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

3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감독판



이미 지난 11월 개봉해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로는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는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 무려 50분 분량이 추가 된 '디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의 감독판으로 다시 개봉했다. 만약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고민할 것 없이 '디 오리지널'을 선택했을테지만, 이미 2시간 10분 버전의 '내부자들'을 보았고 아주 만족하지는 않았던터라 이 감독판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들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극장을 잘 못 찾아가서 시간이 되는 영화를 고르다보니)결국 이 3시간 분량의 감독판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부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는 지난 글을 참조하고, 이번에는 간단하게만 소감을 추가하고자 한다.




내부자들 _ 뜨거운 연기로 살려낸 암울한 현실 -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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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가 된 분량의 대부분은 안상구 (이병헌)와 이강희 (백윤식)에 관한 내용으로 특히 안상구가 어떻게 이강희를 형님으로서 믿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었고, 이강희를 중심으로 한 조국일보의 기획회의 부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일반판을 보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내러티브에 대한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는데, 충분한 시간을 부여 받은 감독판에서는 이러한 부족한 점이 확실히 보완된 느낌이었다.


2. 전체적으로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높아지다보니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은 물론, 이미 그 가운데 2시간 10분의 내용을 보았음에도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오프닝을 조상구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한 것이 좋았고, 추가된 장면에 권력자들의 과한 접대 장면이 더 추가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했기에.


3. '디 오리지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조국일보를 배경으로 편집위원(?) 5인이 참여하는 기획회의 혹은 밀실회의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본편에서 아예 빠져 있던 시퀀스였는데, 그렇다보니 여기에만 등장하는 배우들은 아예 첫 출연이나 다름 없었다. 이 중에는 동룡이 아버지이자 학주 역할을 맡았던 유재명 배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명백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오마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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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메시지가 더 직접적이었다. 이전 리뷰를 하면서 말미에 '과연 우장훈이 강 건너로 가지 않을까?'라고 했었는데, 이번 감독판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이강희의 전화 통화 장면이 추가되었는데, 여기서 더 직접적으로 암울한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들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이 마지막은 아마 '내부자들'이 가장 말하고자 했던 추악한 현실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5. 감독판에서도 달라지 않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병헌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끝내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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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습니다


출시가 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뒤늦게 소개하게 되었네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2011년 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블루레이가 국내에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국내 협소한 시장 탓에 하마터면 출시가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프리오더 후반부에는 더 적극적인 판매가 이뤄지면서 무리 없이 발매될 수 있었네요. 개인적으로도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해외 판 구매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라이센스 반으로 출시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블루레이에도 제가 제작에 조금이나마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위주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로 꾸민 전면과 영화 속 '서커스'의 문장을 담은 후면 디자인 입니다. 게리 올드만이 서 있는 저 이미지를 참 좋아하는 터라, 블루레이의 커버도 만족스럽네요. 심플하니 좋습니다.






투명 케이스로 제작된 블루레이 타이틀 내부에는 디스크와 함께 라이센스 블루레이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소책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소책자를 포함했을 경우 아웃케이스를 만들어 외부에 수록하는 방식을 택했었는데, 근본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케이스의 비닐이 우는 문제가 발생하여 이번에는 내부에 소책자를 포함하는 형태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대신 소책자의 사이즈는 조금 작아진 편입니다. 오히려 좀 더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에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한 점은 제 글이 실린 것 보다도 두 감독 님의 멋진 추천사가 포함된 것인데, 굉장히 촉박한 일정으로 부탁을 드렸었는데 흔쾌히, 그것도 짧게 써주신다고 해서 정말 한 문장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 추천사를 써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또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 님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연락하게 되었는데, 처음 박감독 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ㅎㅎ 또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현재 차기 작 자료 조사 중이시라 바쁘실 텐데, 긴 추천 글은 물론 박찬욱 감독 님과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신 저의 절친(?) 이고 싶은 류승완 감독 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번 '베를린' 인터뷰 차 뵈었을 때 감독 님이 팅테솔을 참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부탁 드렸었는데, 바쁜 일정에도 멋진 글을 보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곧 '베를린' 블루레이가 출시될 예정인데, 그 때 '베를린' 블루레이를 들고 다시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그 날이 기다려지네요~






