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Assassination, 2015)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을 보았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항일운동을 벌이던 임시정부 독립투사들이 일본사령관과 친일파를 암살하고자 했던 작전을 그린 작품은, 예상외로 몹시 진지한 작품이었다.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려 봤을 때 그가 다른 감독들에 비해 가장 잘하는 점 중 하나라면 찰진 대사와 빠른 호흡 그리고 앙상블이 만들어 내는 재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암살' 역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는 하지만 좀 더 오락적인 요소가 강조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물론 '암살'은 오락 영화이지만 이 이야기가 다뤄지는 방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이 결과를 보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일본에 맞서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이야기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오락 영화로만 풀어낼 수는 없는 주제였다. 어쩌면 아직도 진행중인 이 현실에 비춰보았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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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암살'의 스틸컷들을 보게 되었을 때,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 등 보기만해도 근사한 비주얼의 배우들이 펼치는 시대극 그리고 암살 작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비주얼 적인 요소가 먼저 기대되었었다. 이미 '놈놈놈'을 통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주는 한국영화의 비주얼 발전을 눈으로 확인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점이 기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으니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배경. 즉 항일운동과 그 중심에 서 있었던 독립투사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었다. 이걸 뒤늦게 깨달은 다음 들었던 걱정은, 많은 잘못된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애국심 만을 강조한 나머지 영화적으로 촌스러운 것은 물론이요, 좋은 의미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목적 달성에도 실패하는 비슷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암살'은 무엇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목적 달성에 성공하고, 여기에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와 긴장감을 적절히 버무린 (과하지 않음이 어쩌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즉,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서 '우리 선조들이 이런 고생을 해서 세운 나라입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이런 소중한 나라에요'라고 가르치거나 일방적 전달 방식이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왜 친일 행위가 용서 못할 행동인지,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한 행동이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작게 나마 관객 스스로가 느껴보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암살'은 충분한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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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잘 몰랐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된 김원봉 이라는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겠다. 아마 나처럼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중요성을 잘 몰랐겠지만 독립운동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암살'을 보고 가장 놀란 점은 김원봉이라는 인물의 등장과 영화가 그를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김원봉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찾아보니 그가 나중에 월북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현재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김원봉이라는 인물은 지우고 싶은 역사인 동시에, 적대해야 할 인물이었기에 그 동안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는 알게 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여러가지 다른 면에서도 발견이 되는데, 최근 정치적인 이슈와도 결부되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혹은 진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인정 여부 등 이 영화에는 현재의 정치,사회적 현실/이슈와 결부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후반부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 영화가 다른 주제 혹은 현실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더라면 이 후반부의 반민특위 시퀀스는 그야말로 사족이었을 것이다. 즉, 영화 완성도 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이 시퀀스 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더 완벽하고 여운을 주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이 이야기를 하고자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항일운동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 그 안에 인물들이 어떠한 갈등과 고통,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그 이후 친일파들이 어떤 처우를 받게 되었고, 그들이 어떠한 논리로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이 이야기가 과연 과거에 머무는 이야기인지를 되묻고자 하는 것이다.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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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반민특위 장면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 캐릭터가 무죄를 받는 것은 물론, 죽음에도 이르지 않는 것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은 '친일파는 살아있다'라고 써야지 했었다 ㅎ). 하지만 그건 너무 직접적인 방식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오락 영화로서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는 예전 염석진을 동생처럼 따르던 부하가 다시 김구 선생의 지령을 안옥윤과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나는 이 결말을 지지 한다. 왜냐하면 이 마지막 암살 작전 성공에는 성공의 뉘앙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당시 암살 작전을 통해 친일파 강인국은 제거되었고, 이후 반민특위를 통해 죄를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뒤늦게 나마 염석진을 암살하게 되었지만, 여기에는 하나도 통쾌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진정한 승자는 염석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반민특위 재판장에서 청중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진짜 믿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것이나, 그의 죽음 뒤에도 남는 씁쓸함은 슬픈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전후 독일과는 다르게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우리 역사의 가장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그로 인해 친일파 청산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독립유공자로 칭송 받거나 그들이 권력을 쥐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요즘은 대놓고 하다보니 황당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친일 역사를 바꿔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암살' 같은 영화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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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본래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암살'은 그 흔치 않은 예외가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어떤 의미로 그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싸워야 하는, 일종의 '진행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더 직접적이어도 괜찮다. 아니 직접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 잊으면 안돼' '사람들한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등의 대사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결코 잊으면 안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1.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본문에 언급한 김원봉에 대한 얘기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역사에 대해 찾아보게 만드는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 시점에서, 제대로 된 역사를 찾아보게 만드는 힘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이 역사 속 이야기에 최동훈 감독이 추가한 허구의 이야기는 어쩌면 전체적으로 집중도를 흐리게 만들 수도 있는 장치였는데, 결과적으로 괜찮은 시도였다고 생각되네요. 이 설정으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더 긴장감 넘치는 후반부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 개인적으론 <암살> 보는 내내 <베를린> 생각이 ㅋ 마지막에 하정우가 전지현에게 이름 물어봤을 때 '련정희 입네다' 라고 말할 것만 같았던 ㅎ (이번에도(?) 부부로 나옵니다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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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The Berlin File, 2013)

