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시간을 살았던 한 인간의 삶

어쩌면 구스 반 산트에게 하비 밀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밀크'의 연출은 운명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구스 반 산트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커밍아웃 한 게이로서는 최초로 미국 시의원에 당선되었고 인권운동가였던 하비 밀크에 대한 영화화는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는 구스 반 산트 외에 다른 감독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점은 단순히 구스 반 산트 본인이 게이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겠다 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하비 밀크의 이야기를 단순히 동성애자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했던 게이 정치인의 이야기로 그려내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저 뜨겁게 짧은 인생을 살다간 한 인간의 삶으로 그려냈다는 점 때문에, 이 영화 '밀크'는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좋은 작품이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참고로 이 영화는 2008년 제작된 작품으로 그해 열렸던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숀 펜)과 각본상 (더스틴 랜스 블랙)을 수상하였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 각본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아카데미 특수에 포함되어 개봉할 기회를 놓쳐버렸고, 결국 개봉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다행히(?)도 올해 2월에야 소규모로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었다. 극장에서 조차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만날 기회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DVD로 출시된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항상 죽음을 매개체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소년성과 함께 풀어내었던 구스 반 산트는 '밀크'에서 역시 죽음을 다루지만, 여기서의 죽음은 사건의 종결도 아니고 감정이 폭발해 나오는 지점 역시 아니다. 영화적인 구조 측면에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는 이 영화가 하비 밀크의 일대기를 다룬 연대기적 작품이 아니라는 점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하비 밀크가 1978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마지막 8년 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가 그리는 방식은 연대기적이지 않고 오히려 파편의 조각을 모은 듯한 구성을 하고 있다. 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해한 방식이라거나 형식적으로 파격적인 구성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밀크'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서사에 가까운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밀크'가 대중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관점은, 게이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전혀 게이 영화가 아닌 작품이라는 점인데, 일반적으로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이 동성애 자체를 이슈화 하기 보다는, 동성애 자체를 걷어내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을 때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고 봤을 때, '밀크'는 그 지점을 한 차원 넘어서서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드라마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본편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성애라는 것과 더 나아가 하비 밀크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인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구스 반 산트의 연출에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그 못지 않게 - 아니 더 하게 - 하비 밀크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깊은 교훈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비 밀크의 삶과 당시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특히 하비 밀크를 연기한 숀 펜의 경우, 사실 더 이상 연기에 대해 논하는 것조차 우스운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조금만 말해보자면, 영화 속 숀 펜의 얼굴에서는 전혀 그간 연기했던 그 어떤 캐릭터의 얼굴도 겹쳐지지 않고, 오롯이 하비 밀크의 얼굴만이 남는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숀 펜이라는 배우는 바로 그 가장 당연한 부분을 가장 잘 해내는 배우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댄 화이트 역할의 조쉬 브롤린의 경우, 비교적 적은 비중임에도 댄 화이트라는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조쉬 브롤린 만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클리브 존스 역의 에밀 허쉬와 스콧 역의 제임스 프랑코 역시 당시 카스트로 거리가 현실로 느껴질 만큼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DVD Menu






DVD Quality

DVD의 화질과 음질은 평균적인 수준이다. 화질의 경우 다른 타이틀에 비해 조금 노이즈가 있고 선명한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DVD자체의 화질 문제라기 보다는 애초 작품의 화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평균적인 수준으로 보면 되겠다.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작품의 특성상 사운드적인 효과를 즐길 만한 요소는 부족한 편이지만, 대사 전달 및 감상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을 리뷰 할 때 자주하게 되는 말이지만, 화질과 사운드는 – 특히 사운드는 – 거들 뿐이다. 작품의 완성도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DVD Special Features

첫 번째로 소개할 부가영상은 'Deleted Scenes'인데 초반 하비와 스캇의 대화 장면과 하비와 잭 과의 대화 장면 그리고 법안 반대표를 위해 광대로 분장한 하비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삭제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Remembering Harvey'는 실제 하비 밀크의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 하비 밀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는 영화 속 캐릭터들의 실존 인물들이 대부분이며, 그 중에는 자기 자신을 연기한 이도 있고 극중 또 다른 역할로 까메오 출연한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 속의 하비 밀크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Hollywood Comes to San Francisco'에서는 배우들과 스텝들이 추억하는 하비 밀크와 더불어 감독 구스 반 산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배우들의 경우 각자 실존하는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뒷이야기 등 출연배우 대부분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주연을 맡은 숀 펜의 인터뷰가 수록되지 않은 점이 조금은 아쉽다.





마지막으로 'Marching for Equality'에서는 카스트로 거리에서의 행진 장면 촬영 뒷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당시 실제 행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촬영에 참여해 당시를 회상하는 인터뷰와, 역시 당시 행진에 참여했던 하비의 친구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총 평

구스 반 산트의 '밀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단순히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 날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영화가 주는 감동보다 실제 하비 밀크의 삶에 더 깊은 인상을 받게 끔 만드는 영화적 의도마저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하비 밀크의 삶을 2시간 넘게 보고 나면 누구나 이렇게 한 번쯤 자문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과연 이처럼 뜨겁고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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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2007)

구스 반 산트의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그의 전작 <엘리펀트>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소년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에서, 그리고 정적감이 감도는 분위기와
알렉스라는 이름의 주인공.

일단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를 소개하는 글에는 유난히도 감독인 구스 반 산트와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을 거론하고 있는데,
크리스토퍼 도일의 작품이야 이미 여러번 보아와서 잘 알고 있지만,
꼭 그여서 멋진 장면을 봤다는 느낌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개인적으로).
하지만 이번 '파라노이드 파크'는 분명 구스 반 산트의 메시지 만큼이나 그의 영상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크리스토퍼 도일은 이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포커스를 이용한 기법을 자주 사용하며
뚜렷한 것과 불투명한 것에 대한 의미를 표현하고 있고, 더불어 역시 평범한 장면들에서
보케 효과를 사용하면서 특별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슬로우비디오 기법이 마치 액션영화처럼 자주 등장하는데,
샤워장면에서는 물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영상들도 슬로우비디오 기법을 사용해
좀 더 인상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남게 한다.

(참고로 대부분 35mm로 촬영된 영상은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한 것이 맞지만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장면들은 스케이트 보더 전문 촬영기사인 레인 캐시 리 라는 촬영감독이
슈퍼8mm로 촬영한 영상이라고 한다)



'준비된 사람은 없어'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에도, 이 대사가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를 겪은 주인공에게, 이 말은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해결방법으로 친구던 누구에게던 편지를 쓰라는 친구의 말은
어른이나 부모가 아닌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방법으로 구원을 얻는
그래서 결국 준비 없이 맞게 된 이 우연한 사고가(영화의 경우 살인사건), 다른 사춘기의 고민들과 같이
그저 자신만의 성장통의 비밀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넓게 보아 이 영화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스스로 구원 받음으로서 진정으로 성장한다는 이 메시지는
정적감이 흐르는 영화의 분위기와 더불어 깊게 각인이 되었다.



슬로우 비디오를 통해 몽롱함과 생각할 순간을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괜찮았고,
(정적감을 많이 이야기하긴 했지만)적제 적소에 어울릴것 같지 않았던 음악을 잘 배치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낸 것도 좋았다.

<엘리펀트>와 더불어 구스 반 산트의 작품을 계속 보게 되는 이유가 될 만한 작품이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1. 오랜만에 들른 스폰지 하우스(구 중앙시네마)는 분위기가 좋더라.
2. 엘리펀트와 마찬가지로 1.33:1로 촬영된 화면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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