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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아름다워.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을 보기 전,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황옥의 이야기에 대해 먼저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아주 자세하게 살펴본 것은 아니었지만 황옥의 삶은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에게 조차 그가 끝까지 의열단 단원이었는지 아니면 일본 경찰이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당시 행했던 행동과 결과들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이라는 시대를 설명하는 존재인 동시에 몹시 영화적인 인물로서 아마도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황옥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고 했을 땐 그 존재의 모호함을 어떻게 시대와 함께 그려낼 것인지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작품이 바로 김지운의 '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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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기대와는 다르게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라는 인물 (영화 속에서 황옥과 같은 인물)이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 모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의열단과 뜻을 함께 했다는 확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 황옥의 삶을 보면 의열단으로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했다던가 반대로 일본 경찰이라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까지 번갈아 가며 행했었기 때문에 그가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가 매우 불확실한 인물인데, 영화 속 이정출로 분한 황옥의 모습은 초반에는 살짝 모호한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중반 이후부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주 확고한 시선으로 조선을 위해 행동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영화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실명으로 등장시키지 않았을뿐더러 다큐멘터리도 아니니까), 황옥이라는 인물을 영화화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밀정'이라는 제목 역시 그러하듯,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영어 제목처럼 시대의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위태로움에 대한 묘사와 영화가 끝났을 때 극장을 나오며 '과연 이정출은 어느 편에 섰던 것일까?'라고 되묻게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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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러한 선택과 별개로 192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이미지, 미장센은 역시 기대한 대로 매혹적이었다. 당시 상해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미장센이 스크린 가득 펼쳐졌을 땐, 아마도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선택했을 때 바로 이런 장면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소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서 기대대는 바와 영화적 시대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모습이었다. 기차 씬도 전체적인 긴장감의 묘사가 흥미로웠고 후반부의 볼레로를 배경으로 한 씬은 반어적인 음악이 적중한 매력적인, 또 보고 싶은 멋진 씬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나중에 읽어보니 처음에는 존 르카레의 스파이 영화들처럼 차갑고 건조한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자 싶었으나 후반부가 되었을 때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에 대해 감화되어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래서인가. '밀정'은 매력적인 요소가 충분했음에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조금 아쉬운 점이 남는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지점은 두 군데 정도인데, 장면으로 두 곳 정도이지만 아쉬웠던 이유는 사실 같다. 하나는 중반쯤 독립군들이 밀정으로 인해 함정에 빠져 참혹하게 사살될 때 스윙 재즈 곡인 'When you’re smiling'이 반어적인 느낌을 주며 배경에 흐르는 장면이다. 이런 반어적 음악의 사용은 참혹함을 강조시키기거나 혹은 정반대로 풍자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선과 악이 모호한 주인공 혹은 인물이 또 다른 악을 처단하거나 할 때 비극적인 느낌이 아닌 음악을 활용함으로써 그 인물의 선악의 모호함과 함께 그 행위 자체의 선악의 불분명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밀정'에서 독립군들이 총격을 당해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리듬감 있는 재즈 음악이 흐를 땐, 반어적 활용에서 오는 재미나 메시지보다는 1차적인 불편함이 더 컸다. 이러한 반어적 음악의 활용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액션 (폭력, 살인 등)을 행하는 인물이나 당하는 인물의 선악이 불분명하거나 특히 가하는 쪽이 분명한 정의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데, 독립군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명확한 슬픔과 아픔의 역사이기에 아직은 반어적으로 표현하기엔 보는 입장에서 불편함이 더 앞섰다. 더군다나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확실한 전후 처리, 그러니까 친일 세력에 대한 벌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는 더욱더 불편한 영화적 기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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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기차 씬에서 이정출과 김우진 (공유)이 대화를 나누는 씬들도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중요한 상황으로 밀정, 그러니까 배신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동시에, 경성에 잠입하려는 의열단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 경찰이 서로 교차하기를 반복하는 장면으로서, 사실상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는 씬이다. 이 가운데 이정출은 김우진과 몇 차례 조우하게 되는데, 그 대화 시퀀스를 보면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은 밀정을 색출해 내고 또 무사히 경성에 도착하기 위한 말만을 전하는 반면,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이 대화 속에서 배우 송강호 특유의 말투와 유머를 구사한다.
예를 들면 김우진이 어떻게 하라고 이정출에게 말하자 이정출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기를 '저 새끼는 나한테 자꾸 명령을 하고 그래'라며 투덜대는 장면 같은 거다. 이런 생활감, 현실감 있는 대사들로 관객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연기는 오달수 배우나 송강호 배우 등이 많은 영화를 통해 자주 보여주었던 스킬인데, 그런 대사들이 적절한 곳에 사용되었을 때는 아주 반가울 일이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서의 웃음 포인트 (실제로 여기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웃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웃을 만한 장면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는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기보다는, 긴장감을 떨어 뜨리는 동시에 이정출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마저 떨어 뜨리는 역효과가 있었다. 너무 내용이 무겁다고 판단된 탓에 긴장을 덜어주고 재미를 주려 했다면 이러한 대화 시퀀스는 사건이 전개되는 시점에 삽입되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 중요한 그 기차 씬 중간에 벌어지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는 분명 아쉬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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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결과적으로 그 스스로 조금 모호한 지점에 놓여 버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애초 그리고 싶었던 것처럼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을 냉전 시대의 스파이 영화처럼 차가운 분위기로 그려내거나 아니면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더 감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섞으려 했던 것이 오히려 조금은 어중간한 영화로 남는 결과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역사를 다룰 땐, 특히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같은 정의롭지 못한 자들과 정의로운 자들의 결이 분명한 역사를 다룰 땐 행여 더 투박할지언정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밀정'은 영화적으로만 놓고 보았을 땐 이미지 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역사적 측면으로 보았을 땐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1. 써놓고 보니 마치 프로불편러가 작성한 글 같은데 영화의 전부가 그런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몇 가지 지적한 부분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부분을 특별히 콕 집어 얘기한 경우죠.
2.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밀정'과 '암살'을 비교했을 때 영화적으로만 보면 '밀정'이 훨씬 매력적이지만, 역사를 대하는 태도나 신중함에 있어서는 '암살'이 더 낫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암살은 맞고 밀정은 틀렸다가 아니라, 암살이 밀정보다 역사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얘기.
3. 전 개인적으로 일제 시대 그리고 독립운동의 근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로 풀어내기에 매력적인 소재인 동시에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고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영화와 프로그램 등으로 만들어져서 많은 억울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권력을 쥐고 있는 많은 친일파 세력들을 더 자주 불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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