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우강호 (劍雨, Reign of Assassins, 2010)

고전 무협영화의 정취


오우삼과 수 차오핑이 공동 감독하고 (하지만 중론은 오우삼의 그림자가 거의 드리워져 있지 않다는 것), 양자경과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검우강호'는 참으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클래식한 무협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를 선택하기 전까지는 양자경과 정우성 (특히 양자경!)만 믿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막상 보고나니 이 작품에는 두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 외에도 고전 무협영화의 팬들이라면 무언가 동요하게 만드는, 요새 찾아보기 어려운 상당히 클래식한 무협영화였다. 사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중화권의 무협영화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미뤄봤을 때, 오히려 예전으로 회귀한 듯한 (좋은 의미로) 분위기의 '검우강호'는 예전 무협 영화들을 인상깊게 보았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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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강호'의 이야기는 복수라는 큰 정서를 배경으로,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전개된다. 많은 사람들이 러브 스토리가 주가 되는 것이 무슨 정통 무협이냐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무협 영화들은 러브 스토리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지 그것을 그리는 방식에서 무협적인 요소들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우강호'의 러브 스토리는 새로울 것은 없지만, 과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이 동하며 무협 영화에 틀 안에서도 다른 장치들을 크게 건들지 않으면서 잘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역시 이 영화가 매우 고전적인 무협영화로 느껴졌던 것은 '강호'라는 세계관을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무협영화에 '강호'라는 개념이 없다면 그건 무협영화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텐데, 화려한 발차기와 무술 동작 등 너무 보여주기에만 치중했던 일부 무협영화와는 달리, '검우강호'는 이 강호의 개념을 뒷 편에 여유롭게 깔고서 준비한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놓는 방식이다. 뒷 편에 강호라는 든든한 세계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검우강호'는 무협 팬들에겐 볼 만한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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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이안의 '와호장룡'과 비교하며 '검우강호'의 수준을 폄하하곤 하는데, '와호장룡'은 이 작품과의 비교대상이 아니다. '검우강호'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전 무협영화의 정취를 그대로 계승한 작품이지만, '와호장룡'은 고전 무협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와호장룡'을 무협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검우강호'는 그저 약하기만한 작품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와호장룡'과는 다른 정통 무협 영화에 더 익숙한 이들이라면 '검우강호'는 우선 반가운 작품이며, 그 향수와 정취가 묻어나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호라는 세계 속에서 최고의 비급을 얻기 위해 다투는 고수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들과는 다른 개인적인 원한과 애정으로 엮여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아주 익숙하지만 지루하거나 촌스럽지 않게 그려진다. 극중 증정과 아생의 이야기는 100% 예상은 못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의심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이야기에 감동마저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름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이 그저 웃음거리도 전락하고 마는 것이 아쉽기도 했는데, 따지고보면 이런 조건(?)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은 예전 무협영화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봤을 때, '검우강호'에선 너무 극적인 것이 탈이라면 탈이겠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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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용 포스터에는 정우성이 대문짝만하게 톱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검우강호'의 메인 캐릭터는 양자경이 연기한 '증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양자경이라는 배우는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정말 그녀 아니면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무협영화의 옷을 입었을 때 양자경이라는 배우가 뿜는 아우라는 실로 대단한데, 이런 아우라를 '검우강호'에서도 잘 살려내고 있다. 정우성은 중화권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벌써 제법 여러편이 있는데, 비교적 큰 편차없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양자경과 정우성 외에도 서희원과 여문락 등 중화권의 스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는데, 특히 '뇌빈' 역할을 맡은 여문락의 캐릭터 싱크로율은 거의 완벽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이런 조연 배우들이 완벽하게 강호의 세계를 표현해준 덕에 '검우강호'는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무협영화, 그리고 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보고 싶게끔 만드는 애틋한 영화가 되었다.


1. 엔딩 크래딧에 양자경과 정우성이 맡은 배역 이름이 '증정'과 '강아생'으로 나오더군요.
2. 정우성도 이 영화에서는 '그저 그런 보통 남자 따위'로 묘사됩니다 ㅎ
3. 이런 무협영화를 적어도 한해에 2~3편은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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