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신보란 신보는 모조리 다 들어보고, 혹은 들어보지도 않고 구매하고, 혹은 구매하고도 들어보지 못할 정도로 음반 속에 파 묻혀 살 때가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요 근래는 죽고 못살던 밴드의 신보마저 발매 당일이나 언저리에나 알아차릴 정도로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여도 기존에 좋아하던 뮤지션들의 앨범은 어찌 되었든 찾아 듣고 구매하곤 하지만, 이렇게 되다보니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것은 역시나 신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처럼 직접 옥석을 가려낼 시간이 없는 관계로 아무래도 누군가의 추천이나, 음반사에서 내놓는 유혹적인 홍보 문구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데, 'BBC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이라는 홍보 문구는 '어랏'하는 궁금증과 함께 한 번쯤 속는 셈 치고 들어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개인적인 음악 취향 덕에 'BBC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이란 문구보다는 'Pitchfork 선정 베스트 앨범'이 더 혹하기는 하지만, 아직 한 해가 반도 지나기 전에 (이 앨범의 발매시기는 올해 5월이다) '올해의 앨범'이라는 찬사를 보냈다는 것은 '어찌되었든' 이유는 있겠다 싶은 생각에 음반을 찬찬히 들어보게 되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음반 역시 듣기 전에 많은 정보를 미리 습득하는 편은 아닌데, 패션 핏(Passion Pit)의 앨범을 듣기 전에는 이들이 완전한 록 밴드인줄로만 알았다. 물론 라디오헤드(Radiohead)로 인해 록 밴드라는 정체성 자체가 아주 폭넓게 확장되기는 했지만, 추측하기로는 '악틱 몽키스 (Arctic Monkeys)'나 '필링 (Feeling)' 같은 밴드가 아닐까 무심코 생각했었으나 왠걸, '비치 보이스가 MGMT를 만났을 때'라는 앨범 속지의 설명처럼 신스팝과 일렉트로니카, 화려한 코러스라인 등으로 이뤄진 상당히 재기 발랄한 밴드였다. 간단하게 이들의 음악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장르적 매력을 담고 있는데, 꼭 하나로 뭉뚱그려야 한다면 '신스팝'이 가장 어울릴 듯 싶다. 사실 이런 요소들을 모두 수용한 음반들을 보면 비트 하나는 기똥 차더라도 멜로디 라인은 건질 것이 없다거나, 멜로디는 뽕짝 가요마냥 단 번에 기억되지만 비트는 심심하기 그지 없는 경우가 많은데, 패션 핏의 음악은 기똥 찬 비트는 물론 자신들의 말처럼 '멜로디 위주의 팝밴드'로도 손색 없는 멜로디 라인을 갖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미카 (MIKA)가 얼핏 연상되기도 하지만(아무래도 가성 때문에) 미카의 음악과는 또 다르다. 미카가 'Killer Queen'을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라면 패션 핏은 'Mr. Blue Sky'의 E.L.O에 가깝다.




첫 번째 트랙 'Make Light'부터 패션 핏은 확실히 '달려'준다. 반복적인 베이스 라인을 깊게 깔고 성별을 알기 어려운 가성과 점진적으로 울려대는 비트는, 패션 핏의 음악을 처음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중반부 부터 베이스 라인과 함께 이어지는 여성 코러스라인도 복고스러움 가득함이 인상적이다. 'Little Secrets' 도입부에 들려주는 완연한 신스팝 사운드와 그루브 넘치는 스내어는 또 다른 느낌이다. 복고적인 사운드들이 많이 사용되긴 했지만 단순히 복고적이라고 보긴 어려운데 아마도 그루브 넘치는 리듬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 목소리처럼 들리는 후반 부의 코러스는 마치 'Go! Team'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The Reeling'에서 들려주는 사운드는 또 완전 일렉트로니카다. 다른 곡들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패션 핏의 음악은 틀언 놓고 마냥 춤추기에도 더 없이 적절한 앨범이지만 소리 하나하나를 귀기울여 들으면 참 '재미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The Reeling'은 뭐랄까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절로 뮤직비디오 한 편이 머리 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Eyes in Your Hands'의 도입부는 평범한 록음악 같은데 중반부 부터는 마치 이들이 심하게 장난을 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하이라이트의 '나나나나나나~' 하는 코러스를 듣고 있노라면 그 어느 러브 송 못지 않은 감정도 느낄 수 있다.

'Swimming in the Flood'는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의 비트와 극적인 요소를 잘 담아내고 있으며, 박수 만으로도 바로 비트를 타게 되는 'Folds in Yours Hands'는 앨범 내내 보여준 패션 핏의 밀고 당기기를 다시 한번 유감없이 들려주는 곡이다. 이 곡의 후반부는 한창 일렉트로니카가 유행할 때 클럽에서 가장 성행하던 그런 비트와 흥분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앨범 후반부에 가면 아무래도 전반부 보다는 조금 더 실험적인 비트와 악기 사용을 살펴볼 수 있는 곡들이 많다. 앞선 곡들도 충분히 좋지만 후반부를 채우고 있는 이런 곡들은 좀 더 패션 핏이라는 밴드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은 화려한 듯 하지만 그 내면에는 소박함이 엿보이는 패션 핏의 'Manners' 앨범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본문에 사용된 앨범 자켓 사진은 모두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으며, 리뷰를 위해 인용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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