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 (大虎, 2015)

모노노케 히메의 향기를 느낀 조선 호랑이 설화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각본을 쓰고 '신세계'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박훈정 감독의 신작 '대호'를 보았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지리산 산군으로 불리는 호랑이를 잡으려는 일본 군과 한 때 조선 최고의 포수로 불리웠던 천만덕(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대호'는 무엇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가 호랑이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배우, 그것도 최민식에 버금가는 비중의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극중 천만덕과 일본군들이 대표하는 세계와 산군 호랑이가 대표하는 세계가 서로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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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핍박 받는 삶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 3국의 관객들이 본다면 공생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이 시대 배경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즉,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처럼 이 시대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 구도를 써먹지 않는 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화는 오히려 이 호랑이와 명포수였던 천만덕의 캐릭터에 집중하여 스토리를 천천히 전개해 간다. 다시 말해 호랑이가 등장한다고 했을 때 중후반부에 가서야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했으나, 천만덕의 등장이 그랬던 것처럼 초반부터 등장하여 캐릭터 소개와 자신 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최민식이 연기한 천만덕 만큼이나 공감대를 형성이 가능한 구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대호'가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배경 혹은 상대로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 가까운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흔치 않은 구도로서 호불호와 상관없이 일단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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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천만득의 세계과 호랑이의 세계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의 장점이라면 바로 그 다른 두 세계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인간 캐릭터 못지 않은 성격을 갖게 되면서 마치 동물농장에나 나올 법한 (이건 결코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감동적인 스토리가 가능해졌는데, 개인적으로도 고양이를 오래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동물과의 교감이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극적인 상황 속 인간과 호랑이의 교감을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판타지 같이, 그러니까 유치하지 않게 묘사된 건 분명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이런 시도는 흔히 너무 순진하게 묘사한 나머지 유치하고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되는, 그래서 갑자기 너무 심한 판타지로 빠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대호'는 그렇지 않고 그 다른 세계 간의 조우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는 호랑이에게 더 깊은 공감대를 느꼈을 정도로 이 캐릭터의 묘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CG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부 액션 장면에서 살짝 이질감이 느껴지는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전혀 극의 몰입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였다. 호랑이가 배경으로 살짝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주연급으로 다양한 액션과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수의 늑대 때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여러 CG가 동원 되었는데, 그간 한국 영화의 CG에 비교하자면 괄목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병기 활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반대로 이 호랑이가 중심이 된 내러티브가 꽤 괜찮았기 때문에 일본군과 포수대의 이야기, 그리고 천만덕의 이야기까지, 인간 세계의 내러티브가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껴졌고 그렇다보니 조금은 부수적으로, 특히 엔딩에 가서는 차라리 하나의 이야기로 빠르게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단순히 긴 러닝 타임 때문이 아니라 중후반부의 전개는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빠르게 하나로 만들기 보다는 아직도 각각의 이야기를 한참 더 하는 식이여서 오히려 몰입도가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한참을 호랑이 중심으로 전환 없이 전개하다가 다시 천만덕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마치 영화가 끝날 시점을 지나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후반부의 선택과 집중이 더 효율적으로 이뤄졌더라면 좀 더 오래 남는 영화가 되었을 것 같은데, 호랑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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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덕의 캐릭터와 포수대의 이야기가 나쁜 것은 아닌데, 호랑이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보니 차라리 더 호랑이 중심의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보다 10배는 더 슬픈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호랑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정도지만.


1.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영화는 다름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였어요. 그런 느낌이 적지 않은데, 아예 진짜 그렇게 가버렸더라면 초명작이 되거나 망작이 되긴 했을듯. 천만덕의 아들을 산군 호랑이가 어렸을 때 부터 키워서 나중에 명포수인 천만덕과 호랑이 손에 자란 아들이 만나게 되는. 호랑이가 말도 하고. 으하하;;;


2. 천만덕과 아들의 대화 시퀀스가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구수한 사투리와 유치하지 않은 대화와 유머가 재밌었다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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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Veteran, 2014)

울분에 가득찬 현실세계의 활극



2010년 류승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했던 '부당거래'와 2012년,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했을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 이후 그가 선택한 새로운 이야기는 또 한 번의 형사이야기 '베테랑' 이었다. '베테랑'에 대한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영화가 자신을 홍보하는 방식은 철저히 '오락영화'라는 것이었다. 범죄오락액션 에서 분명 오락에 초점이 맞춰진 방식은 특히 이 영화가 개봉하는 시기가 여름 그리고 휴가철이었기에 마케팅을 오래 해왔던 입장에서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마케팅 방식이었다. 하지만 개봉에 앞서 '베테랑'이 더 오락액션영화 임을 강조해 갈 수록,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의 한 사람으로서는 조금씩 걱정스러운 점들도 있었다. 여름 극장가에 걸맞는 영화도 좋지만, 최근 좀 더 알게 된 류승완 감독이라면 더 진일보한 영화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같은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베테랑'은 영화가 자신을 홍보해 온 것처럼 범죄오락액션 영화가 맞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근본에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그에 따른 울분과 씁쓸함이 담겨있는, 결코 간단히 볼 수 없는 입체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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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룡 영화 그리고 메시지가 담긴 분노의 날라차기


