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이야기 (Pixar touch, 데이비드 A.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창조적 기업의 역사


평소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기업이나 조직 가운데 픽사(Pixar)를 가장 동경해 오고 있다. 그냥 좋아하는 걸로만 따지자면 당연히 지브리 스튜디오가 되었겠지만, 일하고 싶은 기업이라던가 동경해온 조직이라면 단연 픽사를 가장 먼저 꼽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일하고 싶은 직장이나 동경하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회사는 구글(Google)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구글보다 픽사에게서 더 많은 장점과 비전을 발견해 왔었다 (픽사와 구글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서울 어딘가에서 나 혼자 무의미한 고민 중 -_-;). 애니메이션을 몹시 사랑하는 이로서 픽사의 작품들은 가장 애니메이션다우면서도 동시에 이전에 애니메이션 작품이 넘지 못했던 경계와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시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를 극영화와 동일한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든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이렇게 동경해마지 않는 픽사 스튜디오에 대한 책 한 권을 몇 달 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픽사 이야기 (Pixar touch)'이다. 픽사를 단순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 뿐만 아니라 조직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컸다는 점에서, 그동안 픽사가 걸어온 길을 조금이나마 들어볼 수 있는 이 책은 몹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픽사라는 회사자체가 존재하기 이전에 핵심 인물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서부터 '라따뚜이' '업'에 이르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픽사의 결코 쉽지 만은 않았던 여정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이 가운데는 픽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계기나 초기 루카스 필름에 세들어 살던 시절,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의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거대 스튜디오인 디즈니와의 관계 속에서 '토이 스토리'라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디즈니에서 독립해 자신들만의 성공을 맛보기까지의 일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평소에도 픽사에 많은 관심이 있던 터라 대부분의 사실 관계는 대충은 파악하고 있긴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픽사가 겪었던 시련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큰 것들이었으며, 하마터면 지금쯤 우리가 픽사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없었을 위기들도 참 많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세세하게 픽사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선택을 매번 해왔는지는 역사에 가까운 일이라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은 이 이야기가 단순히 픽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벤처 기업 혹은 창조적인 것을 비전으로 하는 기업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꿈을 위해 모인 조직이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을 맞닥들였을 때 그때마다 어떠한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이 결국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음 행동을 결정했는지를 보고 있으면, 이것이 단순히 픽사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시에 픽사 역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그로 인한 인간적인 문제, 부의 재분배, 조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겪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었으며, 그들이 걸어온 길을 풀어놓은 이 책의 내용은 수많은 벤처기업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밖에는 없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회사생활을 오래하며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들을 비롯해 정말 많은 일들을 겪어 왔는데, 그 때마다 해왔던 나의 선택과 픽사의 선택을 비교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양 선택을 비교해볼 수는 있었지만, 이 책이 들려주고자 하는 바가 무슨 벤처기업 성공의 정답해설지가 아닌 것처럼, 결국 무슨 선택을 해왔는가 보다는 벽을 만났을 때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꿈을 잃지 않아왔는지가 더욱 흥미롭고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픽사가 걸어온 길은 단순히 꿈을 쫓는 순진한 이상가들의 길도 아니었고, 반대로 돈과 성공을 쫓아 앞만 보고 달려온 길도 아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결과가 말해주듯 이 모든 역경을 겪어내고 성공이라는 것을 얻었기에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일반적인 경제적 성공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후일담도 분명 가능했을 것이다. 요새 동료들과 우스게 소리로 하는 얘기가, 우리 회사도 책 한권 쓰면 좋을 것 같다라는 얘기를 가끔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성공해야 의미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도 비슷한 의미)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어느 회사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굴곡을 겪게 마련이고, 그 시련을 어떻게 잘 견뎌내고 그 가운데서도 구성원과 비전을 지켜내는가에 따라 회사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 '픽사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점을 가장 많이 배우게 되었다. 픽사라는, 내가 가장 동경하는 회사가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설사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도 지금의 성공이 말해주듯 그들이 택해온 길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더 나아가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나와 내 회사의 미래와 꿈에 대해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준 책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에식스 카운티 (Essex County, 제프 르미어 저)
여운과 여백의 놀라운 그래픽 노블


