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슬러 _ 블루레이 리뷰 (The Wrestler : Blu-ray Review)
한계, 그 자체에 대한 찬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2008년작 '더 레슬러'는 최근 개봉한 그의 신작 '노아'와 전작 '블랙스완'과 함께 아로노프스키의 관심사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아로노프스키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갈등 그리고 정신 분열에 가까운 스스로에 대한 존재 가치 (아로노프스키는 단순한 고뇌를 넘어 존립의 문제까지 밀어 붙인다)의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배트맨' 영화를 연출하길 간절히 원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더 레슬러'와 '블랙스완' 그리고 '노아'는 비슷한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나, 각각의 강도와 결론의 정서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 작품 '더 레슬러'는 그 중 가장 연민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기는 하지만 한 편으론 잔인할 정도로 주인공을 홀로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외롭고 쓸쓸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한계에 부딪힌 한 인간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랜디 더 램(미키 루크)은 젊은 시절 프로레슬러로 큰 인기와 전성기를 누렸던 스타였으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보 청기를 착용해야만 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노년에 가까운 남성일 뿐이다. 그런데 랜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바로 그가 아직도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바로 이 점이 스포츠를 주제로 한 다른 성공 스토리의 영화들과 분명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실버스타 스텔론의 '록키 발보아'같은 경우 - 참고로 미키 루크에게 캐스팅 제의가 가기 전에 스텔론에게도 제의가 있었으나 바로 '록키 발보아'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도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 작품은 아로노프스키의 영화이자 미키 루크 본인의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그가 없는 '더 레슬러'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 전성기를 보냈던 주인공이 세월이 흐른 뒤 다시금 전성기 때처럼 열정을 가지고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으로 감동을 그려내고 있지만, '더 레슬러'의 경우는 전성기를 보낸 주인공이 한참 떠나있던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계속 몸을 사용해야 하는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비록 엄청난 주목을 받던 젊은 시절에 비해 지금은 작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오고 있으며 쉬지 않고 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 랜디가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은 무엇일까. 다른 성공스토리가 '그래, 내가 전성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할 수 있어!' 라는 식의 도전과 성공의 이야기였다면, '더 레슬러'의 구조는 '아,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의 고민과 고통에서 시작된다. 격한 프로레슬링을 하기 위해 수많은 약물 등을 동원해서 커리어를 이어오던 랜디가 어느 날 심장에 무리를 주는 쇼크로 쓰러지게 되면서, 랜디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그 동안 프로레슬러로 살아오느라 소홀했던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에게도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기로 하고, 자주 가던 스트립 바의 캐시디(마리사 토메이)에게도 오랫동안 숨겨왔던 '손님'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심장에 이상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좀 더 뻔한 줄거리였다면 전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레슬링을 했었을 테지만, '더 레슬러'의 랜디는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위해 큰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주저 없이 커리어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레슬링을 떠나서 그가 바로 피부로 겪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이다. 프로레슬링 비즈니스 속에서만 살아온 랜디가 이를 관뒀을 때 겪게 되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하나 뿐인 딸은 자신을 아버지로 대하기는 커녕 남 대하듯 쫓아내는 한편, 빈 트레일러 집에 덩그러니 누워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며, 레슬링을 하지 않으면 생계에 직접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안 어울리는 앞치마와 위생 모를 머리에 쓰고 동네 마트의 식품 코너에서 샐러드를 팔기도 해야 한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불러온 동네 꼬마와 구형 닌텐도로 자신이 등장하는 프로레슬링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랜디는 자신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레슬링 게임에 신나 하는 것에 비해 아이는 최첨단 FPS 게임(콜 오브 듀티 4)을 이야기하는 것은, 랜디가 현실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그 거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랜디가 이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랜디는 자신을 매몰차게 내치는 딸 스테파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캐시디에게 살짝 고백을 했다가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한 뒤에도 약한 불만의 표현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애초부터 하고 싶지 않았을 식품 코너 일도 긍정적이고 즐겁게 하려는 모습도 다른 인물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안쓰러웠지만).