류승완의 본능적 느와르 영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를린'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팬임을 밝히고 시작하자면, 본래도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함께 좋아하는 감독이었지만 몇 년 전 '다찌마와 리 : 극장판'을 통해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더욱 친근하고 응원하고픈 감독이 된 것이 사실이다. 류승완의 전작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큰 인기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부당거래'였다. 그런 그가 '부당거래' 이후 더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비로 해외 로케이션 스파이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부터,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기대와 동시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작은 영화에서 류승완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대형 프로젝트의 규모 탓에 자신의 색깔을 잃고 흔한 대중적 포인트에 휩쓸려 성공은 거두더라도 팬으로서 아쉬움은 남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류승완의 '베를린'은 다양한 장르 영화의 클리셰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분명히 류승완이 뿌리로 삼고 있는 성룡 영화와 쇼브라더스의 무협 영화와 골든하베스트의 액션 영화들, 그리고 홍콩 느와르 영화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본 시리즈나 007, 더 나아가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 피하였으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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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은 '베를린'과 관련된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그 모티브를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것에서 시작했다'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결과물에 있어서는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방향성이 달라졌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류승완 감독이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장르와 정서를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에 무엇보다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앞선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작 가장 디테일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져야 할 '스파이'의 이야기가 조금은 힘을 잃은 것 같았다. 베를린이라는 멋진 로케이션과 북한 정보원과 남한 정보원, 여기에 CIA에 모사드와 아랍 단체까지 엮여 있는 구조는 스파이 영화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이 만드는 그 비밀스러운 일의 과정과 정보를 다루고 처리하는 정보원 특유의 스킬을 관객에게 100% 흡입시키기에는, 무언가 이미지와 정서에 기대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서 수시로 케이블에서 재방송을 해주는데도 그 때마다 잠깐만 봐야지 했다가 몰입해서 한참을 보게 되는 이유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의 세밀함이 워낙 흥미로워서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마저 의심하게 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에는 바로 이러한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특히 스파이 영화인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라면 바로 '배신'을 들 수 있을 텐데, 이 배신이 더 충격적이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정황이나 배경이 더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했으나, 초중반의 흐름은 이와 같은 스파이 영화의 디테일한 재미를 주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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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디테일한 측면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탓에 정서적인 측면은 오히려 더 부각되고 깊은 인상을 주었다. 스파이 영화이 대표격인 '007'시리즈의 최근 작 '스카이폴'과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느껴졌던 쓸쓸하고 차가운 스파이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비교적 성공했으며, 글의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류승완 특유의 액션이 강조되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평소 동경하고 있던 홍콩 영화들의 정서가 은연 중에 함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액션 스타일 등을 들어 '제이슨 본'을 연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가깝다면 '스카이폴'이 더 가깝다고 여겨졌으며 근본적으로는 오우삼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작품에 더 큰 정서적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동생 같은 존재에게 배신 당한 것이나, 가장 멀리 있다고 느껴진 상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나, 하정우가 연기한 표종성이라는 캐릭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홍콩 느와르에 열광했고 류승완의 팬인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동일한 정서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즉, 오우삼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이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지와 대칭점에 선 두 인물의 공감대를 보여주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단순히 버림 받은 스파이의 이야기를 다룬 전문적인 스파이 영화가 아닌 이를 배경과 도구로 하는 느와르적 정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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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흥미로워지는 또 다른 지점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남과 북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베를린'은 기획 초기에 남한 캐릭터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정도로, 남북의 이념이 주제가 되거나 부각되는 영화는 전혀 아닌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바로 이 남북이라는 설정이 특별한 감정을 불러왔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과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가 전향이나 남북의 주인공들이 등장해도 전혀 이념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딱 한 마디의 대사에서 다른 스파이 영화에는 없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련정희 (전지현)'를 발견한 '정신수 (한석규)'는 '같은 편이야'라는 말을 한 뒤 점점 숨을 잃어가는 련정희에게 이렇게 묻는다. '고향이 어디에요?'


