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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

그렇게 인생 영화가 된다


스틸컷이나 예고편만으로도 '이건 딱 너를 위한 영화야'라고 말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노래와 춤, 로맨스와 삶 그리고 이를 담아낸 뮤지컬이라는 장르. '위플래쉬 (Whiplash, 2014)'를 연출했던 데미언 차젤의 신작 '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는 이미 보기 전부터 인생의 영화가 될 것만 같았던 영화였다. 뮤지컬 영화를 특히 사랑하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어떤 영화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해지곤 하는데, 왠지 '라라랜드'는 그 이상일 것만 같았다. 스틸컷과 예고편 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과연 2시간이 넘는 한 편의 영화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전할까 싶던 그 커다란 기대는 결국 더 큰 감동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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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는 2.55:1의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로 촬영된 영화다. 시작 전 등장하는 시네마스코프 로고는 단지 비율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자 선언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1940~50년대 할리우드가 사랑한 방식으로 또 그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처럼 영화를 보여줄 거야'라고. '라라랜드'를 본 많은 관객들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이야기하는데, '라라랜드'는 어떤 개별 영화들의 장면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기보다는 4,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전반적인 존경과 동경을 담아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일례로 대규모의 댄서들이 등장하는 첫 시퀀스만 봐도 그렇다. 아마도 많은 뮤지컬 영화의 팬들은 이 첫 시퀀스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와 흠뻑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정수이자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영화적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충분히 여러 컷과 편집, 후반 작업등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퀀스였음에도 데미언 차젤 감독은 마치 당시의 대규모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연습과 여러 차례 리허설을 통해 이 대규모 시퀀스를 원테이크로 완성해 냈다. 이걸 단순히 기술적 성취 혹은 기술적 자랑 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감독에게 이 시퀀스는 자랑하고픈 장면이기보다는 자신이 만들고자 한 영화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했을 필수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보고 자란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표현으로서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 이 첫 시퀀스. 그렇게 이 시퀀스는 마치 좋아하는 다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의 오프닝들처럼 여러 번을 되찾아 보게 될 그런 명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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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가 도달한 뮤지컬 영화로서의 기술적 성취는 일단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근래에도 뮤지컬 영화들이 꾸준히 선보이고는 있지만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최근의 뮤지컬 영화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함 들은 분명 존재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만족스러운 뮤지컬 영화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어도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다시 보고픈 생각이 더 간절해 지곤 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대형 스크린과 사운드를 통해 제대로 접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세대와 시대가 다르다 보니 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비디오 시절부터 DVD와 블루레이 등을 통해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이런 기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같은 만족감은 미처 다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매번 다른 매체로 영화를 접할 때마다 '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황홀했을까? 그건 어떤 경험이었을까?'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더 들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라랜드'는 바로 그런 궁금증과 아쉬움을 완벽하게 해결해준 이 시대의 클래식 뮤지컬 영화다. 바꿔 말하면 '라라랜드'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다음 세대의 관객들은 분명 '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더라면 과연 어땠을까?'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화면의 비율이라는 건 결국 거리감과 공간감 그리고 그 비율에서 오는 비율 만의 긴장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된 이 영화에는, 바로 그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서 느꼈던 리듬감과 긴장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멀리 L.A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세바스찬 (라이언 고슬링)과 미아 (엠마 스톤)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의 촬영 기술은 그야말로 안무의 동선을 카메라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 뮤지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점을 완벽히 수행해 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이것보다 밋밋하게 촬영했더라도 매력적인 장면이었을 수 밖에는 없지만, 완벽한 촬영이 더해지면서 순간적으로 관객들을 뮤지컬 영화의 세계로 빨아들여 버리는 엄청난 흡입력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흥분되던지. 눈물이 다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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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정수를 새 시대에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작품이다. 하지만 '라라랜드'가 진짜 클래식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클래식 뮤지컬만의 매력을 오마주하고 담아낸 영화들은 근래에도 없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오마주와 클래식 함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들에게는 사랑받았지만 뮤지컬 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그렇게 클래식함을 제대로 담아내면 낼 수록 더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노래를 하는 거야? ㅎㅎ)