랜디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의 묘사도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랐다.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뿌리치는 스테파니의 입장은 사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반응이었는데, 아버지가 필요할 때는 없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병을 얻고 나서야 나타나서 호의를 베푸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캐시디 역시 그간 아무리 자주 오가며 정을 쌓았다 하더라도 막상 고백까지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기에 냉정하게 봤을 때 랜디에게 다가오는 현실이 그리 가혹하다고만 (자초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영화는 최대한 냉정하게 그래서 동정하지 않으려 하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랜디가 현실에 대처하는 방식은 너무 순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에게 닥쳐올 현실을 모두 다 세상의 방식 그대로 받아들이는 랜디의 모습은 애처로운 동시에 너무도 현실적(영화적과 반대의 의미)이다. 사실 이런 현실이 닥쳤을 때 고통을 조금 호소하다가 바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이를 극복하려는 용기를 동시에 뿜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너무도 영화적이었던 것에 반해, 랜디의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의 진심을 얘기하며 그 거친 피부 아래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눈물 이상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했다. 랜디가 현실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유일한 부분은 일반 세상에서 통용되는 '로빈 람진스키'라는 본명이 아닌 '랜디'라는 레슬러로서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것이 전부다 (이는 캐시디 역시 '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언급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랜디가 처하는 현실의 극적인 대비 측면을 위해 영화는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쇼(Show)'로만 알고 있는 프로 레슬링이 얼마나 많은 '현실' 속의 사람들의 많은 준비와 노력으로 성립되는지를 구 차할 정도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통 같으면 프로 레슬링의 링 뒷면에서는 서로 저렇게 미리 합을 짜고 스토리를 준비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정도였다면 초반 한 두 번 연관 장면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을 텐데, '더 레슬러'에서는 이 부분은 랜디가 링에 오를 때마다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미리 칼날을 숨겨 이마에 커트를 내고 사용할 무기들에 관해 미리 준비를 하는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이렇게 치열한 경기를 치르고 링을 내려와 쇼의 뒷면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레슬러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라 하겠다.


보통 일반적 영화였다면 퇴물쯤 되는 랜디를 젊은 레슬러들이 그야말로 퇴물 취급하며 왕따 비슷하게 몰아갔을 테지만, 이것은 너무 극적인 요소만을 강조한 전개일 뿐, 현실성과 메시지를 중시하는 '더 레슬러'에서 젊은 레슬러들에게 랜디의 존재는 존경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링을 내려온 랜디에게 서로 등을 두드리며 나누는 '굉장했다' '죽여줬다' '영광이다' 등의 말 들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단순한 한 마디 이상의 대화인 것이다.





가장 쇼에 가까운 프로레슬러에게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또 하나의 진부한 설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더 레슬러'는 아로노스프키의 비전과 미키 루크라는 배우로 인해 현실과 영화를 교차하는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 넣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카메라 워크라 하겠는데,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랜디의 뒤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킹과 굉장히 가깝게 밀착되어 있는 인물과 카메라와의 거리는, 랜디의 삶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가장 훌륭한 영화적 선택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디테일 한 스토리보드 없이 랜디의 뒤를 따라간다는 기본 설정으로 대부분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카메라 워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랜디를 연기한 배우가 미키 루크라는 점에서 이야기에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랜디와 실제 미키 루크의 삶은 여러 모로 유사점이 많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영화 속 랜디처럼 자신의 한계와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돌아간(돌아온) 미키 루크의 열연은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실제로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잘 생긴 청춘 스타였던 미키 루크는 스스로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망쳐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헐리웃에서 멀어져 전문 복서로서 수 년 간을 활동해 오기도 했던 그의 삶과 극 중 랜디의 삶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미키 루크 본인은 극 중 랜디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 비슷해 처음에는 출연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랜디처럼 미키 루크도 더 이상 이 같은 점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인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실제 미키 루크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블루레이에 수록된 소책자 중 김세윤 작가의 글 '피투성이 휴먼 드라마를 완성한 만신창이 배우의 인생'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립 바에서 댄서로 일하고 있는 캐시디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단순히 주인공 랜디의 로맨스 상대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랜디와 비슷하게 한계에 부딪혀 갈팡질팡하는 캐릭터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젊은 댄서들에 밀려서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자신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인 랜디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랜디에 대한 사랑의 감정만이라기 보다는 랜디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 용기를 얻고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전이된 경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시디는 랜디가 스트립 바에 와서 돈을 주고 나체의 자신을 보는 것이 못 마땅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론 목숨을 걸고서라도 레슬링을 다시 하려고 하는 랜디가 안쓰러운 동시에 부럽기도 한 것이다.