이번 소책자는 제가 참여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깨알 같은 읽을 거리 들이 제법 있습니다. 오히려 이미지 컷들보다도 읽을 거리가 많은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또 한 번 영광스럽게 제 글도 소책자에 수록이 되게 되었습니다. 국내 정식 출시된 블루레이에 제 글이 수록된 것이 이번이 아마도 일곱 번째 인 것 같은데, 모두 다 제 돈을 들여서라도 참여하고 싶었던 작품들이라 참여하는 자체가 몹시 뿌듯한 프로젝트 들이었습니다. 이번 '팅테솔'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누군 가는 이렇게도 보았구나'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씩 읽어봐 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는 화질과 사운드, 그리고 소책자는 물론 기존 극장 판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오역이 모두 수정된 버전이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분들이라면 전혀 다른 영화를 보시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여러 번의 중역과 번역, 검수를 통해 탄생한 완성도 높은 자막 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수록한 블루레이 타이틀 발매 소식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결산] 2012년 상반기 영화 베스트 10



매해 템플릿처럼 이 맘 때면 반복하는 말이지만 2012년이라는 숫자가 아직 다 익숙해지기도 전에 7월이 훌쩍 다가와버렸다. 올해 상반기에도 참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들을 극장을 통해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처음부터 아주 큰 기대를 했었던 영화도 있었고, 전혀 예상치 못했으나 큰 감동을 준 작품도 있었으며, 볼 계획이 없던 영화였으나 보고나서는 안봤으면 어쩔 뻔 했을까를 되내였던 작품들도 있었다. 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10작품을 꼽아보았다. 10작품 가운데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개봉일 순이다.



1.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올 상반기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근사하고 우아한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TTSS였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배우들의 향연들 만으로도 황홀한데, 스파이라는 존재를 그리는 이 방식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제 내게 스파이하면 이던 헌트 만큼이나 조지 스마일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올해의 엔딩곡 후보.

 

 

 

 

2.

 

 

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스필버그의 오랜 팬으로서 물론 재미나 감동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워 호스'의 감동은 그 크기가 달랐다. 복잡한 얘기도 없고, 신파적이고 우직한 이야기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나를 이토록 많이도 울렸다. 올해 상반기 극장에서 흘린 눈물 가운데 양으로만 따지면 '워 호스'가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다 (극장에서 잘 우는 내 특성상 올 연말에는 꼭 눈물양으로만 순위를 한번 따져봐야 겠다;;).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설명하는 것에는 이제 지쳤다.

 

 

 

 

3.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것처럼, 조지 클루니가 왜 멋진 배우인가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알렉산더 페인과 만난 조지 클루니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 '디센던트'는 시간을 두고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30대 초반에 본 '디센던트'와 40대가 되어서 보게 될 그리고 50대가 되어서 보게 될 '디센던트'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11

블루레이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41

 

 

4.

 

 

크로니클 (Chronicle, 2012)

소년이여, 진짜 영웅이 되어라

 

 

27살 신예 감독 조슈아 트랭크의 '크로니클'은 지난해 '드라이브' 처럼 올해의 복병이었다. 그냥 재치있고 신선한 시도 정도로 머물러도 괜찮았을 텐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담론의 세기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주인공 앤드류 (데인 드한)는 올해 상반기 극장에서 만난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나를 뜨겁게 만든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아직도 후반부 앤드류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할 정도로 에너지가 대단했던 영화.

 

 

 

 

5.

