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 2007)
외로운 시대, 외로운 가족의 초상


2007년 작이긴 하지만 이번에 국내에는 처음 정식으로 선보이게 된 시드니 루멧 감독의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12인의 성난 사람들>, 알 파치노가 열연했던 <뜨거운 오후>, 범죄/미스테리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등을 연출했던 거장 시드니 루멧의 작품이라는 점만으로도 일단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감독의 이름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을 보니 이건 더 대단한 것이 아닌가. <카포티>와 <다우트>를 통해 새삼스럽게 연기력을 평가받고 있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적어도 개인적으론) 에단 호크, 그리고 최근 <더 레슬러>를 통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마리사 토메이와 대배우 알버트 피니까지. 이런 배우들과 시드니 루멧이라는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은 과연 어떨지 영화 팬으로서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부터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범죄 현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는 일단 생략한채 살인이 발생하게 되는 범죄 현장을 보여주고는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그런데 이 범죄 현장에 얽힌 이들과 사연이 예사롭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너무 일반적이고 현실적이라 예사로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형제인 에디(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와 행크(에단 호크)는 각자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보석상을 털기로 계획을 세운다. 아, 계획은 형인 에디가 한 것이며 행크는 단지 실행할 뿐이다. 그런데 이 보석가게는 다름 아닌 형제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다. 이 계획에 흥미로운 점은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없는 범죄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보석상을 털어서 돈을 챙기고 부모님은 보험을 들어 놓았기 때문에 피해는 커녕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범행 예상시간에는 가게 내에 노인 한 명만 지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별다른 몸싸움이나 인명 피해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훔치려는(얻으려는) 돈이 일확천금이 아니라 단순히 현재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정도라는 것이다.

