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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

신념을 갖는다는 것, 그 고통의 의미


멜 깁슨이 '아포칼립토 (Apocalypto, 2006)' 이후 10년 만에 연출을 맡은 영화 '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는 2차 세계대전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임에도 참전하여 많은 생명들을 구해냈던 실존 인물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담고 있다. 종교적인 신념으로 인해 총을 드는 것(살인을 하는 것)을 거부했던 데스몬드가 지옥같이 참혹한 전장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을 구해낸 이야기는 멜 깁슨이 평소 증오하던 히어로물의 대한 반증이자 대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핵소 고지'가 전쟁 영웅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면 물론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영웅적일 수 밖에는 없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최대한 영웅적 면모를 걷어 내고자 하는 동시에 그의 내면의 신념에 관한 갈등을 전쟁의 포화 속 보다도 더 큰 전장으로 그려낸다. 바로 그것이 멜 깁슨이 말하고 싶었던 진짜 히어로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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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트라우마이자 종교적 이유로 인해 총기를 드는 것을 거부한 데스몬드는, 그럼에도 자신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모두 나라를 위해 참전하고 목숨을 바치는 현실에 홀로 참전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참전을 결심하게 된다. 물론 총기를 들고 일본 군을 향해 공격하는 것 대신 동료들을 구하는 의무병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훈련소에서부터 그의 이러한 신념은 지휘관과 동료들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사실 군에서 데스몬드에게 강조하는 논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합리적이다. 일본군이 너에게 총을 겨눌 때, 더 나아가 자신의 가족을 해치려 할 때에도 총기를 들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에 공격을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을 것이냐 라는 질문에, 데스몬드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데스몬드의 신념은 합리적 계산이나 논리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양심에 따른 믿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저 살인을 할 수는 없다는, 설령 그것이 모두가 죽고 죽이는 것이 암묵적으로 동의되는 지옥의 전쟁터라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는 그의 신념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로까지 이어진다. 


데스몬드가 핵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 이후부터는 좀 더 전형적이고 그야말로 영웅적인 전쟁 영화의 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가 참전을 허락받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기에 이 참혹한 전장 속에서의 그의 영웅적 면모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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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라는 지휘 체계의 예외가 되는 순간부터 데스몬드는 모든 이와 자신의 신념을 두고 싸워야 했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어쩌면 후반 부의 전쟁 보다도 더 큰 전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스몬드의 반대편에서 그를 내몰고자 했던 이들을 그저 신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나쁜 이들 정도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데스몬드를 그저 정신 나간 놈 정도로 여겼던 지휘관과 동료들은 그의 영웅적 활약이 있기 전에도, 그의 신념을 이해는 하지 못해도 인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선에서 모두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그의 제대를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데스몬드도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관객 역시 쉽게 답할 수 없는, 더 나아가 데스몬드의 신념을 과연 현실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가 하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너의 신념 때문에 네 동료와 가족의 목숨을 지킬 수 없다고 해도 끝까지 신념을 지키겠는가 혹은 고집하겠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실화로 존재해 세상에 알려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거의 다 그러한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 일종의 증명을 해낸 인물들일 것이다. 그들 역시 대부분은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증명해 내기 전에는 (대부분은 죽음으로 증명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고통받고 본인 스스로도 내적으로 엄청난 갈등으로 더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핵소 고지'의 주인공인 데스몬드의 이야기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전장에서 보여준 기적 같은 활약상이 없었더라면 과연 그의 동료들은 물론 후세에 이들이 그가 가졌던 신념에 대해 지금처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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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말해 모든 억압하는 것들을 이겨내 기적 같은 일을 해내는 것으로 스스로 증명해야만 자신의 신념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참담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마치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예수조차 증명이 필요했던 신념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갖기 어려운 것인지 또 지켜내기 어려운 것인지를, 반대로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 세상에 증명해 낸 데스몬드의 이야기를 보며 곱씹어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멜 깁슨의 '핵소 고지'는 전쟁 영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히 갖고 있는 영화다. 핵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벌어지는 전장의 묘사는 그 어떤 전쟁 영화에도 뒤처지지 않는 공포감과 현실감 그리고 참혹함을 전달한다. 고지 위에서 쉴세 없이 빗발치는 적군의 총알들이 주인공과 동료 사이를 관통하고 또 빗겨 나가는 장면들의 몰입감은 적당한 핸드 헬드와 압도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완성된다. 새삼스럽지만 '핵소 고지'는 극장에서 꼭 봐야만 하는 영화다. 그것도 사운드 환경이 우수한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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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핵소 고지의 높이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보다는 3분의 1 정도의 높이더군요. 영화적 효과를 위해 일부러 3배 정도 높이를 높였다고. 그리고 실제 데스몬드 도스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더군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히려 영화 속 데스몬드가 극적 현실감을 위해 더 덜어낸 느낌.


2. 메가박스 M2관을 일부러 찾아가서 본 보람이 있었어요. 전장의 표현에 있어서 사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꼭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작품입니다.


3.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 곳곳에서 젊은 멜 깁슨이 보이더군요. 특히 그가 바보처럼 환하게 웃을 땐 멜 깁슨의 그 환한 미소가 겹쳐지더군요. 사실 이 캐릭터에 앤드류 가필드가 과연 어울릴까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좋은 연기였어요.