개인적으로 이 한 마디는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두 주인공의 국적을 한 번에 인식하는 순간이었으며, 더 나아가 분단된 국가라는 새삼스러운 사실 역시 떠올리게 된 의외의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영어를 범용으로 사용하는 서양의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3의 언어를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을 넘어서서, 고향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는 서로 다른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어도 대한민국을 사는 관객으로서는 이 장면에 흐르는 묘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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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액션 연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만든 기술적인 측면은 재쳐두더라도 연출 측면에서 다른 스파이, 범죄 영화와는 다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 표종성과 동명수 (류승범)의 한계까지 몰아 붙이는 액션 시퀀스를 보면서, 최고의 기술자들이 한계에 달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임팩트도 물론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보다는 정서적으로 진이 빠지도록 만든 연출이 더 인상적이었다. 류승완 영화의 액션 클라이맥스 들은 대부분 이렇게 주인공을 더 이상 소모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소모시켜서 관객 역시 피로함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베를린'의 클래이맥스 역시 바로 이 점이 테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장철 영화에서 느꼈던 비장함이나 처절함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미 숨을 거둔 련정희의 시체를 표종성이 들쳐 업고 나오는 장면만 봐도 다른 영화였다면 더 간결하게 갈대 숲 안의 장면으로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으나, 류승완은 이 정서를 더 연장하여 몇 번이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갈대 숲을 빠져나와 슬픔과 아픔에 녹초가 되어버리는 표종성을 계속 응시한다. 이런 시퀀스에서 좀 더 류승완 만의 정서를 분명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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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근 이 영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혹은 클리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관람하기 전 이미 '제이슨 본' 시리즈의 표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간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이 부분은 클리셰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크게 문제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래에서 코드 진행이 같다는 사실 만으로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듯이, 스파이 장르와 특히 최정예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액션 영화에서 클리셰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상당 부분 많기는 했지만 이것의 유사점을 들어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제이슨 본' 시리즈 보다는 '스카이폴'이 연상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이후 논란이 된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는 쉽게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베를린'과 유사점이 의심되는 '차일드 44'의 소설 부분 부분을 확인해본 결과 이는 단순히 클리셰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디테일한 설정과 장면의 유사점이 발견되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으나,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들의 유사점 만으로도 소설 '차일드 44'와의 논란은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누구보다 류승완 감독의 팬이기에 이 부분은 좀 더 명확한 이야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 표절 논란으로 발전적이지 않은 추가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2.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감독님과 인터뷰해보고 싶었는데, 이제 안되려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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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The Thieves, 2012)