보통 범죄 영화와 이 영화가 가장 차별되는 점은 바로 이 목적에 있다 하겠는데, 이 계획은 에디와 행크에게는 각자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그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아무도 피해받지 않고 서로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정도만을 목적으로 한 범행이었으며, 더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가 된다. 에디의 계획에는 없었던 인물이 행크의 뜻에 따라 합류하게 되었고, 목숨을 잃은 사람이 2명이나 발생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형제의 어머니가 가게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자 이들 형제는 몹시 당황하게 된다. 평소 우유부단하고 독립성이 부족했던 동생 행크는 이 현실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모든 일을 계획대로 이뤄 처리하던 형 에디도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로 인해 틀어져 버린 이 현실 때문에 공황상태에 빠져버린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점은 바로 이런 점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인물들이 모습, 더 나아가 결국 이들이(이럴 필요도, 그럴만한 목적이나 악의를 애초부터 갖지 않았던 이들이) 얼마나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는 가에 대한 묘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영화는 기법 측면에서 사건이 진행되고 나서 그 사이에 각 인물들이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가 일종의 플래쉬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단순히 기법 측면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듯 하다. 제목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에서도 알 수 있듯이, '~ 뭐 하기 전에' 라는 뉘앙스와 계속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그 전으로 돌아가는 구성 방식은,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나약한 인간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있으며, 항상 이런 불안 요소를 잠재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외로운 이들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의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바로 이 불안감에 대해 영화는 또 깊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겉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인물들, 그리고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일들이 결국 모두 표면 밖으로 터져나오는 걸 보여주면서, 이런 불안감을 항상 잠재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했다. 범죄 현장에 무엇을 남기지는 않았는지, 목격자는 없었는지 행크에게 닥달하듯 계속 되묻는 에디의 모습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어떤 불안의 잠재요소가 있는지 되묻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불안 요소를 더 증폭시키기 위해 영화 음악이 의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영화의 영화 음악은 마치 사운드 시스템에 오류가 난 것이 아닌가 흠짓 착각했을 정도로 계속 불안하게 음이 끊긴 채로 전달된다. 이렇듯 관객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영화 속 인물들의 불안한 심리를 더 극대화 시키려는 영화적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었던 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한 인물들의 해석이었는데, 아버지로 부터 이어진 가족의 불안요소와 불화가 결국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각 인물들의 상황을 겪으면서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어떻게 작용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에디와 행크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본인도 의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더 저지르며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특히 본래는 아무도 죽이지 않으려던(그래서 총도 장난감 총만 준비하고자 했던) 계획을 세웠던 에디는 사태가 급변하면서 이 사건에 관련된 이들을 거침없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내러티브 측면에서 왜 에디가 필요없는 사람까지 죽여야 했는가라고 묻는 다면, 이 상황에 놓인 에디는 이미 그런 맥락을 다 따져가며 살인을 저지르는 심리 상태가 절대 아니었다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 스스로도 공포스러울 정도로 일을 최악으로 몰고 가버리게 되는데, 이건 일종의 불안에 잠식되어버린 연약한 인간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가족으로 다시 돌아와서. 흥미로운 점은 에디나 행크의 모습이 너무도 외로워 보였다는 것이다. 일단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경제적인 문제를 나누고 들어줄 만한 친구나 동료가 이들에게는 없었으며,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았을 때도 고민을 들어줄 존재라고는 결국 자신들 밖에는 없었다. 특히 에디의 경우는 돈을 주고 마약을 거래하는 마약상에게 자신의 이런 고민을 털어놓게 되는데, 마약상은 딱 잘라 관심없음을 표현한다. 정말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 에디가 참다참다 못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이런 남과도 같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가정 내에서 문제를 겪은 이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데 실패했는지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에디와 행크가 끊임 없이 서로에게 전화하는 것은(특히 에디가) 단순히 이 사건에 둘이 공모했다기 보다는 이런 고민을 나눌만한 이가 서로 밖에는 없기 때문인 점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외로운 시대에 외로운 존재였던 이들이 어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닥쳤을 때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 이들이 이렇게 까지 되어버린 데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큰 책임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는 텍스트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작 감독은 이 영화를 멜로 드라마로 규정하기도 했는데, 그런 측면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더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우트>를 보며 '와, 연기만으로도 이렇게 공포감을 느낄 수 있구나'하는 것을 실감하곤 참 대단하다고 느꼈었는데,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또 다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이 영화 내에서 거의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데, 별로 폭발시키지 않고 내색을 하지 않는 듯 하면서도 이렇게 캐릭터에 무게감을 전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전작들을 통해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여러 종류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의 또 다른 면목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고수의 연기였다 하겠다.

에단 호크는 자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의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하겠다. 단순히 이미지를 소비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기반으로 영화 속에 잘 녹여낸 경우로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를 보여주고 있다. 마리사 토메이는 최근 작품들에서 연이어 노출 장면이 많아 한편으론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 독특한 말투는 과연 이 사람이 <더 레슬러>에 나왔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 배우는 아버지 역할을 연기한 알버트 피니였다. 복잡하게 얽혀버린 가족사를 점점 알게 되는 인물을 연기하는 알버트 피니의 모습은 현실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는 다른 측면에서 압도당하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한다. 표정 하나하나에서 그야말로 '열연'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영화가 좀 더 풍부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에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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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진중권 교수님과의 씨네토크 사진들. 클릭하면 좀 더 큰사이즈로 보실 수 있어요)

이 날은 영화가 끝나고 진중권 교수님이 함께하는 씨네토크가 이어졌다. 기존 영화 관계자나 평론가가 참가하는 씨네토크와는 달리 진교수님이 자신의 정리해온 내용을 발표형식으로 진행한 이후 토크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영화 평론가라던가 관계자와 함께하는 방식이 아니다보니 일반적인 씨네토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좀 색다른 분위기의 씨네토크여서 흥미롭기도 했고, 영화 내용에 관한 토론보다는 철학적 텍스트에 관한 (아무래도 씨네토크 진행자와 참가자들의 성향에 따라 이런 방식으로 흐르게 되었던 것 같다)  이야기로 이어져 신선하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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