랜디를 이러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링 위 임을 깨닫고 20년 만에 열리는 기념 경기에 보수도 없이 참가하기로 한다. 링 위의 공간은 철저한 쇼의 무대이자 다른 한편으론 가장 치열한 랜디의 현실이기도 하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이뤘고, 상대 레슬러도 랜디의 상태가 걱정되어 이쯤에서 끝내자고 하지만 랜디는 결국 더 완벽한 쇼를 위해 마지막 기술인 '램 잼'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링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영화의 엔딩은 마치 한계와 맞서 싸우다가 산화해 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계를 뛰어 넘었거나 넘으려는 승리의 정서는 분명 아니었다. 랜디는 자신의 인생과 현실, 링을 돌아보며 한계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 들인 채, 자신 만의 방법으로 마무리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랜디는 램 잼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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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가치에 우선한 소비자를 위한 타이틀


이미 자사 브랜드의 타이틀을 출시하기 전 부터 타 브랜드의 타이틀을 기획과 제작을 통해 소장 가치 높은 타이틀을 만들어 내 블루레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플레인 아카이브의 첫 번째 스틸북 타이틀인 '더 레슬러'는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 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런 부담감에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우수한 퀄리티의 타이틀을 또 한 번 만들어 냈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플레인에서 제작하는 타이틀 소책자에 글을 수록하며 참여했던 적이 있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번 '더 레슬러'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스틸북이라는 높은 제작비가 들어갈 수 밖에는 없는 프로젝트임에도 과감하게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고 출시를 결정한 것에 한 사람의 블루레이 유저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국내의 현재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이 같은 결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이번에도 역시 단순히 타이틀을 구매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소장 하고 싶은 '가치' 있는 타이틀을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번 '더 레슬러' 블루레이는 총 3가지의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스틸북 : 아웃케이스 버전과 스틸북 : 쿼터슬립 버전 그리고 일반판 : 아웃케이스 버전이 그것이다. 여기서 '스틸북 : 아웃케이스 버전' 위주로 소개를 하자면 덴마크에서 직수입한 고급 스틸북 케이스로 퀄리티를 보장하였으며, 제공되는 아웃케이스 역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쓰고 있는 고급 케이스로 스틸북과 소책자를 수납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40페이지에 달하는 소책자 역시 또 한 번 읽을 거리로 타이틀을 구매하는 재미와 가치를 선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틸북 특유의 디자인적 아름다움과 포스터 카드와 레슬링 카드 등의 부가 아이템도 좋았지만 읽을 거리가 풍성한 소책자가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단순한 보도 자료를 옮겨 수록한 것이 아니라 이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는 각 전문가들이 쓴 흥미로운 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꼼꼼하게 읽어볼 수 밖에는 없었다. 특히 '더 레슬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미키 루크에 관한 김세윤 방송작가의 글은 영화의 깊이를 더해줄 정도로 많은 정보와 흥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글이어서 유익했고, 김세윤 작가와 함께 음성해설에도 참여하고 있는 레슬러이자 WWE 해설위원 김남훈 선수의 글도, 작품 성격에 맞는 맞춤형 칼럼이라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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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노프스키의 작품들은 그의 의도에 따라 굉장히 거친 질감의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블랙 스완'이 특히 그랬고 이 작품 '더 레슬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작품은 본래 하나의 기획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의도의 거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주인공의 등 뒤를 시종일관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크는 거친 입자의 화질과 맞물려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불안함과 무거움으로 이끌고 있는데, 이런 의도를 생각한다면 감상에 지장을 줄 만큼의 걱정스런 영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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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조차도 예전 극장에서 보았을 때 화질의 대한 기억과 아로노프스키의 의도적 거친 영상이라는, 이미 각인된 이미지가 있어서 더 좋지 않은 화질일 