먼저 액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미 전작 '베를린'에서 또 한 번 액션 연출에 있어서 진일보한 시퀀스를 만들어 냈던 류승완+정두홍 콤비는 이번 '베테랑'에서도 뻔한 액션 시퀀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썼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액션 시퀀스는 영화 초반 주인공 서도철 (황정민)이 불법 자동차 공장에서 일당들과 벌이는 장면과 그 이후 이어지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배경으로 한 항구에서의 장면인데, 일단 첫 시퀀스에서는 성룡 영화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류승완 감독이 성룡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점인데, 액션 연출에 있어서 이 시퀀스 처럼 직접적으로 그 장점을 활용하고자 했던 시퀀스는 의외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액션 연출을 보면 철저하게 도구를 활용하고, 그 도구 및 주변 물건들이 갖는 특성을 100% 액션 연출에 가미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코믹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잘 싸우는 사람이 주도 하는 액션을 보는 것 이상의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지만 '베테랑'에는 유독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가 자주 등장한다. 주로 미스봉 (장윤주)이 마치 필살기처럼 사용하는 이 날라차기는 단순히 캐릭터의 시그니쳐 무브로 활용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라는 기술의 특성을 보았을 때 어쩌면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패했을 경우 타격이 크고 (실제로 실패했을 경우의 타격에 대한 장면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무언가 모든 걸 다 던져 버린다는 감정이 실린 기술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았을 때 이 분노의 날라차기는 설령 실패하거나 한 방에 보내지 못해 더 맞게 될 지언정, 한 번 시원하게 때려줘야겠다는 심정이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이것은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날라차기는 결코 흘려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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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혹자는, 특히 전작 '부당거래'를 좋아하는 이들 가운데는 '베테랑'을 보며 그저 오락 영화이기만 하다고 아쉬워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베테랑'을 보며 든 생각은 '어? 이거 부당거래 보다도 더 직접적인데?'라는 생각이었다. 아마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이들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를 본 기억들이 있을 텐데 (워낙 세상이 떠들석한 뉴스였으니), 극 중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 재벌가들이 벌이는 행동들은 그저 혀를 차며 '저런 나쁜 놈들...'하기에는 너무 직접적인 묘사였다 (오히려 부당거래의 묘사보다 베테랑의 묘사가 훨씬 더 직접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까지 직접적인 묘사를 한 이유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게 끔, 혹은 당장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문득 '아, 이게 그냥 영화가 아니었네'라고 생각될 만한 여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오락영화 임을 강조하고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리고 '베테랑'에서 돋보이는 대사들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형사나 재벌, 혹은 범죄자들이 현장에서 쓰는 진짜 단어나 대사들이 아니라 서도철의 아내인 주연 (진경)의 대사나, 화물차 운전사로 등장했던 배기사 (정웅인)의 대사들이었다. 이 대사들이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전자로 언급한 대사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였는데 전자의 경우, 진짜 형사나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이 포함된 대사들을 듣게 되면 잘은 몰라도 전문적이고 실감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면, 후자의 경우는 잘은 몰라도가 아니라 너무 잘 알 수 밖에는 없는, 감정이 동요하는 대사들이었기 때문에 와닿을 수 밖에는 없었다. 즉, 대부분의 관객은 형사도 아닐 뿐더러 형사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벌이나 셀러브리티도 아니지만, 그들과 엮여 있는 이 세계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너무도 현실 접근성이 높았던 터라 일부분 영화적으로 묘사된 부분들 마저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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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맞아주고 때려주고 욕해주는, 선배의 영화


솔직히 개인적으로 '베테랑'이 통쾌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너무 현실에 찌든 탓인지 극 중 서도철 처럼 조태오 같은 인물에 맞설 자신도 없고, 그의 아내처럼 흔들리는 와중에 끝까지 거절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과연 이후에 행복해졌을까 혹은 조태오는 제대로 된 심판을 받게 될까 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도 이 같은 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먼저 말하자면 '베테랑'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일종의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맹목적 메시지 보다는, 현실에 근거하여 '야,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이건 아니잖아. 형이 먼저 해볼께'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는 유독 그런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쪽팔리게 살진 말아야지'