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를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아마도 감독 본인이 가장 고민했을 바로 그 문제. 그 고민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많은 관객들이 하는 가장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너무 판타지스럽다 라는 것이다.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여기에 단순한 스토리와 그 판타지함을 등에 업고 조금은 허무한 긍정으로 마무리되는 작법 때문에 더 큰 거리감을 느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뮤지컬 영화의 팬으로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갖는 판타지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반박)하고 싶지만 재쳐두고;;).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라라랜드'는 고전 뮤지컬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가져왔음에도 이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현실과의 고민이다. 여기서 현실이란 영화 속에선 주인공들의 삶의 현실이기도 하고, 영화 밖에서는 뮤지컬/음악 영화가 처한 시대의 현실과 맞물린다. 아마 이 영화가 고전 뮤지컬의 작법을 스토리에도 끝까지 반영했더라면 지금의 결과물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혹은 같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자의 삶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 만나 함께하는 것이 잠시 꿈이 되지만, 결국 본래 꾸었던 꿈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진짜 재즈를 연주하는 클럽을 운영하는 꿈을 갖고 있는 세바스찬은 현실에선 그저 레스토랑에서 캐럴을 연주하는, 대중들이 듣기 좋은 BGM을 연주하는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미아를 만나게 되면서 미아와 함께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편으론 자신의 꿈이었던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고집을 꺾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밴드의 연주자로서 합류하게 된다. 간혹 이 과정을 뮤지션으로서 성공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세바스찬이 자신의 고집을 꺾으면서까지 밴드에 합류하게 된 이유다. 바로 미아와의 사랑을 계속해 나가기 위한 또 다른 꿈을 위해서였다는 것. 하지만 나중에 그랬던 것처럼 이 꿈은 오히려 이 꿈으로 인해 깨져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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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의 꿈도 비슷하다. 미아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를 꿈꾸며 여러 오디션에 참여하지만 매번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해 힘겨워하던 중 세바스찬을 만나 역시 그와의 삶을 꿈꾸게 된다. 세바스찬의 응원에 힙 입어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일인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그 과정 속에서 밴드 활동으로 멀어진 세바스찬과도 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무대는 결국 캐스팅 매니저에 마음에 들어 기회를 얻게 되고 미아는 자신이 동경하던 바로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삶을 갖게 된다. 


아마도 다른 뮤지컬 영화 혹은 최근의 관객들이 많이 거리감을 느끼는 판타지적인 뮤지컬 영화였다면 '라라랜드'의 이야기와는 결말이나 그 전개 과정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세바스찬의 밴드로서의 상업적 성공을 성공으로 규정하거나 세바스찬과 미아의 결론 모두가 성공이며 그 결말에 두 사람이 원하던 행복을 함께 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지었을지 모른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 스스로도 바로 그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 그 순간, 다시 영화적 판타지로 돌아가 그간의 삶의 과정들을 펼쳐내는 시퀀스는 아마 다른 영화였다면 최종적으로 선택했을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그래서 그 시퀀스는 몹시 매력적이고 황홀한 향연이 펼쳐지지만 오히려 더 쓸쓸하고 슬퍼지는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슬픔과 쓸쓸함에 정점을 찍는 건 그다음 세바스찬과 미아의 반응이다. 마치 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 듯이 그저 또 이렇게 흘러 온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맞겠다고 감정을 삼키는 장면은,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한 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관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 뿐만이 아니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꿈과 현실에 고민하고 부딪히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이 짧은 눈빛들에 담겨 있기에, 아마 스스로도 왜인지 까닭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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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에서의 현실과의 고민은 극 중 세바스찬과 존 레전드가 연기한 키이스와의 대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키이스는 자신의 밴드 음악을 듣고 계속해야 될지 고민하는 세바스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재즈는 의미가 없다' '재즈는 혁신적인 음악인데 그렇게 전통만 고집해서 무슨 현식적인 음악이 되겠느냐' '재즈는 미래에 있다'