것이라고 선입관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었는데, 실제로 평가를 위해 살펴보니 대형 TV를 통해 본 편을 감상하기엔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물론 디테일 한 평가를 위해 살펴보게 되면 전반적으로 어둡고 거친 영상 탓에 선명한 화질과는 분명 거리가 있고, 특히 PC환경을 통해 감상할 경우 이런 점이 더 도드라질 수 밖에는 없지만, 이는 블루레이 화질의 퀄리티 저하라기 보다는 본 편 자체의 영상이 그러한 것이므로, 화질의 기술적 평가와는 조금 분리해서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듯 하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실제 레슬링 경기 장의 소음과 링에서 벌어지는 경기 특유의 사운드 (링 바닥의 특성으로 인해 슬램 등이 이루어졌을 때 발생하는 소리들)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레슬링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액션 영화로서 레슬링이라는 장르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경기 장면에서의 사운드는 제법 익사이팅 한 편이다. 대화 시퀀스가 많은 편인데 미키 루크의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좀 더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으며, 마치 다큐멘터리 처럼 장면에 등장하는 공간 전체의 객관적인 소리를 들려줄 때와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거리감을 두고 각각의 소리를 전달할 때 모두, 각자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블루레이 사운드에 와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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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이라면 역시 앞서 언급했던 김세윤 영화전문 방송작가와 현역 레슬러이자 WWE 해설위원 김남훈 선수가 참여한 음성 해설을 꼽을 수 있겠다. 처음 이 두 사람이 음성 해설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 섞여 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아무래도 감독이나 배우 등 직접 작품에 참여한 이가 아닌 제 3자가 참여하는 음성 해설은 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제 3자의 음성 해설의 경우 정성일 씨가 참여한 음성 해설만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흥미로웠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과 뒷 이야기를 김세윤 작가가 전하고, 김남훈 선수는 실제 레슬러로서 바라본 시각을 통해 일반 관객이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 내는 등 두 사람의 호흡이 제법 괜찮아 듣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김남훈 해설위원은 마치 WWE 방송을 해설할 때 처럼 극 중 랜디의 경기를 디테일 한 기술 명 등과 함께 해설하는 해설 본능이 나오기도 해 WWE를 시청하는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웃음 짓게 되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다른 부가 영상으로는 약 43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 '링 안에서'가 수록되었는데, 몇 가지 제작 및 촬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레슬러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로 하고 일단 전국의 독립 리그들을 찾아 다녔는데, 거기서 감독의 어린 시절 영웅들이 아직도 1~2백 명의 관객 앞에서 백 달러를 벌기 위해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삶이 링 위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저 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니 영화 속 경기 장면들을 따로 만들어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실제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을 방문하여 이를 배경으로 촬영을 했어야 했는데, 극 중 등장하는 경기는 모두 실제 경기와 실제 선수들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된 영화는 단순히 카메라 워크의 측면 뿐 아니라 실제 촬영 및 제작 방식도 그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스토리보드가 있으면 배우들의 연기가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해 스토리보드 없이 배우들에게 상황만 주어주는 형태도 진행했으며, 레슬링 장면과 마찬가지로 마트 장면 역시 배우와 실제 손님들이 섞여 있는 채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짜여 진 형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담으려 하다 보니 배우들은 물론 스텝들조차도 현재 촬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헤 깔릴 정도였고, 실제 본편에도 실수를 한 장면이 그대로 수록되기도 했는데 이런 면에서는 마치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제작 과정 영상과 본 편 장면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기도 했다. 부가영상의 말미엔 극 중 출연하고 있는 실제 레슬러 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레슬링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와 사연들을 통해,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실제 이야기와 그들이 레슬링을 대하는 태도를 만나볼 수 있어 영화 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부른 'The Wrestler'의 뮤직비디오도 수록되었다.



