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맨유의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아스날과의 홈경기 리뷰를 할려고 했지만, 그 보다는 카를로스 테베즈에 대한 얘기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 주제를 급선회.

1. 요즘 프리미어 리그 내에서 가장 거취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는 세 사람을 고르자면, 첫 번째는 시즌 내내 레알 행 루머가 지겹지도 않은지 계속 쏟아져 나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도이고 두 번째는 첼시 감독직을 계속 맡아줄 것인지 모두가 염원하고 있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거취문제이며, 마지막은 바로 올시즌으로 임대가 끝나는 맨유의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즈에 거취일 것이다.

2. 테베즈는 알려졌다시피 복잡한 관계가 얽히는 바람에 맨유에 임대선수로 오게 되었고, 소속도 전 소속팀이 아니라 에이전시 소속으로 되어 있어 맨유나 다른 팀에 테베즈를 영입하려면 이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다.

3. 시즌 내내 테베즈는 맨유에서 분명 세 번째 옵션이었다.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 세계 어느 리그에 가더라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할 수 있는 테베즈에게 출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넘버 3의 역할은 분명 탐탁치 못한 것이었을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일종의 태업을 한다거나해서 자신의 가치를 오히려 하락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테베즈는 전혀 달랐다. 그는 간간히 얻는 출전기회에서 그야말로 몸을 불사르듯 뛰어다녔고 자신의 가치를 매번 입증하곤 했다.

4. 처음 맨유가 테베즈를 영입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맨유에게는 이미 루니와 호날도가 있었기 때문에 특히 루니와 스타일이 많은 부분 겹치는 테베즈 보다는 베르바토프 같은 타켓형 스트라이커이거나(물론 벨바토프도 전형적이진 않지만), 산타크루즈 같은 장신의 공격수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5. 하지만 맨유는 테베즈, 루니, 호날도, 박지성, 긱스까지. 이렇게 공격수와 미드필더 진이 유기적으로 계속 고정되지 않고 자리를 바꿔가며 중앙과 사이드로 침투하고 펼쳐지는 공격방식으로 올 시즌 역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다른 팀에는 있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는 없었지만 맨유는 그들 만의 스타일로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그 중심에도 테베즈도 있었다.

6. 테베즈가 역시 스타플레이어라는 점은 최근 들어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최고로 쏠려있는 이 때에 출전하여 골을 연속으로 성공시키는 모습은, 그야말로 '스타'였다. 테베즈는 언론과의 인터뷰가 아니라 골로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였고 팬들은 이런 테베즈를 사랑할 수 밖에는 없었다.



(골을 넣고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테베즈의 모습을 다음 시즌에도 보고 싶지만...무리일까''')

7. 우리는 박지성의 보이지 않는 활동력에 놀라곤 하지만, 맨유 경기를 보다보면 테베즈의 움직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최전방 공격수임에도 최후방까지 내려와 수비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상대편 수비수가 골키퍼에게 백패스할 때 골키퍼를 압박하기 위해 끝까지 골을 열정적으로 쫓는 거의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이런 압박은 팀에게 공격권을 얻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팬들은 이런 선수를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8. 잘 알다시피 월드컵에서 영국와 아르헨티나는 앙숙의 관계다. 잉글랜드는 유독 중요경기에서 아르헨티나에게 발목을 잡혀 패배의 쓴맛을 본 경우가 많았었는데(따져보면 그리 수적으로는 많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임팩트 면에서는 분명 아르헨티나가 강했을 것이다), 테베즈가 출전하거나 몸을 풀 때마다 '아르헨티나'를 연호하는 올드트라포드의 팬들은 그런 점에서 더 이색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9. 테베즈는 감독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이지만 팬들로서는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열정을 보여준 플레이어였다. 그런 그가 지난 두 경기에서 골을 넣고 보여준 골 세레머니는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골을 성공시키고 나서는 평소와 다르게 하프라인까지 뛰어와서는 두 손을 귀에 가져다대고 마치 '나를 붙잡으려면 더 크게 소리질러봐라'하고 외치는 듯한 포즈는, 팬들의 열망을 더하게 했다.

10. 아스날과의 리그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이런 애틋함을 더 찾아볼 수 있었다. 올드트라포드 이곳저곳에는 테베즈가 떠나길 원치 않은 팬들이 그를 그리는 문구들을 써왔으며, 역시나 그의 플레이 뒤에는 '아르헨티나'가 연호되었다.

11. 후반 박지성과 교체되어질 선수가 테베즈로 알려지자 올드트라포드에는 일제히 야유가 쏟아졌으며, 아쉬운 점이 남은 듯한 테베즈는 이내 마음을 접고 뛰어나오며 팬들을 향해 두 손을 연거푸어 흔들었다. 이건 분명히 그 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인사와 안녕의 메시지였다. 아마도 마지막일지도 모를 팬들과의 만남에서 테베즈는 오랫동안이나 손을 흔들어 안녕을 고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교체되어 들어오는 박지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찡했다.

12. 아마도 테베즈는 다음 시즌 맨유에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선수이적이야 유니폼 들고 사진찍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 상황만으로 봐서는 떠날 확률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테베즈는 리버풀로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는데, 맨유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역사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만약 테베즈가 리버풀로 이적한다면 라이벌 팀으로 이적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올드트라포드에서 야유를 받지 않는 유일무이한 선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짤방은 우승을 축하하는 맨유 선수들!


친박연대는 어디가나 꼭 붙어다니는게 기특하기까지 하다 ㅎㅎ
개인적으로는 이 자리에 오언 하그리브스가 함께 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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