이를테면 이런거다. 누구나 거대한 권력이나 무력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는 것조차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소신을 지키라는 것 보다는,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잘못된 것과 끝까지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마저 버려서는 안되며,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그 양심마저 버리게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남는지를 되물으며, 그렇게까지 살지는 말자 라고 이야기하는. 최대한과 최선의 노력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닌, 최소한 지켜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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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 서도철과 조태오의 대립과 결투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것은 분명 권선징악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악을 선이 완전히 물리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되는 이야기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누군 가가 악에 대신 맞서서 싸워주고 아니 피 흘리고 멍들고 부러지도록 맞아주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해줌으로서 그런 용기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마음 속에 작은 불꽃이라도 꺼지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도심에서의 액션 장면에서 서도철이 주변의 CCTV를 인지하고 전과는 다르게 미란다 원칙을 먼저 말하고 시작하는 장면 역시, 단순히 정당방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참아낸 과정이라고 보기 보단 오히려 그 주변을 둘러싸고 휴대폰 카메라도 지켜보고 있던 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 때까지 육체적으로 견디며 기다려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류승완 감독의 액션 연출에서 거의 대부분 발견되는 점은 바로 피로감 그리고 고통인데, '베테랑' 역시 그 점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하지만 전작들과는 다르게 그 고통과 고단함이 기술적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뒷 받침하는 기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베테랑'의 액션은 더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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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며 든 가장 깊숙한 곳의 느낌은, 영화가 끌어 오르는 울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를 아주 세련되게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울분을 토해내는 것에만 집중해서 결국 아무도 그 울분이 왜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를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것에서 영리하게 빠져나와, 결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 해 낸 그런 오락영화였다.


아, 진짜 베테랑이다!



1. 아트박스 사장님이 좀 더 활약하는 확장판 없나요? ㅎㅎ

2. 초반 정웅인 씨가 등장하는 장면은 왜 죄다 그렇게 불안하고 가슴 졸이게 되는지. 차는 사고가 날 것만 같고, 컨테이너가 어디서 떨어질 것만 같고.

3. 극 중 인물 가운데 제일 불쌍한 사람은 최상무 (유해진) 같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스템 속에 갇혀버린 사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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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 민란의 시대

차라리 더 조윤의 영화였더라면



'범죄와의 전쟁'을 연출했던 윤종빈 감독이 다시 한 번 배우/스텝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든 사극 '군도 : 민란의 시대'는 그의 신작이라는 점과 하정우, 강동원의 대결 구도 등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화려한 캐스팅은 물론이고 예고편에서 뿜어나오는 타란티노스러운 리듬감과 스타일은, 강동원이라는 보증되어 있는 비주얼과 함께 어떤 스타일리쉬한 액션 활극이 될지 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군도'는 위의 기대를 대부분 충족시킨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에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균형감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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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스토리는 대략 히어로물과 유사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능력도 없고 평범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이미 대의를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해 오던 무리에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훈련을 받아 그들이 오래 계획했던 대업을 결국 마무리하게 되는 중책을 맡게 되는 그런 구조인데, '군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조금씩 흔들렸다고 하겠다. 저런 스토리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스토리가 관객에게 더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초반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야 하고, 무리로 등장하는 선의의 그룹의 이야기 역시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이유가 필요한데, '군도'의 경우는 이 두 가지가 조금은 부족했다. 돌무치는 불운한 사건을 겪으며 도치가 되지만 이 성장 아닌 성장 과정에서 관객은 별다른 동요를 느끼지 못하고,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도적떼의 이야기 역시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시간도 깊이도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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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은 이 부족한 부분을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려 하는데,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이 부분에서 필요했던 건 설명이 아니라 공감대였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내용은 설명으로 해결이 될 수 있었지만 이 설명 만으로는 지리산 도적떼가 이루려고 하는 진짜 세상과 주인공 돌무치의 울분이 생각보다 와닿지 않았다. 써놓고 보니 특히 돌무치의 경우 그 울분이 더 강렬하게 표현되어도 좋았을 법 했는데 너무 쉽게 대의에 섞여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개인적인 사정과 시대적인 사정이 결합하는 구조에서 둘 모두가 조금은 미지근하게 표현되다 보니, 전반 부는 조금 지루하고 후반 부는 빠르게 진행되나 감정적으로 공감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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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이 설정한 이 영화의 대립 구도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도가 아니라 둘 다 갖지 못한 자들의 싸움 구도였다. 재산은 물론 먹을 것 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백성들과 처음 부터 서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던 이의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앞선 군도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이 미처 다 어필되지 못했지만,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조윤의 이야기는 비교적 절제된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후반 부의 클라이맥스에서도 도치가 아니라 오히려 조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결과까지 낳게 되었다. 솔직히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100% 이를 가능케 했다기 보다는 조윤이라는 캐릭터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비주얼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긴 도포를 휘날리며 신선처럼 걷고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무를 겸비한 조윤은,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곱지만 강렬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조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돌무치와 군도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갖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기에, 말미에 가서도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적'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주인공 (사실상 주인공)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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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차라리 더 조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캐스팅은 어려웠을 지도 모르지만, 조윤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조윤에게 할애하고 지금과 같은 구도가 아닌 조윤에게 더 포커스를 맞춘 구도였다면, 혹은 돌무치의 비중과 공감대를 조윤에게 버금가도록 끌어냈다면 (사실은 조윤을 넘어서야 하지만) 더 흥미로운 구도의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도'는 한 편으로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과 닮아 있는데, 여럿을 등장시키면서도 그 균형점을 잘 잡아내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조금은 그 균형이 흔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조윤 때문이가. 극장을 나온 뒤로도 계속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1. 타란티노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텐데 (실제로 '장고'에 수록된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통쾌함을 주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점이었네요.