[총평]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는 그의 영화적 비전과 관심사를 잘 드러낸 작품 중 하나였으며, 미키 루크라는 왕년의 스타의 스크린 밖 실제 이미지를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어 더 깊은 인상과 감회에 젖어 들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었다. 영화의 깊은 여운을 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소장가치 높은 블루레이 타이틀의 출시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서 영화 팬으로서 행복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패키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가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 한 편으론 '더 레슬러'라는 영화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들 정도의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가치를 정성스레 고이 담아내는 멋진 타이틀들을 국내에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정리한 뒤 뒤늦게 비보로 접한, 어린 시절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WWF 최고의 레슬러 얼티밋 워리어를 추억하며. 부디 편히 잠들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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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Noah, 2014)

새로운 시작을 위한 어떤 죽음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된 바가 명확히 있었다. 달리 말해 아로노프스키가 노아의 방주라는 소재를 가지고 '2012'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건 아마 그의 전작들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전작들을 통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의 육체에 관한 퇴화 혹은 불안정함, 불안함으로 인한 그 육체를 소유한 이들의 정신 착란에 가까운 고통과 혼란을 주목해 왔었다. 그런 시도는 예전부터 그랬고, 최근 작품인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표현되었었다. 신작 '노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노아'는 자신의 뿌리와 주어진 사명 그리고 원칙을 지키기 힘든 상황에 놓여버린 주인공 노아의 지독한 심리극이었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의 재난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낯선 영화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구약 성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 종교적인 영화를 기대한 이들도 마찬가지. 또한 이 영화의 구성은 마치 슈퍼 히어로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 까지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방주가 완성되고 재난이 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또한 여기까지는 구약 성서에 나온 내용과 큰 줄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디테일로 따지고 들자면 다른 측면이 많지만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방주에 타기 전까지는 크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얘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주인공의 출신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는다. 즉, 카인의 후예들은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에 대한 죄로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벌이 내려졌고, 아담의 셋째 아들이었던 셋은 태초의 주의 뜻에 따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했고 그의 후예인 노아와 그의 가족 역시 이 뜻을 받들어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카인의 자손인 두발가인은 무기를 만들고 자연을 파괴하려는 (생존을 위해) 이로 , 셋의 후예인 노아는 꽃을 꺽는 아들을 나무라는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과 공생하려는, 즉 명확한 선과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와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명확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우 이 둘 간의 대립을 그리기 위함이지만, 아로노프스키의 의도는 오히려 선으로 묘사된 노아가 그렇기 때문에 겪게 되는 갈등과 트라우마를 묘사하기 위한 사전 구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반대의 의미로 두발가인 역시 명확한 악당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은 노아가 스스로 원칙에 얽매이고 갈등을 겪게 되면서 더욱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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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노아는 일종의 선택 받은 자다. 하지만 노아가 받은 선택은 은혜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이자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까지 느껴진다. 신의 뜻을 거역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한 재난에서 무고한 동물들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노아에게는 처음부터 선택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그의 신념 때문 만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의 뿌리, 셋의 후예라는 이유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셋의 후예로서도 자신의 신념과도 일치했던 이 임무 수행이 나중에 가서는 신념은 물론, 자신이 세운(부여 받은) 원칙과도 상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아로노프스키의 비전대로 나아간다.


남여 혹은 수컷과 암컷 한 쌍으로만 가능한 방주를 두고 노아는 자신의 자식 가운데 짝이 없는 함의 짝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일라와 짝을 이루고 있는 셈의 짝 역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하는데 여기서 순간 자신 역시 스스로 이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책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내 가족의 생존에 관한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점에서 더 발전하여, 결국 이 재난을 주신 이유가 인간을 벌하기 위함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가 본인을 포함한 자신의 가족 모두도 구원 받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인해 노아는 가족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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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므두셀라의 은혜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일라가 임신하자 이 아이들이 종족번식을 할 수 있는 딸일 경우 바로 죽이겠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이는 노아와 가족들을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묘사되는 노아의 모습은 앞서 등장한, 악으로 묘사되는 두발가인 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악의 존재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로노프스키가 이 과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 선한 사람이 악한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단 '블랙 스완'의 니나 처럼 강박에 사로 잡혀 육체에 대한 제어 능력을 상실해 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는 노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후반부의 직접적인 안스러운 모습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측은하고 동정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가 방주를 만들고 이 재난을 겪게 되는 과정을 시작부터 보면, 그 스스로 결정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며 후에 가서는 정말 도구로 사용되는 것 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제어 기능, 혹은 자존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이렇게 나뉜다. 임무를 부여 받고 원칙대로 행하던 자신감 넘치는 노아와 스스로가 그 원칙의 아이러니 혹은 모순에 혼란을 겪으며 정신착란에 가까운 심리적 고통을 겪는 노아,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임무가 완료된 뒤 본인의 육체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무기력한 노아, 이렇게 각기 다른 세 가지 상태의 노아로 나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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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방향과는 조금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냥 철저하게 이 임무를 위해 도구로 활용되고 한 개인으로서는 버려지다시피 피폐해진 노아의 모습으로 쓸쓸히 마무리 되었다면 오히려 아로노프스키의 생각은 더 깊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거대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철저히 희생되어야만 했던 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다.