이 질문은 아마도 감독인 데미언 차젤이 '라라랜드'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깊이 고민한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속 대사와 마찬가지로 재즈 음악의 신봉자인 그는 그저 듣기 편한 BGM으로 전락한 현실에서의 재즈 음악에 대해 세바스찬과 같은 환멸을 느끼기도 했을 텐데, 또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현재의 할리우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이라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특히 그것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오래된 것, 별로 인 것 (혹은 어려운 것)으로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것일 때, '왜 이 대단한 가치를 몰라주는 거지?'하며 더 정통으로, 정통으로만 파고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현재와 소통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라라랜드'가 클래식 뮤지컬의 장점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영화였다면 소수의 뮤지컬 팬들은 몹시 좋아했을지 몰라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위플래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고집스럽고 전통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재 세대가 그 전통의 것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의 지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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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뻔한 것 같지만 세바스찬과 미아가 겪게 되는 삶의 이야기는 굉장히 강렬한 현실감을 전한다. 특히 미아가 오디션 장에서 부르는 'The fools who dream' 시퀀스가 주는 감정은 그냥 미아 만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미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도 오디션 장에서 연기하듯 말하고 있지만, 이 대사는, 이 노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로 관객에게 녹아든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다. 그러니까 미아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되어 느낀 감정이 아니라, 그냥 그 이야기를 빌려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클럽에서 두 주인공이 다시 눈빛을 교환하고 각자의 삶으로 걸음을 돌리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성숙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이는 동경하고픈 성숙함이 아니라 내게도 있어서 공감되지만 별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은 그런 성숙함이어서 이 역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했을까. 다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서로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을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 말한 종류의 성숙한 존재가 되어 버린 뒤였다. 그 과거가 아름답고 그립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걸 (못한다는 걸) 서로 인정하고 돌아서기에 이 마지막은 더 아리고 먹먹하게 느껴졌다. 물론 영화는 그 뒤에 한 장면을 더 남겨 두긴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영화와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 판타지였고.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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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그립고 또 아려오는 그런 영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현재로 완벽하게 소환해 내는 것에 성공한. 그것도 현실의 고민과 판타지를 모두 간직한 채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결과물로서 그려낸, 계속 또 보고만 싶어 지는 걸작이었다.


아.... 그렇게 '라라랜드'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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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Whiplash, 2014)

