인 성격상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접한 경우가 아니라면, 특히나 장기하의 경우처럼 일순간에 스타가 되어버린 경우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이상하게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데 나도 좋아하는 유일한 존재라면 역시 '이효리'정도 ^^;), 그래서 남들이 다 수공예 소형앨범이었던 '싸구려 커피'에 열광할 때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이번 정규 앨범 '별일 없이 산다'는 이런 나에게도 본격적으로 장기하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장기하의 음악을 듣기 전에 알고 있던 그의 정보는 인디 밴드인 '눈 뜨고 코베인'의 멤버라는 점과 장기하 본인이 산울림 음악의 추종자라는 것이 전부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확실히 그 간 대중의 관심과 현상이 되다시피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은 참 듣기 좋은 것이었다. 역시나 김창완으로 대표되는 산울림의 분위기를 깊게 느낄 수 있었고, 인디 본연의 단백한 가사와 예전 국내 포크 싱어들의 장점들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음악들이 담겨있었다.




첫 번째 곡 '나와'는 예전 한국 록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간결한 드럼과 기타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인데, 후반 부의 코러스 부분은 뻔하지만 촌스럽지 않고 장기하의 보컬은 역시나 무심한듯 잘 어울린다. 두 번째 곡 '아무것도 없잖어'는 가사와 그 전달방식이 매우 재미있는 곡이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요소들이 잘 버무려지고 있는데, 거의 나레이션에 가까운 보컬과 기이한 느낌의 남성 코러스 그리고 컨츄리마저 느껴지는 리듬들까지. 가사가 참 잘들리는 가요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사 자체가 이야기를 가지고 전개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좀 더 몰입도가 높은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최근 가요 곡들을 보면 가사 전달에 대해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데, 이는 절대 간과할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곡이라 하겠다.

세 번째 곡 '오늘도 무사히'는 마치 서부영화에나 나올법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가면 역시 가사와 보컬에 있어 예전 가요들을 떠올리게 하는 구수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네 번째 트랙 '정말 없었는지'. 개인적으로 장기하의 앨범을 들으면서 찡하게 될 줄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곡을 들으면서는 순간 찰나를 경험했다고 할까(지금 리뷰를 쓰는 중에도 이 곡이 흐르자 바로 프리즈 상태를 경험!). 어쿠스틱 기타 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와 베이스가 더해지는 후반부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특히 가사의 감성이 매우 잘 전달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쯤 연습해서 불러보고 싶은 욕망과 더불어 이번 앨범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베스트 트랙이었다.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은 '오늘도 무사히'의 테마가 그대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 서부영화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데, 전자가 행진곡에 가까웠다면 후자는 주인공의 쓸쓸한 테마랄까. 가사를 살리는 재주가 참 맛깔난다. 분명히 클래식한 방식의 보컬들인데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말하러 가는길'은 초반부터 확실히 복고스러움을 드러내는 곡이다. 가요가 트로트에 빚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최근 댄스가요에서 흔히 써먹는 '뽕필' 말고도 좋은 것들이 많은데, 이 곡은 전통 트로트에 고즈넉한 감성을 장기하 식으로 잘 승화시킨 곡이라고 생각된다. '나를 받아주오'에 가면 좀 더 노골적이 된다. 장기하는 장난치듯 보컬을 사용하는데, 예전 가요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추임새들과 코러스, 그리고 송창식의 곡이 떠오르는 지르는 후렴구까지(그런데 마무리는 역시 김창완이다;;). '그 남자 왜'는 펑키한 리듬으로 시작된다. 역시 요즘 펑키한 곡들보다는 예전 제임스 브라운 같은 스타일이 오히려 더 묻어난다. 그런데 역시 가사와 전달 방법은 토속적이다(하지들 마러, 남자랍니다. 뭐 이런식의 가사들은 정말 맛깔스럽다).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는 약간 아방한 느낌마저 드는 곡인데, 마치 신디사이저 초창기에나 들었을법한 올드한 신디 사운드와 약간 사이키델릭한 기타사운드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장기하의 가사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변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 라니! 그 다음은 지금에 장기하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싸구려 커피'다. 이 곡은 너무나 유명하니 굳이 말하면 잔소리일듯. '달이 차오른다, 가자' 역시 전자와 비슷한 경우지만 짧게 코멘트해보자면 전자가 김창완 스타일이었다면 후자는 송창식 스타일이라고 봐야할 듯 싶다. 뭐 미미 시스터즈의 그 현란한 팔동작 봤어요? 못봤으면 말을 마세요.

'느리게 걷자'는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온 듯한 느낌을 그야말로 '갑자기' 느껴버릴 수 있는 희한한 레게 리듬이 가미된 곡이다. 레게 리듬에 토속적 가사와 정서를 불어넣은 것은 이전에 강산에도 들려준 바가 있는데, 장기하 역시 잘 소화해내고 있다. 마지막 트랙 '별일없이 산다'는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으로서 다시 산울림 스타일의 록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후렴구의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할 고민없다'는 완전 김창완 100%다. 파이프 오르간 스러운 간주부분에 연주도 인상적이고 장기하의 단백하고 깔끔한 토속 보컬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에 바라는 점이라면, 이런 감수성을 잃지 말고 계속 앞으로도 음악 활동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겠다. 뭐랄까 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했을테지만 생각보다 너무 큰 이슈와 관심을 불러일으켜 버렸기 때문에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을텐데, 팬으로서 조심스러운 염려랄까. 하긴 이런 것에 휩쓸릴 장기하와 얼굴들이었다면 '별일없이 산다'라는 타이틀로 첫 정규앨범을 내지도 않았겠지. 훗.






장기하와 얼굴들 - 정말로 없었는지 (Live)





이건 별도로 지난 번 장기하를 다시 보게 한 또 하나의 동영상.
'장기하와 조까를로스 - Smells Like Teen Spirit'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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