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2010)

메리를 둘러 싼 삶의 온도



영화를 보기 전 될 수 있으면 감독이나 배우 이상의 정보는 얻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는, 마이크 리의 신작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역시 감독과 짐 브로드밴트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왠지 따스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삶에 대해 위로를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보게 되었다. 아무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피하더라도 포스터를 본 이상, 거기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통해 나만의 예상을 잠시하도 해보기 마련인데, 내게 있어 이 영화는 노년의 부부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내 삶을 다시 한번 깊게 성찰하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것은 맞았지만, 위로 받기 보다는 더 큰 외로움과 메마름을 겪었달까. 그리고나서 새삼 되내어보니 그의 전작 '해피 고 럭키' 역시 마냥 행복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 안에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담은 작품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마이크 리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깊이로 와닿는 것일까.



ⓒ Thin Man Films. All rights reserved


처음 영화를 보고 떠올려 보았을 때는 평화로운 노년의 부부생활을 영유하고 있는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루스 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보자면 영화 포스터처럼 자신들이 깊게 뿌린 내린 나무라는 삶에 메리(레슬리 맨빌)와 아들 커플, 그리고 켄과 톰의 형에 관한 이야기가 가지처럼 엮여있고 새싹과 낙옆처럼 흘러가는 하나의 계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톰과 제리는 삶에 대해 통달해 누구든 감싸안아줄 것만 같은 인물들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이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라 할 만큼, 지독하게 계산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들만의 시간에 원치 않는 이가 끼어드는 것을 불편해하고 참을성의 한계 역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리의 직장 동료인 메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누던 친구였지만, 메리가 자신들의 삶에 원치 않을 정도로 끼어들면서 결국 감싸안기 보다는 냉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데, 우리들의 삶에도 원치 않는 이들이 눈치 없이 껴들거나 굳이 내가 나서서 포용하기에는 벅찬 이들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경우를 떠올리게 된다.


즉 톰과 제리의 행동은 앞서 말했듯이 냉정하게 보았을 때 매몰찬 행동이라기 보다는 이해가 가는 한계 상황이랄까. 제 3자가 되어 그들에게 '왜 더 따듯하게 감싸주지 못했나'라고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마음으로 보았을 때 메리라는 인물은 분명 이들 삶에 쳐내고 싶은 가지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Thin Man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마이크 리의 시선은 묘하게 메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아니, 이것이 감독의 의도한 바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계절'은 생각하면 할 수록 메리라는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메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삶과 주변은 고통과 외로움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톰과 제리 부부를 비롯한 타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의 행복이 결국 그런 행복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 큰 외로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인생의 씁쓸함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지났지만 메리는 그대로였고, 변한 것은 메리를 둘러싼 주변의 공기 뿐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정확히 메리의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메리를 둘러싼 삶의 공기는 사계절의 온도와 같이 흘렀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 수록 이 영화가 쓸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건, 계절이라는 건 반복되기 때문이리라. 메리에게 다시 봄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 봄은 어차피 매서운 겨울을 위한, 삶이 주는 아주 조금의 배려일 뿐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깝게 한다.



ⓒ Thin Man Films. All rights reserved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in Man Films 에 있습니다.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
무한 긍정 캐릭터로 되새겨보는 행복의 참 정의

<해피 고 럭키>는 개봉 전 부터 은근히 기대하던 영화였는데, 개봉한지 조금 지난 주말에야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베라 드레이크 (2004)>로 61회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마이크 리 감독의 작품인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베라 드레이크>를 비롯해 제대로 본 영화가 없는 것 같군요(61회 베니스 영화제의 후보들을
살펴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씨 인 사이드>, 프랑소와 오종의 <5x2>,
허우 샤오지엔의 <쓰리 타임즈>등이 포진하고 있는 걸 봐서 <베라 드레이크>는 나중에라도 한 번 챙겨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말고는 다 보았고, 인상깊기도 했구요).

하지만 별다른 감독과 배우에 대한 선호도가 없었음에도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포스터나 스틸 컷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다른 감성들과 '무한 긍정' '행복 바이러스'등 이 영화 홍보에 사용된 문구들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행복한 영화보다는 우울한 영화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더더욱 제대로 된 코미디나 제대로 된
긍정적 영화들이 많지 않아 우울하기도 하던차에, <해피 고 럭키>라는 이 '해피'하고도 '럭키'한 제목이 눈에 쏙 들어올 수
밖에요.

사실 제목과 스틸컷등으로 예상하기로는 무한 긍정의 행복함으로 넘치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자신의 행복 바이러스를
주의에게 듬뿍 나눠주어, 고뇌하고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들마저 행복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냥 '행복한'이야기 일줄
알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꼭 그렇지 만은 않은 영화더군요. 하긴 행복함을 얘기하면서 그 반대의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는 진실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겠지요.