그래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구약 성서의 너무도 유명한 텍스트를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한 파트를 극대화시켜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바로 본인들이 믿고 있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 분이 이 영화를 자신을 모독하는 이야기라고, 그렇게 속 좁게 생각하실지 말이다.



1.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의외의 판타지적 요소도 제법 자연스러웠어요.

2. 대홍수(?)라는 재난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데미갓 퍼시잭슨을 연기했던 로건 레만이라는 점도 ㅎ

3. 개인적으론 의외로(?) 노아의 극 중 고뇌가 상당 부분 공감이 되었어요. 이런 운명에 놓여버렸다면 아마 저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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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아로노프스키의 극한의 백조의 호수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항상 그랬다. 그의 이름을 알게 해주었던 영화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이 그랬고, 얼마 전 왕년의 스타 미키 루크를 다시금 끌어올린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에서도 그랬다. 아로노프스키는 항상 대상을 어떤 상황에 던져 두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안한 심적 갈등과 신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왔었다. 극한이라는 것은 언제나 완벽이라는 것과 강박이라는 것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런 것에 관심이 많던 아로노프스키에게 '백조의 호수' 는 언젠가는 반드시 영화화 해야 했을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로노프스키는 백조의 호수를 상당히 늦게 접하게 되어, 한 명의 배우가 백조와 흑조의 두 가지 자아를 연기해야만 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감독 스스로도 정작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에 자세한 내용은 뒤늦게 알았던 터인지, '블랙 스완'에서는 누구나 알법한 이 유명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두 차례나 거듭 설명하고 있다).
 