 

 

건축학개론 (2012)

나의 첫사랑과 90년대에게 바침

 

 

'건축학개론'은 하마터면 극장에서 놓칠 뻔한 영화였다. 개봉 첫 주에 봤으니 시기적으로 놓칠 뻔했단 얘기가 아니라 볼 생각이 그리 많지 않았던 영화였단 얘기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난 뒤 '건축학개론'은 올해 상반기 본 영화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영화가 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극중 주인공들과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고, 정말 놀랍도록 닮아있는 나의 첫 사랑과 90년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안에서 수지가 연기한 '서연'을 보게 되어 벅찼던 영화가 아니라, 승민(이재훈)과도 같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어 더 움찔하게 되었던 영화.

 

 

 

 

 

6.

 

 

어벤져스 (The Avengers, IMAX 3D, 2012)
올스타전이 주는 쾌감

 

 

'어벤져스'는 일단 기다려온 시간 만으로도 10작품 안에 들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각각의 캐릭터를 하나씩 즐겨왔던 지난 몇 년. 드디어 시작된 올스타전은 올스타전에 걸맞는 매력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비슷한 프로젝트가 많이 무산되었던 것에 미뤄봤을 때, 이 정도의 프로젝트가 실제로 실현된 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7.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우울함은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나 있을까 살짝 걱정도 했었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과연 압도하는 작품이었다. 얼마나 압도 당했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 동안 좌석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겪는;;). 혹자는 라스 폰 트리에를 일컬어 너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는 것에 대해 이런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 보기는 정말 힘든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또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8.

 

 

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다른나라에서'는 홍상수의 전작들과 미묘하게 닮아있으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유쾌함과 아이러니, 가능성과 희망을 모두 우연인듯 조율해낸 홍상수의 장기는 이자벨 위뻬르라는 배우를 통해 또 한 번 표현되었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멋진 작품을 이렇게나 꾸준히 만들어주는 홍상수 감독에게 감사할 뿐이다. 아, '판타스틱'한 유준상의 영어 대사 역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9.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근원에 대한 선문답

 

 

논란 아닌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나는 리들리 스콧의 방식을 굳게 지지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진정한 메시지는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작품이 관객에게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가장 효과적이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블루레이를 어서 보고 싶은 이유도 다시 한번 이 작품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이지 답을 듣고자 함은 아니다.

 

 

 

 

10.

 

 

두 개의 문 (Two Doors, 2011)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접 확인하라

 

 

아마도 '두 개의 문'을 보지 않은 이들은 올해 상반기 베스트 10에서 이 제목을 보고서는, 작품이 갖은 사회적 메시지 때문에 상징적으로 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용산참사를 기록한 '두 개의 문'은 당당히 영화적 완성도 만으로도 올해 상반기 10작품에 꼽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오히려 더 많은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다큐멘터리라면 '두 개의 문'처럼 영화적 완성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경우이기도 했다. 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지금 바로 상영관을 찾아 관람하길!

 

 

 

 

 그 외에 10작품에는 꼽지 못했지만 이 안에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좋았던 영화들로는,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카메론 크로우의 '우린 동물원을 샀다', 미셸 아자나비슈스의 '아티스트',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 데릭 시안프랑스의 '블루 발렌타인' 등이 있었다.


