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음악을 즐겨 들은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번 앨범을 받아들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왜 그 동안 히라이 켄의 앨범을 단 한번도 제대로 들어보려고 시도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었다. 차라리 그 이름을 몰랐다면 얘기가 될 텐데, 히라이 켄이라는 이름은 매우 자주 들어왔었고 지인 가운데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이도 있었을 정도로 가깝다면 가까운 아티스트였는데, 왜 그랬는지 별로 제대로 들어보려고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굳이 그 이유를 떠올려보자면 아마도 그가 흔히 말하는 '발라드' 가수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텐데, 아무래도 일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주된 이유가 록 음악이었다보니, 그리고 그 이후에 좋아하게 된 뮤지션들은 거의 다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아니면 블랙뮤직을 주로 하는 팀들이다보니 점점 히라이 켄과는 멀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서야 들어보게 된 히라이 켄의 음악은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짐작해오던 그런 '발라드'는 아니었으며 (절대 발라드를 폄하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남자가 들어도 달콤한 (각트처럼 느끼하지 않고 달콤한) 보이스는 특히나 커버 곡으로 이뤄진 앨범 'Ken's Bar'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앨범 속지의 해설서에 따르자면 이 'Ken's Bar'란 프로젝트는 실제 히라이 켄이 지점장 겸 보컬을 맡고 있는 라이브 까페에서 벌어지는 라이브이자 'Bar'이며, 입소문이 커져 극장 라이브로 발전되기도 했고, 2003년에는 'Ken's Bar'의 컨셉을 하나로 엮은 음반을 이미 발매하기도 했으며, 이번에 발매된 앨범은 그 2탄 겪으로서 Ken's Bar의 개점 1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많은 뮤지션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게 되면 커버 곡으로 (리메이크 곡으로) 이루어진 컨셉 앨범을 종종 내곤 하는데, 대부분이 상업적인 성격이 짙거나 앨범의 완성도보다는 그저 자신의 팬들만을 위한 성격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 이 앨범의 성격을 알게 되었을 때 큰 기대를 갖지는 않았었는데, 막상 들어본 'Ken's Bar'는 왜 이 프로젝트가 많은 일본인들과 음악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절로 알 수 있는 매력적인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커버 곡으로 이뤄진 앨범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두 가지를 고르라면 하나는 보컬의 역량이 될 수 있겠고, 다른 하나는 곡의 해석을 어떻게 달리하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성공한 리메이크 앨범의 경우 완전히 장르를 파괴하여 자신들만의 것으로 곡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좀 더 많다고 할 수 있을텐데, Ken's Bar는 이런 케이스가 아니라 보컬의 역량에 좀 더 촛점을 맞춘 프로젝트라 하겠다. CD플레이어에 CD를 넣고 처음 히라이 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기존에 잘 알고 있던 곡이라 하더라도 그의 보컬이 곡을 압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는 어떨 때는 송가처럼, 어떨 때는 러브 송처럼 가슴 깊은 곳을 이른바 '후벼 파는' 감성적인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잘 알고 있는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특별한 곡해석 작업이 없었음에도 보컬 만으로 곡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트로와 경음악 트랙을 지나 그의 보컬을 만나볼 수 있는 첫 번째 곡 'New York State of Mind'는 이미 수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이미 익숙해질 만큼 불려진 곡이지만, 독특한 미성의 히라이 켄의 목소리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다. 4번째 곡 '僕がどんなに君を好きか、君は知らない (내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너는 알지 못해)'를 듣고 있노라면 장소가 어디든 그 차분함과 따듯한 분위기에 금새 빠져든다. 다른 곡들을 듣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 앨범은 듣고 있는 그 장소를 한껏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5번째 곡은 하마사키 아유미의 곡으로 더 유명한 'Love ~Destiny~'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히라이 켄 보컬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듯 악기의 사용이나 추가 장치들은 가능한한 배제하고 있는데, 이 곡 역시 피아노 반주 만이 그의 목소리를 받쳐줄 뿐이다. 6번째 곡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Eagles의 명곡 'Desperado'이다. 개인적으로 데스페라도는 너무 많은 뮤지션의 너무 많은 버전을 겪은터라 신선함이 확실히 덜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




역시 너무나도 유명한 'Moon River'를 지나면 Neyo의 곡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모았었던 'Because of You'가 히라이 켄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편곡된 'Because of You'는 네요의 느낌과는 또 다른 담백하면서도 히라이 켄의 보컬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워낙에 원곡이 좋은 탓도 있겠지만, 히라이 켄의 애절한 보컬과도 잘 어울리는 듯 했다. 일본 공연시 게스트로 출연한 적도 있었던 스티비 원더의 곡 'Lately' 역시 히라이 켄 같은 보컬이라면 한 번쯤 불러볼 만한(도전해 볼만한) 곡이라고 생각된다. 원곡보다는 훨씬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로 편곡된 것이 이채로웠다. 이 이후로도 정말 'Ken's Bar'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몸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게 될 만큼 편안한고 아늑한 그의 곡들이 더 수록되어 있다.




히라이 켄의 Ken's Bar를 듣고 난 가장 첫 느낌은 '참 따듯하다'와 '참 편안한다'라는 것이었다. 정말 부담없이 한 낮 햇살 가득 내려 쬐는 방안에 홀로 앉아 듣고 싶은 앨범. 바람이 살랑살랑 머릿 결을 스치는 공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듣고 싶은 앨범.

아, 그리고 언제 한번 그의 바에 놀러가서 히라이 켄과 함께 차 한잔, 맥주 한잔 하며 듣고픈 앨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본문에 사용된 앨범 자켓 사진은 모두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으며, 리뷰를 위해 인용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