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시간 극장판 (イヴの時間)
안드로이드에 관한 감성적 단편


제 7회 JMEFF를 통해 만난 또 하나의 신작.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의 '이브의 시간'이다. 이 작품은 2008년 8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총 6화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재편집 및 제작한 작품인데, 일단 기존의 내용을 거의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조금 내용을 추가해 극장판으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기존 판을 보지 못하였더라도 상관없을 정도다. 그렇게 보게 된 '이브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다시 한번 '아시모프 로봇 3원칙'에 기인한 안드로이드의 정체성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있다. SF영화에서 지겹도록 그려진 이 주제를, 애니메이션 '이브의 시간'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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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브의 시간'은 이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상당히 감성적이고 캐쥬얼한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다. 일단 혼자서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에서부터 감성적인 작화와 표현력까지, 요시우라 야스히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많이 닮아 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만의 감성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브의 시간 극장판'을 보고 있으면 신카이 마코토의 분위기가 조금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브의 시간'을 보면서 느꼈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상당부분 게임적인 요소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극중 캐릭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다수의 샷들은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와 같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화면 구성 느낌을 주고 있으며, 카메라가 이동하는 동선 역시 수 많은 롤플레잉 게임에서 보아왔던 삽입 동영상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영화 음악은 또 어떤가. 영화음악은 완벽할 정도로 게임 음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RPG를 많이 해본 이들이라면 단번에 느낄 수 있겠지만 '이브의 시간'의 음악은 그 악기의 선택부터 흐름까지 '완벽한' 게임음악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앞서 얘기한 장면의 게임스러움까지 더해지니 마치 감독이 조종하는 게임 '이브의 시간'의 리플레이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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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 로봇 3원칙'을 기본으로한 매우 정형화 된 안드로이드 물이지만, '이브의 시간'은 철학적인 고민 보다는 (물론 안드로이드를 논하면서 이런 고민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고민의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정도) 감정적인 부분에 훨씬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마치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지 않는 극 중 카페인 '이브의 시간'과도 같이, 리쿠오와 사미, 마사키의 이야기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마음과 마음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안드로이드라는 형식적인 측면 만을 취한 느낌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편으로 '이브의 시간'은 마치 일본영화 '우리 개 이야기'와도 같은 반려동물과 인간과의 이야기로까지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런 애틋함이 느껴져 울컥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반려동물과의 관계마저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의 갈피는,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화두를 다시 한번 던져줄 것으로 기대했던 SF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애초에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선보이기 보다는 재편집을 통해 극장판으로 선보인 경우여서인지, 아무래도 조금씩은 끊어가는 듯한 느낌이 있다 (물론 이건 의도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한 종결이 아니라 시즌 1격의 이야기라는 점을 미뤄봤을 때, 엔딩 크래딧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후속편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려주기는 하지만, '이브의 시간 극장판'만을 두고 보았을 땐 조금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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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쩃든 '이브의 시간 극장판'은 인간과 안드로이드라는 익숙한 소재를 그리 지루하지 않은 터치로 풀어낸 작품이었으며,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과연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라는 끝나지 않는 논제에 대해 또 한 번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니, 그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이미 후속편을 계획해 둔 작품으로서 시즌 2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 되느냐에 따라 '이브의 시간 극장판'의 의미도 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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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 (Redline, 2010)
사이버 펑크 같지만 고전스러워


올해 신주쿠에서 영화를 보았을 때, 상영 전 인상적으로 본 예고편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고이케 타케시 감독의 신작 '레드라인 (Redline)'이었다. 이 예고편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이버 펑크스러운 작화와 자극적인 영상 그리고 예고편 내내 쿵쿵 거리게 했던 영화음악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곧 개봉이었지만 일정상 보지는 못하고 국내에 돌아왔는데, 메가박스에서 주최한 일본영화제 'JMEFF'의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작품에게 기대한 것은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에너지'였는데, 확실히 그 에너지 하나 만큼은 제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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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은 기본적으로 레이싱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레이싱만에 관한 이야기다. 레이싱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승부 조작 및 배후세력, 레이서의 트라우마 그리고 불꽃튀는 결승전까지. '레드라인'은 이 이외의 것들은 건드리지 않는 제법 충실한 레이싱 영화다. 아, 물론 다른 레이싱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도 등장한다. 결승전 무대 겪인 '레드라인' (옐로우라인, 블루라인 등 다양한 대회에서의 우승자들이 최종적으로 레드라인에 참여하는 방식이다)의 장소로 이 레이싱 대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펼치고 있는 행성이 결정되면서 이들의 군사적인 (혹은 이를 넘어서는 가공할 만한 외부 요인의) 공격마저 피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인데, 넓은 의미로 본다면 이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는 레이싱의 외부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레드라인'은 무엇이든 과잉의 연속이다. 부스터를 쓸 때 자동차와 레이서가 모두 비상식적으로 늘어나는 장면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이 작품에서 상식의 범위는 그리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런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유지해온 터라 이것을 문제 삼을 일도 없다. 또한 레이싱 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레드라인'에게 무언가 다른 그 이상의 레이싱 영화를 기대했다면 예상한대로 그대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결말과 전개에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 작품의 미덕은 내러티브보다는 그 마초스러움의 뚝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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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JP (기무라 타쿠야)의 경우 이 세계관을 가장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극히 만화적인 동시에 마초적인 캐릭터로서, 그의 무모함은 멋지기 보다는 유치한 느낌이 들지만 희한하게도 마지막에는 멋진 이미지로 기억될 것만 같은 그런 캐릭터다. 이 작품이 만약 TV시리즈 같은 여러 작품으로 기획되었더라면 이런 레이싱이 가능한 세계관을 설명하고 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에 공을 들여 좀 더 사이버 펑크스럽고 우주 지향적인 작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단 한편의 극장판으로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이런 심플함과 무모하리만큼 밀어붙인 에너지가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를 연상시킬 정도로 확연한 '끝'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기에는 헛 웃음이 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통쾌한 웃음이 번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진정한 쿨함이 바로 '레드라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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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보다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기무라 타쿠야나 아오이 유우, 아사노 타다노부 등 유명 배우들의 영향력은 크지 않은 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기무라 타쿠야의 목소리 연기가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번 JP는 목소리를 제외한 캐릭터가 너무 강한 탓에 반감된 느낌이 있었다. 

2. 마치 클럽에 온 듯 시종일관 극장 좌석이 들썩일 정도로 '쿵쿵' 거렸던 강한 비트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레이싱이라는 소재와 어울려 그 속도감을 잘 살려주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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