뉴욕 발레단의 무용수 니나 (나탈리 포트만)는 누구보다 완벽한 안무와 실력을 갖고 있는 발레리나지만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 해야 하는 발레단의 새해 첫 작품인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단장 인 토마스 (뱅상 카셀)로 부터 듣는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보게 된 단장은 니나를 주인공인 백조 여왕으로 캐스팅하고, 그녀는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에 몰입 또 몰입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니나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흑조를 더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과, 같은 발레리나로서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압박, 그리고 자신에게 자리를 빼앗겨 버린 전 백조 여왕인 베스 (위노나 라이더)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자신이 갖지 못한 흑조의 매력을 갖고 있는 릴리 (밀라 쿠니스)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강박까지, 이 모든 것들을 여린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결국 '블랙 스완'은 강박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물론 이 강박은 완벽하기 위함 때문이다. 즉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니나는 (사실 이 작품은 강박 그 자체에 대한 텍스트에 더 가깝기 때문에, 본래 니나가 완벽주의자였는지 아니면 정황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벽해야만 했던 상황에 놓인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분위기로만 보자면 영화 속 니나는 둘 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나친 강박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와 환상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자아분열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로 인해 니나는 엄마와 릴리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모습으로 보게 된다. 어디까지가 니나의 환상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역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허상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근접한 카메라를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조명하는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완전하게 니나의 심리와 결합되어 움직인다. 여기에 동참한다면 관객 역시 니나가 겪는 불안한 심리와 강박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지하철 창에 비친 니나의 모습을 그리는 영상에서 우리는 감독의 전작 '더 레슬러'를 그대로 떠올려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 뒤에 근접해서 들고 찍기 (Handheld)로 촬영된 방식에서 역시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아로노프스키의 전작 '더 레슬러'와 짝을 이루는 영화이기도 하다. '더 레슬러'에서 미키 루크가 연기한 랜디와 '블랙 스완'의 니나 모두 신체를 이용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인 동시에, 부상에 대한 (혹은 신체의 변화) 공포가 있으며 신체를 활용하는 직업을 갖은 이로서 노쇠화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을 안고 있다. 또한 서로에게 작용하는 방식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쩌면 극복 이상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한계에 자신을 밀어붙여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맺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상 측면에 있어서도 다큐멘터리를 찍듯 거칠고 현실적인 질감을 보여주고 있는데, 같은 촬영 감독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동일한 컨셉과 분위기로 구성된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의 촬영 감독인 매튜 리바티크 (Matthew Libatique)가 아로노프스키와 '레퀴엠' '파이' 등 여러 번 호흡을 맞춰왔던 터라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블랙 스완'을 보고 나서 '더 레슬러'를 보게 된다면 좀 더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블랙 스완으로 돌아와) 아마 다른 감독이었다면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니나의 강박을 그리되, 심리적 갈등에만 집중하거나 관객에게 보여지는 영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덜 신경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이 같은 심리변화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도 몹시 흥미를 갖고 있는 감독이다. '블랙 스완'에서는 이런 불안함과 강박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정도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더니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그야말로 그 강도와 속도가 심장을 뚫고 나올 정도로 폭발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로노프스키가 택한 바로 이것. 주저 없이 극한까지 몰고 가는 영화의 속도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듬) 강도에 흠뻑 반했다. 사실 '블랙 스완'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발레 작품 '백조의 호수'를 그대로 다시 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독처럼 이 이야기를 잘 몰랐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 이야기를 겉핥기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도 흠뻑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블랙 스완'의 몰입 감은 최고수준이다. 또한 '블랙 스완'은 완벽한 '백조의 호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니나가 백조와 흑조 연기에 모두 완벽해 질 수록 영화는 점점 더 '백조의 호수'에 가까워 진다.
 





다시 매력을 느꼈던 그 '극한'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블랙 스완'은 주인공인 니나가 극심한 자아분열을 겪게 되면서부터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강도를 계속 높여 끝에 가서는 마치 '에반게리온'에서 에바와 신지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일정 수준의 극점을 뛰어넘어 버린다. 이런 시각적인 표현 방법과 클라이맥스의 속도 그리고 이야기의 세기는 분명 과잉이다. 과잉이라는 것은 본래의 그릇을 넘어 넘쳐난다는 것인데, '블랙 스완'은 이 넘쳐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넘쳐나기를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잉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감정선을 잃지 않은 채 과잉의 끝까지 극한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는 이 극한을 영화와 함께 경험했다. 진짜 얼마 만에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터질 듯하게 극중 주인공과 같은 박동으로 뛰고, 허기지고 힘이 들 정도로 몰입하며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블랙 스완'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도 이것은 분명 과잉이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과잉이었다.
 





작품의 매력을 잘 살려낸 또 다른 주역은 역시 배우들이었다.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실로 대단했다. 동년배 여자 연기자들보다 항상 한 발 앞서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였지만, '블랙 스완'에서 그녀의 연기는 극한까지 몰고 간 감독 아로노프스키처럼 극한까지 표현해 내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작품이 끝난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 작품은 시각적인 표현이 지금처럼 없었더라도 아주 무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큼이나 무섭도록 연기하고 있는 나탈리 포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탈리 포트만이 발레 연기에 대역을 썼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이 판단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뱅상 카셀의 경우, 아주 오래 전 '증오' 때부터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나에게 있어 뱅상 카셀은 모니카 벨루치의 남편이 아니라 그냥 오롯이 뱅상 카셀이다), 오랜만에 큰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다. 특히 뱅상 카셀이 이렇게 목소리가 좋았었나? 라고 느낄 정도로 세련된 발레단 단장의 캐릭터를 세련되고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다. 확실히 얼굴 속에 독기를 가득 담고 있는 뱅상 카셀의 캐스팅은 나탈리 포트만 만큼이나 완벽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덴젤 워싱턴과 함께 했던 '일라이'에서는 비주얼 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과는 달리, 밀라 쿠니스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릴리' 라는 캐릭터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데에 아마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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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 평가에 있어서는 앞서서 여러 번 언급했던 작품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거친 입자의 영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최신 영화 블루레이와 1:1 화질 비교했을 때에는 '아니 화질이 왜 이래?'하고 놀랠 수도 있으나, 본 소스를 트랜스퍼한 결과물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우수한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측면의 평가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 부분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의도된 거친 입자와 차별화되는 선명하고 깨끗한 화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확실히 샤프니스라던가 선명도와는 거리가 먼 화질이고 그레인을 가득 머금은 영상이지만, 이 모두가 의도된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만약 '블랙 스완'의 영상이 칼 같은 선예도로 표현되었더라면 전혀 다른 작품이 (단순 화질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운 타이틀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감독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극한으로 치닫는 작품의 리듬을 전달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전작 '더 레슬러'와 '천년을 흐르는 사랑'에 이어 이 작품의 음악을 맡고 있는 클린트 만셀 (Clint Mansell)의 사운드 트랙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데, 강약의 세기 전달에 있어 여느 액션 영화 못지 않은 쾌감을 준다.