사실 내게 있어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는 단순히 프랭크 밀러나 앨런 무어 등의 작가로 대변되는, 주로 히어로 물을 다룬 것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아니, 한정되어 있었다기 보다는 그것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 '에식스 카운티'와 '아스테리오스 폴립'이란 두 권의 그래픽 노블을 알게 되었는데, 서점에서 책을 사서 돌아와 집에서 첫 장을 넘기기 전까지만 해도 '에식스 카운티' 역시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바로 그 '그래픽 노블'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접하게 된 제프 르미어의 거칠고 유난히 음영이 강조된 그림체는, 분명 프랭크 밀러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말로 설명해 놓은 것만 보면 거칠고 음영이 강조된 그림체라는 것이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보게 되면 프랭크 밀러와 제프 르미어의 그림체의 성격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시작한 '에식스 카운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술 읽혀나갔다. 조금은 묘한 것이, 대놓고 기승전결 방식으로 이야기를 강조한 구성도 아닌데, 이야기에 흐름에 쉽게 몸이 이끌려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고 다음 그리고 다음,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표면적으로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결말 그 이상의 포용력으로 전체 이야기를 끌어 안고 있는 놀라운 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에식스 카운티'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로 여운과 여백의 미학이었다. 여기서 여백이란 직접적인 그림의 여백과 이야기의 여백 모두를 가리키는데, 고요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한 컷과 그것 만큼이나 느리고 반복에 가까운 컷의 진행은 직접적인 여백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는 가끔 서사의 구체적 묘사는 있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에 있어서는 많은 여백을 두고 있는 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감정들을 대부분 절제하고 있는데, 그것이 상대에게 하는 말일 때는 물론이고 혼자 속으로 하는 독백의 경우에도 절제의 여백을 남겨둔 점이 느껴진다. 이런 이 작품의 경향은 분명 답답함 보다는 미덕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한편으론 바로 이것이 '에식스 카운티'의 성격을 말해주는 포인트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여운. '에식스 카운티'는 제 1부 농장이야기, 제 2부 유령이야기 그리고 제 3부 시골 간호사로 이뤄져 있는데, 이 3부작의 짜임새와 연결 고리는 흔히 말하는 반전처럼 충격적이거나 반전을 위한 구성이라기 보다는, 각각의 캐릭터가 연결되어 있는 구성을 통해 결국 '인생'이라는 것과 존재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에식스 카운티'가 놀라운 그래픽 노블 작품인 이유는 바로 이처럼, 인생이라는 깊이의 여운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만화와 소설, 그러니까 이미지와 이야기와 완벽하게 결합된 지점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사실 이 두 가지가 이 정도로 각각의 높은 수준에서 접점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데, 제프 르미어는 두 가지 모두를 활용할 수 있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에서 다운 그레이드 없이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 (510p)이었음에도 단숨에 읽어내려간 이후의 느낌은, 사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감흥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려 다시 한번 책을 슬쩍 펼쳐 보았는데, 책의 어디를 펼쳐보아도 찡하고 짠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제서야 앞서 이야기했던 이 작품의 장점을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제프 르미어의 '에식스 카운티'는 내게 있어서도 참 특별한 그래픽 노블로 기억될 것 같다. 분명 이야기가 핵심인 작품이고 볼거리로 승부하는 작품도 아닌데, 책을 한 번 정독한 이후 '에식스 카운티'의 한 장 한 장은 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 소중한 한 장이 되어버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 (전리오 저)
록페스티벌에 녹여낸 실현가능 판타지


고백부터 하고 시작해야겠다.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이라는 책의 제목과 글래스턴베리 록 페스티벌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나는, 이 책이 당연히(?) 글래스턴베리에 다녀온 저자의 여행기 혹은 체험을 통한 소개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당연히 여행기 인 줄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을 안하고 있다가 불현듯, '잠깐, 책 속의 주인공의 이름은 김철민인데, 저자의 이름은 전리오 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고나서 처음 든 생각은 판타지에 가까운 러브로망 뮤직소설 정도로 쓰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데 다시금 생각해보니 기존 정보가 없던 탓에 오히려 가장 좋은 책 읽기를 경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애초부터 소설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보는 내내 '와, 이런 소설같은 이야기가 다 있나' 하면서 혀를 내둘렀고, 책 속 김철민과 헐크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조금 다른 상세한 이야기적 묘사가 이 책에는 있다.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소설 임을 인지하고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공감대를 전달하고 그 속에 '글래스턴베리'라는 록 페스티벌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사실 이 책을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록 밴드 '오아시스' 때문이 아니라 그저 '글래스턴베리'라는 너무도 유명한 록페스티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행기 인줄 알았기 때문에 생생한 글래스턴베리에 대한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선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의 구조는 오히려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 속에 담겨 있는 음악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