4. 아, 그리고 간혹 2차 세계대전을 그린 미국 영화들이 범하는 실수에는 일본군을 그저 짐승이나 악마로 그려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신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로서, 일본군 역시 그들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 이들이라는 점을 말미에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우려를 잘 피해 가고 있어요. 너무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이 정도로 신념의 개념으로 각각 묘사해 내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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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Clash of the Titans, 2010)
이번엔 블록버스터 그리스 신화다

1981년작 <타이탄 족의 멸망 (Clash of the Titans)>를 원작으로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동명 신작 <타이탄>은, 제목과 원작에서 알 수 있듯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요 근래 개봉했던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의 경우도 그랬지만, 이 두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기본 줄거리를 갖고 있지만 그 전개 속도 면에서는 매우 빠른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하게 생략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가끔 생략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퍼시잭슨'을 리뷰하면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이런 작품에게서 그리스 신화의 진수를 얻어내려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다. 그래서 애초부터 이 작품에 거는 기대라고 한다면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을만한 스케일과 액션의 재미 정도였을 텐데, 이런 면에서 <타이탄>은 제법 만족스러운 킬링 타임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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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에는 그리스 신화의 익숙한 내용들이 가득 등장한다. 제우스와 하데스, 올림포스와 페가수스 등 우리가 이미 소설과 만화, 영화등으로 너무 많이 소비했던 내용들이다. 사실 요즘에는 그리스 신화의 정석에 포인트를 둔 작품이 거의 없는 관계로 이런 컨셉 작품들이 더 몰매를 당하는 경향도 있지만, 어쨋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야기의 정수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한 이 작품에게 그리스 신화의 깊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그렇다고 해도' 라는 개인적인 이유들이 가능하다).

이렇게 부담없이 보게 된 <타이탄>은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예 부담없이 만들려고 했던 거라면 제목을 '타이탄'이 아닌 더 이 작품만에 걸맞는 걸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신작 '타이탄' - 원작인 '타이탄 족의 멸망'을 떠올리면 더'에는 제목을 연상시킬 만한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금은 닭살스럽고 한편으론 오후 4~5시 시간 대에 방영하는 아동용 히어로 드라마 풍의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블록버스터로서 보여줄 만한 장면들은 그럭저럭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특히 거대 전갈들과 사막에서 벌이는 전투 장면이나 후반부 크라켓 등장 장면 같은 경우는 극장에서 살짝 좌석을 움켜 쥘 정도로 스펙터클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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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가 (12세)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벌이는 액션들도 괜찮았고, 영화의 스케일의 걸맞는 로케이션의 멋진 풍광들도 좋았다. 하지만 액션에 치우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원작이나 배경의 세계관이 깊은 작품일 수록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는 없는데,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 만으로도 영화 한편은 족히 만들 수 있는 캐릭터들이 즐비한 작품이기에, 이런 캐릭터들이 자신의 이름을 한 번 알려보지도 못한채 사그라드는 빠른 전개는, 깔끔하다 보다는 서운하다 쪽이 가깝다.

최근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을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이 작품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야기의 구조가 거의 같은 편이라 두 작품을 비교아닌 비교할 수 밖에는 없었다. 뭐랄까 '퍼시잭슨'이 아동용 판타지라면 '타이탄'은 액션 블록버스터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짧은 기간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다룬 두 가지 버전의 작품을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 어쨋든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이야기보다는 컨셉에 포커스를 그리고 빠른 전개를 무엇보다 중요시한 작품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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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을 보면서 '와, 어떻게 이런(?)영화에 저런 기똥찬 캐스팅이 가능했던 것일까?라며 의아했던 적이 있는데, <타이탄> 역시 이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크게 부족하지는 않은 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다. 제우스 역할의 리암 니슨의 경우 연기보다는 그 제우스의 의상 때문에 더 눈길이 갔는데, 기존 신화의 신을 그릴 때 등장 했던 일반적인 의상과는 다르게 블링블링한 갑옷을 입은 그와 신들의 모습은, 어쩌면 '퍼시잭슨'보다 더 아동스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빛나는 갑옷만 보면 존 부어맨의 1981년작 <엑스칼리버>가 떠오르곤 하는데, 어쨋든 이 작품 속 신들의 묘사는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데스 역의 랄프 파인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앗, 이름을 거론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이후 오랜 만에 또 다른 악당(?)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데 캐릭터 자체의 깊이가 깊지 않다보니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 허술한 갈등 구조를 그나마 구해낸 건 분명 리암 니슨과 랄프 파인즈라는 배우의 힘이리라. 주연을 맡은 샘 워싱턴은 이 작품을 통해 의외로(?) 작은 키가 공개된 것 같은데, 그의 얼굴과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의 이미지는 분명 이런 액션 영화에 주인공으로서 잘 어울리는 편이다.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완전히 이런 이미지로 굳어져 버리기 전에 색다른 작품을 선택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그 밖에 제법 이름 있늡 배우들이 단역에 가깝게 출연하는 경우도 많은데, 빠른 전개 탓을 해야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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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면 그럭저럭 볼 만한 액션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서 아주 조금만 더 기대해도 이 작품의 실망도는 급격한 곡선으로 커질 듯 싶다.

1.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과 이 작품은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하나의 팩으로 판매해도 좋을 것 같아요 ㅎ
2. 영화 속 안드로메다 공주는 그 이름답게 개념이 충만하더군요.
3. 은근히 여러모로 <트랜스포머>를 떠올리게도 했어요. 사막에서 전갈들과의 전투라던가 그 '정령'의 모습이 말이죠.
4.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화질은 세트 촬영과 로케이션 촬영에 큰 차이가 있더군요. 세트에서 촬영한 바다 위 장면의 경우 너무 화질이 좋은 나머지 세트 촬영인게 너무 티가 나더라구요.
5. 최근 PS3 게임 '갓 오브 워 3'를 재미있게 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비슷한 배경이 이 게임이 연상되더군요.
6. 크라켄은 그 스케일로 겁주는 건 좋았는데, 정작 보여준건 별로 없다는 점이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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