최동훈 세계의 집대성 그 장점과 단점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영화를 소개할 때 '웰 메이드 (well­ made)'라는 표현을 유독 자주보게 되었는데, 어쨋든 전반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의미라면 국내에서 '웰 메이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 중 하나가 바로 최동훈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범죄의 재구성 (2004)' '타짜 (2006)' '전우치 (2009)' 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개인마다 호불호는 나뉠 수 있지만 영화적 완성도로 보았을 때는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완성도가 높은, 배우, 연출, 액션, 시나리오, 대중성 등 다방면에서 준수함을 보여주었기에 이 작품 '도둑들' 역시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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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은 전반적으로 최동훈의 세계관을 집대성 해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명이 극을 이끄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의 캐릭터가 집단으로 등장해 유기적으로 얽히는 설정은 물론, 범죄의 세계에 대한 디테일 (주로 대사에서 오는)을 챙기는 한 편, 액션에도 볼거리를 선사하고 반전을 거듭하는 동시에 드라마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도둑들'은 이미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 확연한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조금만 더 간결했더라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배경을 묘사할 때 단순 묘사나 한 두 가지의 디테일로 승부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그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 공을 들였던 감독이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전문 사기꾼들이 쓰는 찰진 대사들을 통해 실제 그 세계를 러닝 타임 동안만이라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타짜'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박꾼들을 넘어서 그들 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도둑들' 역시 최동훈 감독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면서도 한 편으론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가끔 이런 이면의 세계를 그릴 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도둑들'은 현실성과 영화적인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단편적으로 정리하자면, 부산을 배경으로 건물 외벽을 와이어에 매달려 벌이는 총격전이 한편으론 판타지스럽기도 하지만 만족스럽기도 하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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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관을 구현하는데에 있어 '도둑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은 캐릭터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집단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경우 장점과 단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10명에 가깝게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 각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살리기는 불가능하다기보다 안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절반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몇몇 캐릭터의 경우 딱 그 캐릭터의 비중에 맞게 설정되어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앤드류-오달수, 예니콜-전지현 등), 몇몇 캐릭터에게는 범위 이상의 이야기가 할애된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 김수현이 연기한 '잠파노'의 경우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예니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조금은 모호함이 없지 않았던 것 같고, 임달화 형님이 연기한 '첸'과 김해숙이 연기한 '씹던껌'의 이야기의 경우는 무언가 전체적인 이 영화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울리지 않다기보다 모호하게 위치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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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도둑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역시, 임달화 형님의 출연 때문 ㅠ)


참고로 첸과 씹던껌의 이야기를 통해 최동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도둑들'의 정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이렇게 중간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좀 아쉬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그 둘이 남긴 대사들이 주는 범죄 영화의 감성적인 정서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정서가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한 켠에 머무르지 않고 차라리 중심에 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렇다면 현재의 '도둑들'에서 어울리지 않는 정서들도 여럿 있을 테니 총체적인 정리가 필요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정서의 중심에 임달화 형님이 있다보니 이렇게 사이드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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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최동훈 감독의 야심이 집대성 되다보니 발생된 단점이라면, 일단 안그래도 집단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이야기가 집중되지 못할 확률이 높은데 그 각각의 인물들에게 비교적 더 많은 이야기를 주려고 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힘을 잃은 경향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도둑들'의 메인 스토리라면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태양의 눈물을 두고 벌이는 이른바 '꾼'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팹시(김혜수)와 뽀빠이(이정재)가 연관된 과거사가 포함된 것까지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첸과 씹던껌의 독립적인 이야기는 물론, 무언가 더 할 것처럼 하다가 애매하게 남겨져 버린 잠파노 그리고 추후 비중있게 등장하는 웨이 홍의 이야기까지, 모두 하나의 줄기에 엮여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열매가 조금은 무거웠던 탓에 전반적으로 복잡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관계 설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에 장점 중 하나이긴 한데, 이번에는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처럼 시리즈로 계획되었다면 조금은 부담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각각의 비중을 설정하는 데에 조금은 애를 먹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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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후반부 부산에서 펼쳐지는 건물 외벽 와이어 액션을 들 수 있을 텐데, 어떤 영화와 비슷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시퀀스만 봐도 액션 콘티를 얼마나 신경써서 작업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장면이었다. 사실 그 동안 마카오박에 대해 영화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에 갑자기 이던 헌트처럼 와이어를 타고 자유자재로 날라다니는(?)가 하면 홍콩 조직원들과도 1:1로 결투까지 벌이는 마카오박의 모습에 조금 갑작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어쨋든 그 갑작스러움만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리듬감을 만나볼 수 있는 시퀀스였다. 두기봉 영화와 성룡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던 부산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이 장면의 또 다른 승자는 바로 그 건물이다), 와이어를 최대한 적절하게 활용한 이 액션 시퀀스는 '도둑들'이 단순히 머리쓰고 뒤통수 치는 영화가 아니라 볼거리로도 만족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한 번 본편을 감상한 경우 바로 이 장면을 선택해 다시 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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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그의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요소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으로서,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그 각각의 매력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이 될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매력적인 요소들이 조금은 과하게 담긴 탓에 넘쳐 아쉬움으로 남게 된 점도 없지 않지만, 우리가 흥분했던 홍콩 범죄 영화의 장점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아마 어렵겠지만 '오션스 일레븐' 처럼 시리즈로 제작되어 다음 편에는 정말 조지 클루니가 일원으로 출연한다던지 아니면 양자경 누님 정도가 출연해주신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바램도 가져본다.



