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다시 없을 황금연휴였지만, 연휴의 시작에는 아파서 골골했던 탓에 그저 집에서 요양을 택했고, 슬슬 몸을 풀다가 마지막 날인 오늘에야 나들이 다운 나들이를 갈 수 있었는데, 행선지로 정한 곳은 그나마 서울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라 할 수 있는 '월미도'. 예전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당친구들과 놀러갔던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에 다시 가보게 된 월미도 였는데, 그 때가 겨울이긴 했지만 한산했던 그 때의 기억과는 달리 '어린이날'이라는 엄청난 공휴일은 대단한 인파를 불러모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 구경에 더 정신이 없었던 하루였다. 그런데 그 사이 정말 몰라보게 관광지로 더 거듭난(?) 월미도는 그야말로 이상하고도 신비스러운, 충격과 공포, 포복절도의 섬이었다.
버스에서 만난 충격과 공포의 척추전문 병원 과장 광고부터 심상치 않았음을 감지했어야 했다. 아무리 척주 전문 병원이라지만 거대한 코끼리를 단순히 '척추'만으로 버티고 있는 저 외국인 남자의 모습은 그 강건함을 따지기 이전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것이었는데, 이 때만 해도 이 섬과 이 섬을 감싸고 있는 이상한 분위기를 그저 기우 따위로 여겼었다(아, 그리고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버스내 화술/스피치 교육 학원 광고에는 오타가 버젓이 있기도 '망서리면 (x)' '망설이면 (o)).
어린이날 관광지로 쏟아져나온 어린이들에게 조금의 산뜻함을 심어주고자 과감히 선택한 레드 컬러의 폴로셔츠. 아이들도 그 진한 붉은 색에 눈이 부셔 흐뭇해했겠지.
월미도의 갈매기들의 주식을 새우깡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농심'의 거대한 음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이론을 설파하며 갈매기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푸른 5월처럼 푸르기만한 바다도 바라보고.
워낙에 사람이 많았던 관계로 영종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려다가 포기.
코스모스 유람선을 타려다가 여기도 사람이 무진장 많아서 포기.
결국 우리 같은 포기자들이 모여있는 바위 주변에 앉아 바다를 보다.
너무 충격과 공포에 휩쌓였던 터라 미처 사진을 다 찍지도 못했지만, 온통 가게들로 꽉꽉 채워진 월미도에는 참으로 인상적인 이름의 가게들이 많았다. '왕돈까스 클럽'은 경양식의 고급 소파가 멋스러운 가게였으며, '몰디브' '북경' '4D 영화 체험관' '도그까페' '패밀리 레스토랑' '신당동 원조 할매 떡복이집' 다양한 횟집들 등 패스트푸드 점을 제외한 국내 모든 먹거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이 곳 '월미도'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시작해 불과 했으니...
한 귀퉁이 건물에서 발견한 충격의 상호들이 적힌 간판들. '간다간다 뿅간다'! '전라도 해남 이판사판'!
'못 잊어 또 왔네'는 명함도 못 꺼낼 정도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간다간다 뿅간다'대신 '간다간다 쑝간다'였으면
좀 더 임팩트가 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충격적인 간판에 놀라움을 금치못하였으나 귀퉁이를 돌자 더 화끈한 간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밧데리 부인'과 '17호'가 만나 묘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밧데리 부인 17호'. 그리고 그 옆에 작게 써있는 '(구)젓소부인'.
그렇다 현재는 '밧데리 부인 17호'이지만 한 때는 '젓소부인'이었던 것. 더군다나 이 가게는 지역감정을 보란듯이 자랑하고 있다.
'호남목포신안광주는 공짜'. 이 얼마나 쿨한 경영전략이던가! 아마도 회를 파는 듯 한데 회와 '밧데리 부인'의 연관관계는 끝내 찾아내지 못한 채 모퉁이를 한 번 더 돌자,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 간판들이 등장했다.
역시 '어쭈구리 대박났네'는 명함도 못 내밀 포스를 자랑하는 활어회 전문인 '세자매 언니 히프가 기가막혀'!
도대체가!!!! 무슨 싸구려 술집도 아니고(하긴 싸구려 주점들은 이름은 다 그럴싸하다), 이런 화끈하고 낯뜨거운 상호라니.
이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컨셉 빌딩인듯 했는데, 이런 저질 컨셉이 얼마나 매상에 도움이 되는지는 미처 조사해볼 수 없었다.
아...계속 이어지는 화려한 간판의 향연.
'삐삐부인 진동왔네' '곧 망할집'. 이 정도면 '허벌나게 많이 드립니다'는 그냥 귀여울 뿐이다. 이런 컨셉 빌딩에 입주한 터라 살짝 민망한 표정으로(아니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호객행위를 하는 아주머니 분들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누가 삐삐부인이고 누가 밧데리 부인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렇게 요상하고 포복절도의 가게들에 충격과 공포를 느끼긴 했었지만 그 중 가장 무서웠던 건 바로 이거였다.
사람이 끄는 것도 아니고 말이 끄는 건 더 아니고, 개가 끄는 것도 아니라 무려 로봇이 끄는 저 마차, 아니 전차라고 해야하나.
아...동영상을 찍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는데 저 인형에 옷을 입힌 로봇이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테크놀로지의 끝을 보여준다. 정말 무서운 몸동작 그 자체였는데 절둑 거리는 듯도 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귀여운 옷을 입은채 기계적인 동작으로 수레를 끄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웠다.
더 무서웠던 건 이런 수레가 2대 인데, 2대가 우연히 조우했을 때였다.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 조우 장면은 SF/테크놀로지 역사에 화려했던 순간으로 반드시 기록되리라.
이쯤되면 공포에 잠식되기 직전이라 한시바삐 자리를 떠 얼른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월미도 하면 디스코 팡팡이나 바이킹 정도가 무서운 것으로 여겼었는데, 그것과는 비교되 안될 것들로 채워진 신비하고도
공포스런 섬, 월미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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