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거 빙벽 (The Eiger Sanction, 1975)
이스트우드의 산악 첩보 영화
현존하는 배우 출신 감독 가운데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최고이며, 그냥 감독으로만 보아도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특별전을 (거기다가 스필버그와의 조인트 기획전이라니!)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갖는 다길래, 별로 주저하지 않고 부산행을 택했다. 이번 특별전은 이스트우드와 스필버그의 초기작 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는데, 이스트우드의 작품 가운데는 이 작품 '아이거 빙벽 (The Eiger Sanction, 1975)'을 보게 되었다. 예전 DVD로 얼핏 본 것 말고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대형 스크린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기회를 얻은 것 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 The Malpaso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존 웨인, 존 포드의 서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곳. 역시 서부 영화가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트우드는 이 곳을 굉장히 비중있게 담아낸다)
'아이거 빙벽',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아이거 제재'라고 번역해야 할 텐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현재는 교수로 지내고 있는 전직 요원 조나단 햄록 (클린트 이스트우드)이 마지막 임무 (임무가 바로 아이거에서 상대를 제재 = 암살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냉전 시대의 첩보물을 기본으로 산악 액션 영화가 가미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전체적으로 보자면 지금의 이스트우드 작품의 완성도에는 많이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은 엿볼 수 있었다. 일단 오프닝 시퀀스는 지금봐도 멋스럽고 두근거릴 정도로 참 매력적이었다. 최근 본 영화 가운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오프닝이었는데, 그 음악과 더불어 (이 영화도 그렇고 당시의 영화들은 참 영화 음악이 좋다) 별다른 설명이나 부가적인 장치 없이도 영화의 분위기를 절제하며 표현해내는 머진 오프닝이었다.
ⓒ The Malpaso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사실 내용이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데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극중 햄록이 요원으로 복귀하기 위해 다시 '수련'을 하는 시퀀스였다. 요새 요원 영화들 보면, 전직 요원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단숨에 전성기 때로 복귀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걸 많이 봐서 인지, 이런 제법 오랜 분량을 투자하는 준비의 시간이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정말로 그냥 준비를 좀 해야겠어, 정도가 아니라 제법 오랜 러닝타임을 할애하여 이 준비와 수련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에는 냉전과 첩보가 깔려 있지만 (극중 햄록은 여러차례 친구냐 적이냐 를 구분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따지고보면 중반부를 넘기까지는 이 수련의 과정 속에 소소한 작은 실마리들이 진행되고 후반부에는 아이거 빙벽을 등반하며 산악 액션 영화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지금이야 '클리프 행어'나 '얼라이브' '버티칼 리미트' 등 눈 내리는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산악 액션 영화들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바로 이런 영화들에서 보여준 장면이나 설정 등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영화 '아이거 빙벽'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왜 있지 않나, 산악 액션 영화에서 꼭 나오는 장면들. 뻔히 알면서도 놀라게 되는 아찔한 순간들.
ⓒ The Malpaso Company..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아이거 빙벽'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배우가 바로 보네타 맥기 (Vonetta McGee) 였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엇, 저렇게 세련되고 현대적인 배우가 당시에 있었다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묘한 매력을 (그 미소를) 갖고 있는 배우로 한 눈에 들어왔다. 태라지 P.헨슨 (Taraji P. Henson)을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훨씬 매력적인 이목구비와 미소는 그녀의 다른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네요 ㅠ).
ⓒ The Malpaso Company.. All rights reserved
1.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스턴트 장면들을 대역없이 소화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마치 성룡 영화에서나 볼 법한 카메라 앵글이 자주 등장합니다. 즉, 이게 배우가 직접 연기한 것이라는 걸 관객에게 어필하는 카메라 워크 말이죠.
2. 확실히 예전 작품이라 이스트우드의 편협된 가치관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시각)이 더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Malpaso Company 에 있습니다.
'개봉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링컨 뱀파이어 헌터 _ 흥미로운 소재 그 이상은 역부족 (1) | 2012.09.03 |
---|---|
슈가랜드 특급 _ 감독으로서의 야심이 느껴지는 스필버그의 데뷔작 (0) | 2012.08.29 |
토탈리콜 _ 미래로 간 조폭 마누라 (5) | 2012.08.23 |
이스트우드와 스필버그의 초기 걸작을 만나다 (0) | 2012.08.22 |
대학살의 신 _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 (0) | 2012.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