최근 책 읽는 연습이 통 부족했음에도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은 정말 술술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 다음,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도록 하는 구조와 더불어 글래스턴베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그곳의 이야기는 매우 가깝게 전하고 있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록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곡들의 제목과 가사의 의미로 정리한 목록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특히 최근에는) 팝송을 노래로만 즐기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우리가 좋아하고 좋아했던 곡들의 진정으로 위대한 경우는 그 가사가 주는 의미에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그 가사와 의미의 중요성을 잠시나마 환기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책 속에서 이런 이점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곡은 역시 Oasis의 'Live Forever'인 듯 싶고. 

누구나 록 음악에 빠져본 이들이라면 글래스턴베리를 한 번쯤은 꿈꿔 보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한참 빠져있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글래스턴베리를 비롯해 어떻게든 영국으로 건너가 록의 홍수 속에 바져보리라 계획 했던 적도 있었고, 실제로 근접할 뻔도 했으나 결국 여러가지 사정(핑계)을 이유로 한국 땅을 못 떠난 적도 있었다. 이 책을 보니 오랜만에 그 때로 돌아간 듯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점점 모든 것을 재쳐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만 간다. 그렇기 때문에 극 중 김철민의 이야기가 판타지로 느껴지는 씁쓸함도 있었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뜨거움이 뭉클거렸다. 그래서였나. 나는 처음 썼던 이 글의 제목 '록페스티벌에 녹여낸 판타지'를 지우고, '록페스티벌에 녹여낸 실현가능 판타지'라고 고쳐썼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2006년에 국내 발매된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으니 많이 늦은 편이네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 가운데서도 <에반게리온>을 특히 좋아하는데(몇달 전 회사에서 TV판 전편을 매우 하루 한편씩 DVD로 감상하기도 했었죠),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다보니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에 대해서도 관련 검색을 해보는 일이 자주 있었고, 그 가운데 바로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서는 언젠가 한번 사봐야 하던 중, 얼마전에야 드디어 질러서 보게 되었습니다(가격도 저렴해요, 5000원!).

이 책은 안노 히데아키의 부인이자 만화가인 안노 모요코의 작품인데, 내용만 보자면 138p 짜리 단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안노 모요코가 남편인 안노 히데아키와 만나고 결혼하고 살아가면서 겪은, 그러니까 오타쿠의 부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그림과 이야기들로 가득 담아내고 있는 책입니다.

오타쿠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헨타이'와 결합하여 좀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남한테 해끼치는 것도 없고,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애착을 갖고 집중한다는 것 정도죠. 물론 우리가 흔히 오타쿠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 분야가 '애니메이션'이나 '망가'로 주로 집중되어 있는 편이긴 하지만, 어쨋든 개인적인 생각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쏟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오타쿠'라는 단어에 전혀 부정적인 느낌은 없는 편이에요.