초월의 양면성



보통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나면 기억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물론 어느 정도의 상관은 있다만) 글로 풀어내기엔 상당히 어려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연유로 영화를 정말 인상 깊게 보았음에도 결국 글로 쓰지는 못한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이 영화 '위플래쉬 (Whiplash, 2014)'도 그럴 뻔 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럴 뻔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한참이 지났음에도 유독 생생한 기억과 머릿 속 '글감' 때문에 그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 낸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여하튼 오랜만에 드럼을 소재로 한 음악 영화가 나온 줄로만 알고 보게 된 '위플래쉬'는, 끝까지 달려가는 동시에 우리가 흔히 한 쪽으로만 판단해 버리는 주제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절반 이상 제공하고 있는, 참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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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보통의 음악 영화, 혹은 성장 영화였다면 앤드류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끝내 극복해 낸 천재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고, 그의 스승인 플레처는 그런 천재 뮤지션을 키워 낸 아버지 같은 멘토가 되었을 것이다. '위플래쉬'가 흥미로운 건 보통의 음악, 성장 영화가 갖는 위와 같은 성취를 이 작품 역시 거두고 있는 동시에, 정반대의 시각이 가능하다는, 더 나아가 그 반대의 시선에 오히려 더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일단 일반적인 측면으로 바라 본 '위플래쉬'의 이야기는, 제 2의 찰리 파커를 키워내기 위한 플레처라는 스승의 노력(방법)이 결국 앤드류의 잠재력을 일깨워 (일종의 각성) 또 다른 천재 뮤지션이 탄생하게 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해 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방식과 주제로 그려낸 영화들과 비교하더라도 '위플래쉬'가 도달하게 된 그 '순간'의 짜릿함과 희열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영화 말미 앤드류가 마치 초사이어인이라도 된 냥 스스로의 한계 점을 뛰어 넘어버리는 초월의 순간은, 근래 본 장면 가운데 가장 말초적으로 자극되어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마치 집단에게 얻어 맞은 듯한 욱신 거림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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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어라?'하고 조금씩 다르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앤드류의 아버지와 여자친구로 대표 되는 그의 음악 외 일상에 관한 묘사였다. '위플래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드러머로서의 앤드류가 아닌 그 외적인 앤드류를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얼핏 보면 '어? 왜 이런 의미 없는 장면을 넣었지?' 싶을 정도로 건조하게 그려진 앤드류의 일상은, 그렇기 때문에 '왜?'를 질문할 수 밖에는 없었다. '스파이더맨'도 아닌 것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설정을 이렇게 전면에 자주 등장 시키는 것을 보았을 때, 특히 그 방법에 있어서 특별히 감정이 교류되거나 갈등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그저 상황을 묘사하는 것 (아버지와 둘이서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에 그쳤을 때, 저 장면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전반 부에는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후 앤드류가 좋아하게 된 여자친구와의 시퀀스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졌을 때 무언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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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니콜 과의 이야기들은 아버지와의 그것보다 더 건조하게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영화였다면 음악과 여자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앤드류의 모습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면서 고조시키거나, 말미에 가서도 그럼에도 돌아온 앤드류와 니콜과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것으로 정리되었을 텐데, '위플래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배제하거나 다른 길을 택하고 있었다. 즉, 앤드류의 갈등은 갈등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결정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 상황에 대해서도 극적인 결말은 영화가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화가 이렇게 앤드류의 음악 외적인 일상 들을 비교적 건조하게 늘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글 서두에 언급한 바로 그 절정. 초월의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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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월의 순간, 영화는 엄청난 에너지로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드럼과 음악 역시 말초 신경을 몹시 자극하며 인계 치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서 정확히 마무리하며 아직 흥분이 가실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끝내버렸음에도, 그 만큼의 정서적 해탈감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드디어 플레처의 바램대로 제 2의 찰리 파커가 된(그 순간 만큼은) 앤드류의 모습에서 성공, 성취, 해피엔딩 이라는 단어들 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상실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앤드류는 플레처가 바라는 대로 음악적으로는 경지에 가까워 짐에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인간성과는 멀어져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앤드류가 음악적으로 초월하는 순간을 명확하게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인간성과 멀어지게 되는 또 다른 순간 역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마지막 아버지와 무대 뒤에서 만나고 이별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앤드류는 음악적으로 경지에 오를 수록 일상에선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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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위플래쉬'를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게 된다. '플레처의 교육 방식은 옳았는가?' '경지에 이르기 위해 포기 가능한 가치들은 어디까지인가?' '그렇게 까지 해서 도달한 경지에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는 쪽과 정도를 두어서는 결국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특히 예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의견,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결코 어느 한 분야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는 (그건 그야말로 배부른, 속 편한 소리라는) 의견도 가능할 것이다. 영화는 이렇듯 초월이라는 순간을 단순히 멋지고, 일방적인 성공과 연결 지어 이상향만으로 그리지 않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면을 부각 시켜 양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위플래쉬'는 엄청난 영화인 동시에 진심으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다시 말해 엄청나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인상적이기까지 해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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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서 블루레이로 보고 싶네요. 물론 집에서 맘 놓고 볼륨 키워 감상하긴 어렵겠지만 ㅠ

2.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를 관람하는 걸로?

3. 저에 다음 팬질은 멜리사 비노이스트로 거의 확정적!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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