1. 오랜만에 극장에서 여자 분들의 함성소리를 들었어요. 확실히 김수현이 대세이긴 한 것 같아요 ㅎ 그의 등장과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하시더라는 ^^;


2. 그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비튼 전지현의 '예니콜' 캐릭터는 확실히 인상적이더군요. 염정아나 김혜수가 내뱉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같은 대사들이었어요 ㅎ 이름부터가 '예니콜'이라는 것에서 피식하기도 했고요 ㅋ


3.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많다보니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마카오박(김윤석)의 비중이나 깊이는 조금 덜해진 느낌이더군요. 이건 김윤석 씨가 연기를 못했다기 보다는 상대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나중에 부산 가면 그 건물과 그 골목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장소 활용이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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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 (Blood : The Last Vampire, 2009)
피 방울방울이 만든 만화같은 스타일 액션



전지현의 헐리웃 진출작으로 널리 알려졌던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이하 블러드)는 원작 애니메이션을 아주 인상깊게 보았던 이로서 충분히 기대할 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애니메이션을, 특히 일본산 애니메이션을 서양에서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양키 센스' 때문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일단 확인하고 넘어갈 것은 이 영화는 전지현의 헐리웃 진출작이라고 100% 보기는 어려운 것이 일단 미국자본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홍콩, 일본, 프랑스, 아르헨티나가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서 헐리웃 진출이라고 할 때 동반되어야 할 미국 자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감독인 크리스 나흔도 프랑스 출신이기 때문에 '양키 센스'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단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가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홍보 방향과 이를 대하는 언론에 문제인 듯 싶다.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 헐리웃 진출이라는 대중들이 혹할만한 떡밥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후에 이것이 진짜 헐리웃 진출이다 아니다라는 얘기나 나왔을 때, 일부에서는 속았다는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이며, 영화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있던터라 실망감도 커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개인적인 우려와 이미 본 이들의 쏟아지는 악평들 덕에 볼까 말까를 고민했을 정도로 기대치는 낮아졌지만, 그래서인지 막상 극장에서 감상하게 된 <블러드>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분명히 발견되었지만, 뭐 이 영화에 어차피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았음으로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으며, 개인적으로는 전지현이 그 동안 출연했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Production I.G 의 애니메이션 'Blood : The Last Vampire'

영화 <블러드>를 이야기하면서 원작이 된 애니메이션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인랑>과 <공각기동대>를 만들었던 프로덕션 I.G에서 전략적으로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I.G 라는 말이 절로나왔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아니메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100% 풀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진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기억으로도 '상당히 무서웠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공포스러움과 스타일을 두루 갖춘 프로덕션 I.G 또 다른 대표작이었다.

참고리뷰 - 애니메이션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 DVD 리뷰
http://www.realfolkblues.co.kr/43




영화는 초반에는 거의 원작인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따르고 있다기보다는 몇 몇 인물들의 설정이 변한 것만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 만들려고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인트로 장면에 지하철 씬 같은 경우는 앵글은 물론 제작사 이름이 뜨는 위치까지 똑같아서 상당히 놀라기도 했었다. 원작 애니메이션을 본 입장에서는 애니 속 장면들이 거의 그대로 실사화 되는 부분이 일단은 매우 흥미로웠다. 애니의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는 거의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어쩌면 영화 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 것은 애니메이션의 이야기가 끝나는 그 지점이 된다고 봐야겠다.

등장인물들의 묘사라던가 미국공군기지의 묘사, 그리고 배후에 있는 조직에 대한 묘사들은 원작과 비교했을 때 크게 떨어지는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작과 비교했을 때 공포스러움을 조장해가는 그 분위기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는데, 원작에서는 처음 요괴(혹은 괴물)라는 정체가 밝혀지고 그 실체가 등장할 때까지 굉장히 마음 졸이며 보았던 기억이 나지만, 영화 <블러드>는 이런 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공포'보다는 '액션'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런 점은 원작에 비해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그대신 액션 장면 연출에 있어서는 그 비중도 훨씬 크고 스타일 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인 것도 사실이다.