오타쿠 하니까 하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 지난해 초였던가 어느 영화 잡지사 면접자리였던 것 같은데 제 블로그와 제가 쓴 글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한 직원분이 이렇게 여쭤보시더군요. '혹시 오타쿠세요?'
그러길래, 약 1초 당황한 다음에(정확히 1초였음) 전혀 흔들림 없는 말투로 얘기했죠. '리얼 오타쿠들 사이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소소한 팬이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간혹 오타쿠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이 말은 왜했지 -_-;;)'
확실히 요즘은 문화 컨텐츠를 돈주고 즐기는 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적다보니, CD나 DVD를 사는 것만으로도 조금 별난 사람이 되어버린 세상이죠. 그런데 좋아하는 애니의 피규어를 해외 경매사이트에서 구매하거나, 치히로가 울면서 먹었던 주먹밥 모양의 피규어를 구매했다며 좋아하거나, 뉴타입 잡지에 아스카 티셔츠가 부록으로 나온 걸 보고 입을 수 있을까 와는 별개로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이라면 오타쿠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여튼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안노 히데아키가 어느 정도 매니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이 정도로 오타쿠인줄은 몰랐네요 ㅎ 정말 에바가 그냥 나온게 아니구나 할 정도로(오히려 이 책을 보고나면 에바가 너무 얌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폭주하는 초호기처럼 몰려옵니다!) 엄청난 베스트 오브 더 오타쿠더군요. 이 책이 재미있는건 단순히 안노 감독의 오타쿠 적인 삶을 조명한 것 뿐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화자가 그의 아내라는 점, 그리고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오타쿠와 살아가면서 겪는 변화랄까? 그런 부분이 아주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타쿠가 주인공인 만화라 그런지, 관련 지식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 웃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도 일반인 보다는 한 걸음 앞서있는 미약한 오타쿠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만화에 등장하는 관련 작품들 가운데 약 20% 정도 밖에는 소화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역시 본토의 오타쿠는 그 스케일이 다르더군요. 아, 하지만 이 작품들을 100% 모른다고 해도 크게 감상에 지장은 없는 편입니다. 그 작품 속 캐릭터를 알고 있다면 더 재밌긴 하겠지만 모른다고 하더라도 분위기로 짐작하며 넘어갈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만약 이 내용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장담하건데 이 책은 300%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만화가 아닐 수 없을 듯 합니다. 왜냐면 저도 그 20%만을 공감했음에도 그 순간에 무언가 짜릿한 희열이 있었거든요 ㅎㅎ 아, 그리고 도서 뒷 편에 본편에서 언급된 작품들의 간단한 설명을 추가로 해주고 있어서 나중에라도 한 번 찾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의외의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결혼하고 싶다'랄까?
오타쿠인 안노 히데아키를 다 받아주고 이해해주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안노 모요코의 존재는, 히데아키를 에바 감독으로서 부러운게 아니라 모요코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더 부럽도록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제 마음대로 완전 오타쿠 같은 전문 분야의 말들을 하루 종일 미친듯이 쏟아내도 다 알아들을 이가 있다면 그것도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여튼 애니메이션에 설사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이 부부의 이야기를 제3자 입장에서 보는 재미도 참 흐뭇한 일입니다. 책 말미에는 안노 히데아키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도 실려있어요. 실제 만화속 캐릭터의 동작을 손수 시연해 주시는 히데아키의 사진들도 인상적이구요 ㅎㅎ

그래도 나도 나름 오타쿠지 하는 분들이 이 책을 보게 된다면 아마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겸손의 미덕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한편 '그래 나는 아직 덜 미쳤어' 라고 다행(?)스럽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래 좀 더 수련에 정진해야겠다!'라고 각오를 다지게 될지도 모르겠구요. 여튼 안노 모요코의 '감독 不적격' 적극 추천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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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F. 스콧 피츠제럴드

잘 알다시피 F.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데이빗 핀처의 동명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더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를 참으로 인상깊게 본 나로서는 원작이 된 소설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위드블로그와 함께 하는 도서 캠페인을 통해 좋은 기회에 피츠제럴드의 원작 도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잠깐 착각하고 있었는데, 이 도서는 단편들을 여러편 모아둔 일종의 단편집이라는 점과, 영화와는 달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역시 짧은 단편이라는 점이었다. 영화를 볼 당시에도 이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책을 읽을 때는 잠시 잊어버려서 생각보다 짧은 분량에 놀라기도 ;;;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젤리빈
낙타 엉덩이
도자기와 분홍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메이데이
치프사이드의 타르퀴니우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
행복의 잔해
Mr. 이키
산골 소녀, 제미나




위와 같이 영화화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포함하여 총 11개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11개나 되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대가 되고 눈길을 끄는건 '벤자민 버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원작 단편은 긴 러닝타임을 제공했던 영화와는 달리 상당히 짧은 내용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다른 설정들은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빠른 시간전개에 적잖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피츠제럴드의 원작에는 로맨스가 주가 된다기 보다는 '늙은 사람이 아기로 태어나 시간을 거꾸로 간다'라는 설정 자체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 설정을 통해 생겨날 수 있는 흥미요소들은 간략하게 배치하고 있다. 단편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정말 영화처럼 아예 장편으로 기획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같이 매력적인 설정을 그냥 단편으로만 놔두기엔 아쉬웠기 때문일까.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물들을 그려낼 수 있는 소스였기에 그저 설정자체만 기억으로 남게 되는 단편은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정해지는 바람에 이와 관련된 모든 도서들의 제목도 이와 동일하게 되어버렸는데, 원제에 의미인 '흥미로운 사건(시간)' 혹은 '기이한 사건' 등으로 풀이했어도 좋지 않았을까도 싶다.