(아래 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급히 이동해 주세요~)








영화의 주인공인 포피(샐리 호킨스)는 정말 긍정적 마인드로 똘똘 뭉친, 행복 그 자체의 캐릭터 입니다. 누구에게나
말 걸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상대가 반응이 없더라도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며, 좋지 않은 일이 닥칠 때에도
자신 만의 초 긍정적 마음 가짐으로 쿨하게 넘기는 캐릭터이죠. 영화의 인트로 부분은 포피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장면 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를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잘 집약된 인트로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아, 자전거를 타고 서점에 들렸다가 무뚝뚝한 서점 주인에게 여러 번 되도 않는 말들을 던져 보다가
반응이 없자 쿨하게 돌아서 서점을 나오던 포피는, 세워 두었던 자전거가 없어진 것을 알고도 '아쉽네, 잘 가라는 인사도
못했는데' 뭐 이 정도죠. 이 초반 에피소드가 '포피'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단 번에 인식시키는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행복함이 넘쳐나는 '포피' 캐릭터를 설명이 어느 정도 끝나면, 그녀 주변의 인물들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처럼 행복한 친구들도 있고, 갖가지 일들로 고민과 갈등을 겪는 이들도 있고, 초등학교 선생님인 그녀에겐
반 아이들의 생각지 못했던 사연들도 있는 등 역시 예상대로 현실적이고 여러가지 일들로 행복하지 못한, 혹은 행복을
갈구하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라면 포피의 운전 강습 선생님인 '스콧'을 들 수 있겠구요.



(전 이 스틸컷만 보고는 샐리 호킨스라기 보다는 쥬이 디샤넬인줄 알았어요. 이 사진은 유독 그렇게 나온 것 같더라구요 ㅎ)


잘 생각해보면 스콧은 조금 거친 캐릭터일 뿐이지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얼핏보면 굉장히 신경질 적이고
과격한 대표적 남성 캐릭터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한 긍정의 포피와 상대 비교를 했기 때문이지,
스콧의 말을 곰곰히 따져보면 그가 그리 오버해서 화내는 것이기 보다는, 화낼 만한 일들에 적절히 화내고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전부 다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 때문에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부 정책도 마음에 들지 않고, 흑인들에 대해서도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 만의 규칙을 만들어(엔라하~) 그걸 벗어나는 자유스러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스캇은 자유분방한 포피를 만나면서 급격하게 부딪히게 되는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 둘은 포피가 내뿜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 덕분인지 조금씩 이야기의 진전을 보여줍니다.

스캇은 말과 행동은 거칠게 하지만 점차 포피에게 자신의 속마음(좋아한다는 애정의 감정 말고도, 그냥 남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시콜콜한 속 얘기랄까요)을 드러내게 되고, 어쩌면 본인 자신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스캇은 자신이 찾는 행복의 길을 '포피'에게서 일정 부분 찾게 된 것이죠(이건 단순히 포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서
동화되었다기 보다는 행복함 자체에 동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포피와 스캇의 에피소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영화 같으면 포피의 행복 바이러스가 스캇 같은 냉소주의자에게도 퍼져서 결국 스캇도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는
식의 얘기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피 고 럭키>는 조금 다르더군요. 달라서 더 좋았구요.




스캇과 포피의 경우도 그렇고, 포피가 가르치는 학생의 문제도 그렇고, 포피의 동생 부부의 일들도 그렇고, 더 나아가
포피가 만나게 된 남자선생님과의 로맨스도 그렇구요. 별로 완벽하게 혹은 행복하게만 마무리 되는 일은 결국 하나도
없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하던 포피도 자신 과는 방법이 틀렸던 스캇과는 결국 융화되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스캇은 본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기는 했지만, 이 만남과 이별 뒤에도 결국 스캇은
스캇대로 포피는 포피대로 살아가게 될 것 같구요. 포피의 동생 부부와 또 다른 동생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포피가 중간에서
조화를 이뤄보려고 하지만 '다 잘되었다'라고 보기엔 그냥 그대로 마무리 됩니다. 가정 불화를 겪어 폭력성을 드러내는
어린 아이의 문제도 상담으로 알게 되었긴 했지만, 원인을 알게 되었을 뿐 해결이라고 보긴 어렵구요.

결국 포피가 마지막 절친인 조이와 호수에서 노를 저으며 나누는 대화에서 어느 정도 영화에 대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더군요. 포피는 자신의 행복함과 긍정적 에너지를 주위에게 나누 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맙니다. 뭐랄까 무한 긍정 에너지를 가졌던
그녀마저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인생살이에 고단함 이랄까요. 이런 메시지는 영화 중간에 포피가 뒷 골목에서
만난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와의 장면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야기하는 이 남자의 질문. '알아?'하는 이 질문에 포피는 '알아요'라고
대답하지만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서로 이해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대화였거든요.
만약 두 사람이 별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했다면 그렇게 서로에 공간으로 약간은 도망치듯 빠져나오진 않았을 것 같구요.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생각해 볼게 많았던 영화같습니다. 마냥 행복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마냥 행복함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혹은 어렵다 라는 것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만한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더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 정도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던 포피마저 한계를 인정해야 할 정도로 현실이 우울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에요.




포피 역할을 연기한 샐리 호킨스는 이 영화를 통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캐릭터 자체가 워낙에 돋보이고 주목 받기 쉬운 캐릭터인것도 있지만, 샐리 호킨스의 연기력에 의문점이 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확실히 망가지기를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도, 망가짐이 그저 망가지는 것 만으로 남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웃게 만드는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그녀가 영화 속에서 하는 행동 하나 하나는 관객들의 입꼬리를 저절로 올라가도록 하더라구요. 박장대소 하는 장면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씨익'하고 웃게 만든 장면은 여러 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좋았죠.

스캇 역할을 맡은 에디 마산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기는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아 필모그래피를 찾아보았더니
상당히 많은 영화에 출연을 했더군요. <미션 임파서블 3> <일루셔니스트> <21그램> 등등 다시 보게 된다면 이제는
그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즘 이런 영화를 만나기가 갈 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해피 고 럭키>는 단순히 '여자 주인공이 망가지더라'
정도로 홍보되고 기억되기엔 아쉬움이 많았던, 행복에 관한 좋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film4에 있습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RSS등록하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