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한 달간 꼬박꼬박, 마치 수업을 듣는 것처럼 한 시간도 빼놓지 않고 함께 했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Justice)' 강의가 모두 끝이 났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일방적이지 않은 (하지만 결국 노련한 마이클 샌델의 손바닥 안에 있는) 토론 방식 자체가 흥미로웠다. 평소에 쉽게 얘기를 나누기 어려운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충분히 들어보고, 한 편에 서서 다른 한 편의 논리를 무너 트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상대가 설득 당하지는 않을 지언정 이해는 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상대의 논리를 경청하며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강의에 대한 모든 것에 호의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선입관이었는데, 마이클 샌델에 관한 선입관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강의에 대한 선입관이었다.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처럼 답이 너무 뻔하거나 그 반대로 너무 도출해 내기 어려운 주제일 경우엔 이런 선입관이 더 깊게 작용하게 되는데, 일반적인 경우 이런 주제의 결론은 아무리 잘 된 경우라도 고작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정의란 무엇입니다'라고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렸을 때 '그 정도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잖아'라고 너무 쉽게 예상되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도 무언가 큰 가르침을 얻기 보다는 그저 과정을 즐기는데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이번 마이클 샌델의 '정의' 역시 그 토론 과정과 방법론에 주목하며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이 강의는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는게 중요하다).
그렇게 주제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자세로 보게 된 마지막 강의. 지금까지 거의 자신의 주장은 펼치지 않았던 (펼치더라도 마이클 샌델로서 하기보다는 다른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하던) 마이클 샌델은 드디어 '정의'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역설이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원화 사회로 각각 추구하는 선의 가치가 다른, 그래서 정의라는 것에 정의도 저마다 다를 수 밖에는 (틀린 것이 아닌) 사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의란 이런 것이라고 하나의 가치관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실 여기서 나는 크게 한 방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나만의 가치관이 정립된 이후부터 줄 곧 누군가와 의견을 나눠야 할 일이 있을 때, 대부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왔었다. 물론 이런 중립적 태도는 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는,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 만은 없다는 (내가 나의 주장을 옳다고 믿는 것처럼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전재 하에)것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면서 갖게 된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 이런 중립적인 태도는 마이클 샌델이 마지막 결론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상대의 대한 이해에 근거하기 보다는 회의적인 입장으로 인한 결과일 때가 더욱 많아졌다. 간단하게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토론을 벌이다가 상대가 절대 내 의견을 이해하지 못한 다거나 합의점이 보이지 않을 경우 회의적인 태도로 '이 토론은 끝날 것 같지 않다'라는 마음에 중립적인 것으로 마무리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토론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아, 이 상대와는 어차피 생산적인 토론이 불가능해' '서로 마음만 상할거야'라는 생각에 애초부터 회의적 중립 태도를 갖게 되곤 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중립적 태도란 것은 허울 좋은 '중립'과 '이해' 일 뿐, 사실 회의적이고 외면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회사에서 일 적인 주제로 혹은 그 밖의 여러 주제들로 의견을 나눌 때, 나는 언제부턴가 처음부터 중립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나는 언제부턴가 중립에 서야만 한다는, 그래서 전체적인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내 의견보다는 소수에 서서 그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겠다는 마음에 (여기에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일종의 희열 탓도 있었다), 무엇이 옳은 가에 대한 문제는 종종 뒤쳐지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마지막 강의를 통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외면하지 말아라' '외면하지 않고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정의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라고. '외면하지 말라'는 그의 결론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중립이라는 허울 좋은 방법을 앞세워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 본심이야 어찌되었든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면 좀 더 편한 생활을 영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끊임없이 정의에 가까워지기 위해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은, 훨씬 더 귀찮고 번거로우며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강의가 내 이성에 작지만 실천을 가능케 하는 가르침을 주었다.
'외면하지 말라'
'그것이 정의에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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