올 하반기에도 이번 달 개봉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비롯해, 더 많은 좋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르카레의 원작 소설 팬들에게는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되는 바였겠지만, 역시나(?) 원작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렛 미 인'을 연출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신작이라는 사실과 게리 올드만, 톰 하디, 존 허트, 콜린 퍼스, 토비 존스, 마크 스트롱, 시아란 힌즈 그리고 최근 셜록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출연진에 도대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파이 영화라고 했을 때 혹자는 '누가 스파이인가?'를 찾아내는 반전 영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이하 TTSS)'는 결코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냉전 시기 유령처럼 활동하던 스파이라는 존재를 작전의 역동성이나 활동성으로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한 스파이가 조직 내의 이중 스파이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 시대의 산물인지를 그 시대와 함께 아주 덤덤하게 그려낸작품이었다. 많은 스파이 영화와는 달리 그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애잔한 시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야 말로 TTSS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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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혹은 쫓겨난)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 (게리 올드만)는 조직 내에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고는 조용하고 빠르게 이중 스파이를 찾아나선다. 영화는 스마일리가 이중 첩자를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기는 하지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조지 스마일리로 대변되는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한 묘사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쓴다. 그의 회상을 통해 그 동안 이 인물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묘사하는데, 이것 역시 양면의 활용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역시 '스파이'와 '세계' 그 자체다. 사실 나도 영화 감상 초반만 해도 일반적인 스파이 영화를 볼 때처럼 온몸에 감각을 최고로 곤두세운 상황에서 모든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점점 영화가 전개될 수록 단서보다는 '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클래식한 당시를 디테일하고 고풍스럽게 묘사하면서도 톤을 다운시켜 전반적으로 마치 추운 겨울 입 밖으로 내뱉는 차가운 입김처럼 싸늘한 공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서늘함은 곧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연결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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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영화 정말 쓸쓸하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같은 편에 서있던 그렇지 않던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관객은 받게 된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스파이로서 이러한 외로운 존재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듯 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든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사력을 다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기 보다는, 마치 이 외로움을 누군가 끝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내 뿜는 공기는 주변의 것보다도 차가워 보였고, 홀로 남겨진 그들의 눈빛은 누구보다 애처로워보였다. 시종일관 이러한 분위기를 머금기만 해오던 영화는 종종 이를 분출하기도 한다. 주변을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연인과의 관계를 마무리하고 연인이 떠난 뒤 홀로 오열하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죽음으로 종결시켜주길 바라는 이나 그런 연인의 바램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는 이의 '눈빛'은 다른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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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마찬가지로 스마일리가 이중 스파이를 찾는 과정은 마치 자신이 걸어온 스파이로서의 삶을 반추하며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되짚어가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스마일리가 카를라(칼라)와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를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명장면으로 꼽는 이 장면은 회상 장면임에도 플래시백 없이 그저 현시점에서의 대화만으로 묘사되는데, 그럼에도 이 장면은 가장 소름돋는 '회상' 장면이자 간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이 대화, 아니 회상 시퀀스에도 역시 TTSS만의 쓸쓸한 정서가 담겨있는데, 단순히 경지에 오른 강호의 고수가 또 다른 고수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이 아닌, 냉전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스파이라는 세계에서 서로를 인정함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로 인해 영화가 시종일관 말하려고 하는 '스파이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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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된 것에는 역시 스마일리를 연기한 게리 올드만의 영향이 컸다.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에게 연기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그는 조지 스마일리를 통해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리뷰 중간중간 포함된 스틸컷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게리 올드만이 창조한 '조지 스마일리'는 절제로 가득 덮혀 있음에도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 글에서 여러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냉전의 시대보다도 더 차갑고 쓸쓸한 스파이라는 존재를 묘사하는데에 있어 스마일리의 그 표정없는 얼굴은 정말 효과적인 거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미지도 잘 어울렸다. '셜록'과는 묘하게 차별되면서도 이미지로서 전달하는 바가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콜린 퍼스는 주연으로 홀로 나설 때보다 이렇게 여러 캐릭터에 섞여 있을 때 더 큰 매력을 발산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고, 마크 스트롱의 그 눈빛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못 잊을 이미지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비중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와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로이' 역의 시아란 힌즈의 이미지도 인상적이었으며, 톰 하디와 존 허트, 스티븐 그레헴 등 좋은 배우들의 멋진 이미지가 영화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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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일반적인 영화가 스파이를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함으로서, 오히려 가장 스파이 영화다운 작품이 되었다. 이던 헌트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좋지만, 조지 스마일리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1.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정말 정말 탁월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지금까지 도대체 몇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2.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를 보고나면 크게 다시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곤 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기회가 된다면 BBC에서 제작한 알렉 기네스 주연의 TV시리즈도요.


3. 색감과 질감에 반한 탓인지 블루레이 출시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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