이 외에 수록된 단편들도 다들 짧은 분량으로 읽기에 크게 부담가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역시 단편들이기 때문에 인물들이나 줄거리가 크게 인상적으로 기억이 남는다기 보다는 이름처럼 '단편적'인 기억들만 남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위대한 게츠비'를 발표했던 F.피츠 제럴드답게 굉장한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쉽게쉽게 읽혀지고 물흐르듯이 전개되는 줄거리는 단편이라는 포맷과 어울려 깔끔함을 더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힘입어 이 도서를 접하게 된 이들보다는 피츠제럴드에 끌려 책을 읽게 된 이들이 좀 더 깊은 인상과 재미를 얻어갈 듯 하다. '벤자민...'외에 단편들은 이야기 자체로 흥미로운 점도 물론 있지만 그 보다는 피츠제럴드의 문장력을 만끽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단편이라는 특성 때문에 가끔 꺼내어 한편 씩 천천히 읽어보기에도 괜찮은 책 한권이 될 듯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표지에 이끌려서 구매하게 된 책 '듀이'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 구입. 화이트 데이가 내 생일임으로 미리 그냥 발렌타인 데이에 챙겨주기로 했음 -_-;




그리고 대폭 할인행사라는 말에 급 지르게 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합본'




엄청난 두께! 하지만 생각보단 의외로 가벼운 편.




읽을 책이 점점 쌓이니 부담과 행복함이 동시에 몰려오는 듯.











지난 2008년의 여름은 특별히 기억할만 했다. 민주주의 라는 것.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가슴으로 느껴보지는
못했던 것을 거리에서 직접 피부로 알 수 있던 시기가 바로 지난 해 여름이었고,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에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무언가 주권을 행사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을 수 있었던(대통령 선거시에도 느낄 수 없었던) 시기였으며, 아직 대한민국이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뜨거운 여름이었다. 여중,고생들의 촛불 시위로 시작되었던 이 작고
미약하지만 의미 깊었던 행동은 정부의 더해만 가는 실수와 잘못된 일들을 통해 눈덩이 불어나듯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모든 국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가 하면, 직접 거리에 나오지 못하는 시민들은,
아프리카를 통한 인터넷 생중계로 밤을 지새워가며, 내 나라에서 내 국민들이 어떻게 권력에 의해 상처를 받고, 민주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해 나가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뜨껍던 여름이 가고 벌써 겨울이 왔다. 아직 촛불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지만(촛불은 아직도 곳곳에서 불타고 있다!),
사실상 많은 이들이 전장과도 같았던 거리에서 돌아와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요즘, 2008 촛불을 돌아볼 수 있는 책 한권을
만나볼 수 있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 미사에서 나온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제목으로 차용한
이 책은, 다양한 사진들과 글들로서 이 당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이 같은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닝만적으로만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라는 책 속 등장 문구처럼, 촛불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당시 있었던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서 평정심을 잃게 되는 실수는 하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속 내용은 촛불이 일어나게 된 계기서
부터 이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진화되어 갔으며, 어떤 현상들을 일으켜 왔는지에 대해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차근차근
이야기 해 나가고 있다. 사실 어느 한 쪽을 확연히 두둔하는 입장을 가진 화자에 입장으로 쓰여진 도서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갖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촛불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외에도,
그동안 촛불의 뜨거운 현장을 그저 친북좌파 빨갱이들이 주도한 폭정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려는 듯,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려 애쓰고 있다(애쓰고 있다고 표현한 점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진실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개인적 의견이 반영된 터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이 촛불의 행동들을 가지고 일부 급진적 무리가 이끄는 폭동에 가까운
사건으로 생각하는 일들이 많았었다. 각종 외곡된 뉴스와 신문 등을 통해서만 정보를 접했던 이들이라면 이런 오해가 전혀 무리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시청 앞 거리에 나가보았다면 이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했던 이들은, 운동권도 아니었으며, 친북좌파 세력은 더더욱 아니었고,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자주 행동으로 표현했던 이들도 아니었으며, 그저 나도 문제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도 있었기에 그러면 안되겠다고
문제제기를 한 평범한 시민들이었으며, 전경의 군화발 아래 무참히 밟히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집안에서 두고만 볼 수는
없겠다 라고 생각한 일반인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굳이 객관적이지 않아도
될만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촛불이 처음 켜지게 된 시작점부터 이야기를 차근차근 진행해 가면서 왜 평범한 중고생들이,
왜 아이를 갖은 유모차 부대들이, 왜 예비군들이 다시 군복을 입게 되었는지, 왜 회사원들이 가정을 소홀히 해 가며 거리로
나와야했는지에 대해 시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서술 방식은 단순히 정부가 잘 못 해서 국민이 혼을 내러 나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무엇을 잘못했고, 왜 나섰으며,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정확히 짚어내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객관성을 담보로 진실을 더욱 진실되게 하기 위해, 이 과정 속에서 벌어졌던 몇가지 부정적인 이들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거론하고
있다. 실제로 촛불 시위 혹은 문화제가 커져가면서 몇가지 부정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정부의 생각과는 달리
특별한 주도 세력이 있었던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언가 큰 결정을 해야만 할 때에는 결정 과정에 문제를 겪기도 했으며,
평화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대부분의 생각과는 달리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려는 일부의 움직임도 생겨났으며,
이른바 '프락치' 논란도 생겨나게 되었다.