영화 <블러드>는 날카롭고 긴 칼을 가지고 벌이는 핏방울이 그야말로 '방울방울'대는 액션 장면들이 많은데, 만약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관객들이라면 큰 실망을 하게 될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피는 정말로 많이 튀고 등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거의 만화같은 수준으로 펼쳐진다. 또한 너무 빠르게 베고 또 베는 탓에 신체 회손의 끔찍함을 제대로 만끽(?)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마치 만화같은 이 스타일이 이 작품에는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어차피 요괴가 등장하는 점이나 원작이 애니메이션인 점만 봐도 이 작품에서 너무 정극에 가까운 효과들이 등장했다면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졌을 수도 있고 이 영화만의 색깔을 내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액션 씬은 1대 다수의 시퀀스인데, 그렇기 때문에 액션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상당히 빠르고 숨가쁘게 진행된다. 전지현이 연기한 주인공 '사야'는 제법 다양한 몸동작으로 적들을 물리치곤 하는데 칼부림 외에 교복 치마라는 드레스코드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다양한 발차기 등도 인상적이었다. 검집에서 검을 빼내는 동작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예전을 회상하는 액션 씬 가운데 사야가 사용한 한 동작은 마치 <바람의 검심>에 등장하는 '비천어검류'같아 혼자 흥분하기도 했다 ;;;




이 영화가 가장 취약한 부분 중에 하나는 다름 아닌 CG파트일 것이다. 필연적으로 본모습을 드러낸 요괴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요괴'를 묘사한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이 참담한 것이 사실이다. 마치 예전 특촬물에 등장하는, 사람이 탈을 쓰고 들어가 움직이는 괴물의 모습을 조금 컴퓨터로 손 본 수준으로 가끔 등장할 만큼 (이건 보는 이에 따라 심한 비약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자체의 퀄리티도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실사 인물들 그리고 실사나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배경들과의 조화 측면에 있어서 많은 이질감을 발생시키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핏방울의 묘사 역시 이런 아쉬운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원작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작품의 특수성을 감안하였을 때 앞서 언급한 점만 제외하면 그리 나쁘지않은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주인공 사야의 피부 표현이었는데,  일반 사람들의 얼굴 빛과는 물론 틀리고 창백한 얼굴도 아니면서 거의 회색 빛에 가까운 얼굴 색의 표현은 '사야'라는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 그 눈빛과 더불어 상당히 인상적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전지현의 연기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여기 출연한 배우들 가운데 거의 제일 나은 수준이었다. 이 영화의 퀄리티를 깎아먹고 있는 또 하나의 부분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 퀄리티라고 할 수 있을텐데, 주요 역할을 맡은 몇몇 서구 배우들의 연기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른바 '서프라이즈' 연기라 전체적인 작품의 퀄리티마저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조금만 더 좋았다 하더라도 이 작품이 좀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지현의 연기에 대해서는 크게 아쉬운 점이 없었다. 특히 액션 연기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대역배우나 CG가 사용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분위기 만큼은 사야라는 캐릭터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영어 대사처리에 있어서는, 영어대사만 딱 떨어트려 놓고 보면 그리 어색한 편은 아닌데, 극 중에서 막상 보고 있노라면 꼭 발음이 나빠서라기 보다는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지긴 한다. 헌데 따지고보면 주인공 '사야'는 정확히 일본인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약간 국적불명의 캐릭터이니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귀엽게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ㅎ (참고로 극중에서 일본어로 연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짜임새가 완벽하다거나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반전이 등장한다던가 하는 이야기 구조는 절대 아니다(반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조금 식상한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내용적인 측면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너무 1대 다수의 액션 시퀀스에만 집중하다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액션이라고 할 수 있는 숙적 '오니겐'과의 대결 시퀀스가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린 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보니 이 작품이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염두에 둔 결말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 무섭다는 '오니겐'의 활약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끝나버리는 건 분명 아쉬운 점이었다.





1. 전지현의 외국 이름이 'Gianna' 더군요. 전지아아나. -_-;;

2. 영화 중간 중간의 느낌이 살짝 <킬 빌> 분위기가 나기도 하네요.

3. 만약 이 영화가 지금같은 홍보 없이 슬쩍 개봉했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4. 괴작이라고 하기엔 모자르고, 그냥 조금 아쉬운 애니 원작 액션 영화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5.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본래 계획되로 후속편이 나올 수 있을까요?

6. 서두에도 얘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지현 출연작들 가운데 제일 좋았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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