2.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극 중 캐릭터들의 나이였죠. 나중엔 이성민씨가 연기한 대호역시 25정도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 땐 정말 힘든 시기였나보네요;;;;


3. 처음 김성균씨가 등장했을 땐 까메오 정도인 줄 알았었는데 쭈욱 나오더라는. 결국 또 하정우의 오른팔인겁니까?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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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간다 (A Hard Day, 2014)

충실해서 군더더기 없는 장르 영화



사실 최근 한국 영화들은 제목과 배우, 포스터만 보면 그리 변별력을 갖기 힘든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액션이나, 느와르, 스릴러 등의 장르를 내세운 영화일 수록 특히 그런 경향이 심했는데, 배우만 바뀌었을 뿐 다들 영화 속 이야기라는 걸 감안해도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는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특히 많았다. 이선균과 조진웅 주연의 영화 '끝까지간다'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다. 두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냥 포스터 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앞서 이야기한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111분 간의 러닝 타임 동안 단 1분도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참 재미있는 장르 영화였다. 무엇보다 장르 영화라는 것에 충실했고,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영화라 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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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의 '끝까지간다'는 전형적인 장르 영화다. 이런 종류의 장르 영화의 클리셰들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장르 영화를 많이 접한 이들이라면 다음 장면을 예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정도다. 다시 말해 영화 속 이야기에서 충격적인 죽음이나 반전이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예상이 가능했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 반전이나 충격이 핵심인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전반적인 리듬과 속도가 매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주인공이 짧은 시간 동안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가지 악제들을 겹겹히 겪게 되면서 벌어지는 곤란함과 피로함, 여기에 추격과 추리가 더해져 일정하게 빠른 속도로 끝으로 달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끝까지간다'는 군더더기를 최소화 하는 데 집중한 듯 보인다. 가끔 이런 장르를 선택한 영화들 (특히 한국영화에서)이 실수하는 것이, 영화 스스로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보이는 듯한 너무 거대한 담론을 끌어오려 한다던지, 너무 반전과 충격에 집중한 나머지 그 과정이 결국 재미를 잃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끝까지간다'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딱 주인공의 겪는 그 사건에만 집중한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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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에도 서브 텍스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서브 텍스트가 수면 위로 부상할 때 쯤, 영화는 다시금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와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또 하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어쩌면 영화적일 수 밖에 없는 설정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상당히 한정적인 현실 사건으로 범위를 좁게 가져 감으로 인해 리얼리티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어지는 일들도 '야, 이건 좀 너무한다'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잘 연출되어 있고, 조진중이 연기한 '박창민'이라는 캐릭터 역시 활약상만 놓고 보면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라 할 수 있음에도, 영화 속에서 현실적으로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어 관객들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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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포와 긴장감이 지속되는 동시에 유머를 잃지 않은 것도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의외로 전혀 다른 포인트에서 관객들이 많이 웃기도 했지만, 어쨋든 전반적으로 주인공의 시점에 100% 몰입하게 만든 동시에 중간 중간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유머를 녹여낸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사회 및 공권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는 분명 담고 있으나, 딱 그 정도로만 멈춘 것도 좋았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갔더라면 전체적인 긴장감의 리듬이 속도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는 역효과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처럼, 에필로그처럼 스쳐가도록 비판의 메시지를 표현한 것은 오히려 이렇게 한 번 더 회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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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가운데 열혈 영화 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 하나의 영화를 추천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끝까지간다'를 추천할 것 같다. 누구든 영화가 상영된 111분 동안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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