지금 같은 정부의 분위기를 보자면 이 같은 사항들을 거론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없이 여지를 만드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책 제목과도 같이,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명제에 근거하여 이 책은,
이런 여지를 두는데에 전혀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를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세력이
이를 들먹여 진실을 외곡하려 한다해도, 아니 외곡한다해도 결국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객관성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책 속 화자들의 입장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쓰여지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촛불에 시작부터 열렬히 참여했던 이들도 있으며, 뉴스에서 거론이 된 시점부터 나서게 된
이들도 있고, 몇 번 나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만 응원했던 이들도 있다. 물론 그 현장 속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싸워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되겠지만, 이렇듯 다양한 입장에 처한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근거해서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형식이 좀 더 객관성을 부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서론에 언급했던 것처럼 2008년 여름,
거리에서 뜨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에게 보내는 감상에 젖은 추억의 사진첩이 아니라, 촛불을 오해하고 아직까지 여기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 못한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제안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조금이나마 이 촛불행렬에 동참했던 사람으로서 좀 더 감상적이어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기억될 뿐이고, 촛불 밖에 있던 사람들은 끝까지 진실을 오해한채 살아갈 뿐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면에 있어서 좀 더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간결한 문체와 더불어 다양한 사진자료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이 만약 딱딱한 문체와 많은 글들로만 채워졌다면 훨씬 더 접근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복잡하고 어려운 글보다는 쉽게 쓰여진 글들과 쉽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진들로
주로 이뤄져있다. 사진들 역시 자극적인 사진들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라 이 촛불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볍고 친근한 사진들부터 충격적인 사진들까지 골고루 수록하고 있다.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를 무등 태우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라던가, 교복을 입고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서로 웃으며 위로하는 시민과 전경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뉴스나 언론등을 통해 전해졌던 자극적이기만 했던 이면에는,
이렇듯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일깨우는 한편, 현장에 가깝게 있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현장을 담은 사진들을 통해서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싸워야만 했는지에 대해 저절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을 한장 한장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현재도 거리 곳곳에서 촛불을 켜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존경심과 미안함이었다.
지난해 여름 촛불에 함께 할 수 없었던 이들은 물론이고,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격렬히 저항했던 '촛불시민'의 일부조차
현재는 대부분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와 이를 추억처럼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지난 여름처럼 대규모의 불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소규모로, 다른 형식을 통해 촛불은 계속 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왔으며
본래 촛불이 이루려던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위해 여기저기서 활활 불타고 있다. 보통 이런 서적이 발매될 당시 같으면,
어느 정도 사건을 정리하는 측면에서 '그 때는 그랬었지' '이런 사건들이 있었다'라는 식으로 서술하게 되지만,
아직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이 책 역시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물론 지난해 여름과 촛불을 정리하는 의미를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종결으로서가 아니라 진행형으로서 촛불의
행동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이 책은 그 작은 시작입니다.'

라는 표지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촛불이 가장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망각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촛불은 이제 끝났어 라고 생각하는 타인들을 위해, 그리고 지난해 거리에서 촛불을
함께 들었지만 현재는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추억이 아니라 현재에서도 촛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아주 작은 행동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더 함께하지 못해 부끄러웠고, 나 조차 망각했었던 부분이 떠올라 더욱 부끄럽기도 했다.
여러가지 미사여구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7월 5일 V for Vendetta 퍼포먼스 후기 #2

7월 5일 V for Vendetta 퍼포먼스 후기 #1

2008.06.30 _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2008.06.10 _ 6.10항쟁 거리에서.

2008.06.07 _ 촛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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