클래식한 발레 음악과 기괴함과 불안함을 더해주는 인더스트리얼 계열 사운드의 조화는, '블랙 스완'의 음악을 단순한 클래식이 아니라 좀 더 특별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는데, 블루레이의 차세대 사운드는 이 두 가지을 모두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함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액션 영화 못지 않은 우퍼의 활용과 몰아치는 사운드의 향연 역시 추천할 만 하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에서 첫 번째로 만나보게 되는 것은 '제작과정'인데, 총 세가지 챕터로 나뉘어 각 주제별로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감독인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인터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 밖에도 편집자, 촬영 감독 외 스텝 들의 전문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촬영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 무엇보다 풀HD의 깔끔하고 쨍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반갑다.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내용들도 비중 있게 들려주는데, 작품 속에서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니나의 방과 같은 특별한 세트 외에도 뱅상 카셀의 연기한 단장의 공간들에서도 숨겨져 있는 디자인적 디테일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촬영을 맡은 매튜 리바티크의 인터뷰와 작업 방식을 통해 이 작품의 독특한 영상이 어떻게 촬영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을 비롯해 뱅상 카셀, 밀라 쿠니스, 위노나 라이더 등 배우들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의 대한 이야기는 물론,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감독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 작품을 연기하기 위해 각각 준비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 들려준다. 나탈리 포트만의 경우 니나를 연기하기 위해 수개월간 발레 연습과 혹독한 트레이닝을 해야만 했었는데, 물론 실제 영화에 사용된 장면들 가운데는 그녀가 연기하지 않은 장면이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얼굴을 대체한 장면들도 있지만, 그녀의 많은 연습과 발레리나 연기에 의문 부호를 갖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블랙 스완'에 사용된 특수 분장 및 효과,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등에 대해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에도 CG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좀 더 실제 분장을 선호하는 아로노프스키의 성향에 맞게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실제의 것을 활용하는 한 편, CG의 경우도 실제 발레리나의 연기와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를 합성하는 모션 캡쳐를 비롯, 극 중 니나의 환상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작과정 외에 '발레' '프로덕션 디자인' '의상 디자인' '나탈리 포트만 – 프로필' '대런 아로노프스키 – 프로필'에서는 각각 2~3분 여의 짧은 분량으로 각 주제에 대한 짧은 영상과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이 밖에 '감독과 배우의 대화 – 역할 준비하기'와 '감독과 배우의 대화 – 카메라와 함께 춤추기'에서는 각각 4분여, 1분 30초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나탈리 포트만의 대화 형식으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폭스 무비 채널로 제공되는 감독과 4명의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었다 (폭스 무비 채널 영상만 SD로 제공).

 



[총평]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은 완벽 그 자체에 관한 텍스트이자, 아로노프스키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신체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자아분열의 심리묘사를 거침없는 과잉의 리듬으로 쏟아낸 심장 뛰는 작품이었다. 이런 극한의 백조의 호수를 다시 금 체험하기에 블루레이 타이틀만큼 좋은 선택은 아마 없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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