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타카의 레드필]

알고도 당하는 케이블 영화의 묘한 매력



처음 몇 개의 케이블 채널로 시작한 지상파 외 케이블 채널의 영화 채널들은 이제 대표적인 CGV, OCN 등 말고도 슈퍼액션, 스크린, 선댄스 등 요금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정말 많은 수여서 맘만 먹으면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주말의 명화, 토요 명화 시절과는 다르게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영화를 대부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케이블 채널의 영화가 갖는 장점은 이전보다 덜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나는 소장하고픈 영화들은 대부분 블루레이나 DVD를 꼭 구입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는 일이 어느 정도는 가능한 편이다. 여기에다가 최근 자주 애용하는 IPTV 같은 VOD 서비스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무료라는 것 외에 케이블 채널의 영화는 별다른 장점을 갖기 힘들다고 봐야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상대적으로 다른 매체에 비해 장점이 떨어짐에도 케이블 영화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쉽게 끊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수십번 씩 본 영화들이고, 특히 케이블로만 수십번 씩 본 영화임에도 그 영화가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또 보게 되고, 심지어 블루레이를 소장하고 있어서 보다가 나중에 다시 더 나은 화질과 사운드로 관람할 수 있음에도 굳이 그 시간에 맞춰보느라 약속 시간에 늦었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건 정말 논리적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점인데, 왜냐하면 모든 상황에 대체 가능한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케이블에서 방영한다는 건 거의 90% 이상 VOD 서비스를 하는 경우고, 관심을 갖고 보게 된다는 건 그 영화를 이미 다른 매체로 소장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까지 더하면, 꼭 그 시간에 그 영화를 TV 앞에 앉아 봐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예전 주말의 명화, 토요 명화 아니 여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케이블TV 가 대중화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못 본 영화이거나 극장 이후 처음 그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는 공중파에서 추석, 설 연휴 특선 영화 등으로 방영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경우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 날을 꼭 기억해 두거나 녹화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희귀한 영화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보고 싶을 때 대부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케이블 영화를 계속 보게 되는 건 매번 느끼지만 아이러니다.


더 재미있는 건 그렇게 보게 되는 케이블 영화들이 대부분 같은 작품이라는 점. 그러니까 매번 새로운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 하는 것보다는 매번 같은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일이 더 잦다는 것이다. 손으로 꼽아보지는 않았지만 케이블TV의 단골 손님인 제이슨 본 시리즈의 경우 거의 모든 동선을 외울 정도로 많이 보았는데, 그래도 또 이런 저런 이유 등으로 다시 방영하게 되면 꼼짝없이 그 앞에 발이 묶여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전 부모님과 같이 살 땐 부모님이 '분명 본 영화인데 어떻게 되는지 기억이 안난다'라고 해서 끝까지 보는 경우도 많았었는데, 그렇지 않은 지금은 어떻게 되는 지도 다 알지만 그래도 계속 보게 된다.


이 알고도 당하는 케이블 영화의 유일한 탈출구는 1부와 2부의 텀이다. '1분 뒤에 계속'은 자리를 뜨지도 않거나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것으로 긴장하게 하지만, 거의 10분 이상 공백이 생기는 1부와 2부 사이의 시간은 다시 재정신을 차리고 '왜 수십번 본 영화를 이 시간에 묶여서 또 보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을 들게 해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처음엔 1부가 끝나고도 곧 2부를 할 것처럼 페이크를 쓰는 채널의 꼼수에 넘어가 꼼짝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잡혀 있었지만, 곧 할 것 같아도 그건 2부를 곧 한다는 예고를 다시 한 번 보여준 뒤 다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쉽게 포기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그래도 케이블 영화의 묘한 매력, 아니 영화의 매력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왜 본 영화를 몇 번 씩 또 보고, 사로 잡혀 버리는 것일까.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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