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로 본 경기는 모두 단평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바빠서 못했었는데, 앞으로는 짧게라도 하나씩 해야겠어요;;;)

대한민국 1:4 아르헨티나

1.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 전은 두 팀 모두 그리 잘한 경기는 아니었다. 특히 전반전 내내 두 팀의 몸은 몹시도 무거웠으며, '과연 이 팀이 그리스를 2:0으로 꺽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경직된 경기를 보였고, 다른 한 팀도 '과연 이 팀이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즉, 어느 한 팀이 잘해서 승부가 난 경기라기 보다는 다른 한 팀의 실책과 잘못된 전술이 승패를 가린 경기였다.

2. 일단 대한민국의 가장 큰 잘못은 전술이었다. 개인적으로 어제 경기 4골의 대부분은 오범석이 관여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범석 기용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전부터 이 포지션은 차두리, 오범석 중 누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러니까 누가 딱히 선발이라고 꼬집어 얘기하기 어려운 경쟁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전 차두리의 활약이 몹시 뛰어났기 때문에 (감독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차두리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오범석을 선발로 내세운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는 전술이었다.

3.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전반전 오범석의 플레이는 사실 최악이었다. 골을 내준 파울에도 가담, 전체적으로 완전히 얼어있는 몸상태는 메시를 비롯한 아르헨티나의 돌파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를 파악한 아르헨티나는 만만치 않은 이영표의 라인 대신 오범석 라인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렇다면 허정무 감독은 후반에 오범석을 차두리로 교체했어야 했다 (이후 염기훈과 더불어 다시 얘기하겠지만, 전반전을 본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후반시작과 동시에 혹은 후반 초반에 오범석을 당연히 차두리로 교체할 것으로 예상했을 정도다). 후반 오범석의 플레이가 좋아졌다는 평들도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후반 내준 2골 역시 모두 오범석의 실책성이었다. 메시를 따라다니느라 아게로를 노마크 상태로 둔 것이 오범석이었고, 아게로에게 대응하는 수비도 전혀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안이 없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전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가 벤치에 있었음에도 끝까지 오범석을 고집한 것이 아르헨티나 전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

4. 박주영의 자책골은 좀 더 집중력을 가졌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지만 (슬로우 비디오였음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골문으로 들어가는 골을 바라보았던 것으로 미뤄봤을 때, 순간 집중력을 잃었던 것 같다), 어쨋든 실수였다. 이 골로 분위기가 다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 추가시간 이청룡의 골로 거의 분위기는 다시 되돌린 상태였다.

5. 후반 이청룡의 기막힌 패스를 받은 염기훈의 슈팅은 분명 아쉬웠다. 오른발로 찼어야 한다는 말이 많은데, 물론 그 편이 더 맞지만 왼발이 익숙한 염기훈에게는 아웃사이드로 툭 방향을 바꾸는 정도로 차야지 했던 것 같다. 본인도 몹시 아쉬워 할 정도로 이 장면은 실제로 경기 양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염기훈의 경우 더 빠른 교체를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6. 누가 봐도 염기훈이 골찬스를 놓친 이 장면은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축구팬이나 해설자는 이 장면을 가지고 안타깝다고 말할 수 있으나, 경기 후 바로 갖은 인터뷰에서 감독이 공식 인터뷰를 통해 염기훈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그 장면이 아쉽다고 얘기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 장면이 안타까웠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팀을 이끄는 감독이 나서서 '얘 때문에 졌다' 식의 발언이 과연 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염기훈 선수는 안그래도 괴로울 텐데 감독이 끝나고나서 콕 찝어 특별히 따로 얘기해주니 그 심정이 또 어땠을까. 4-1의 큰 스코어 차이로 졌음에도 거의 '우리 선수들은 다 잘했다' 라는 식으로 얘기하다가 염기훈만 콕 찝어 얘기한 것은 분명 감독으로서 실언에 가까운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아직 우리의 월드컵은 진행중이 아니던가!

7. 그리고 후반 시작과 동시에 기성용을 김남일로 교체한 것도 사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기성용의 움직임은 전반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2-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보다 수비에 강한 미드필더로 교체한 것에 의미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김남일이 들어가고 나서 전체적으로 나아진 부분이 있지만, 그 반대로 기성용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더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그대로 든다. 물론 이것들은 다 if 라 의미가 없지만, 오범석이 교체되겠지...했는데 기성용이 나와버려서 놀랐던 건 사실.

8.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르헨티나가 그렇게 잘 한 경기는 아니었다. 다들 메시의 플레이에 감탄하곤 하는데, 그간 프리메라리가에서의 경기라던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메시의 플레이를 본 이들이라면 사실 크게 놀랄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국 수비수 4~5사이에서 슈팅을 날리는 모습은 역쉬!). 오히려 이 날 굉장히 짧은 시간 임팩트 있는 활약을 보인 아르헨티나 선수라면 아게로를 꼽을 수 있을 듯. 혹자들은 아게로가 마라도나 감독의 사위라서 선발된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설사 아게로가 이혼할 지언정 아르헨 국대로 선발될 만한 실력은 충분히 갖춘 선수다 (물론 마라도나가 감독이라면 앙심을 품고 안뽑을 순 있겠다. 그리운 리켈메 ㅠㅠ)

9. 이 날 경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메시를 2,3명이 마크하겠다고 했었는데, 연막이었는지 실제로는 박지성을 전담마크 시켰다. 물론 박지성이 맨유 소속으로 바르셀로나의 메시를 챔스에서 전담 마크에 가깝게 수비한 적은 있었지만 (물론 이 때도 피를로의 경우처럼 100% 전담마크는 아니었다), 맨유에서의 그와 국대에서의 그는 큰 차이가 있다. 맨유에서는 박지성을 한 명 공격수의 전담 마크맨으로 붙일 수 있지만, 국대에서의 박지성은 누군가의 전담 마크 수비수보다도 더 큰 롤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박지성을 윙이 아닌 중앙으로 위치하게 하면서 수비가 약한 구티에레즈(참고로 아르헨 현 대표팀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대신 수비가 강한 마스체라노와 매치업이 이뤄지면서 박지성 역시 꽁꽁 묶여버리게 되었다.

10. 후반 10분을 남기고 경기장을 밟게 된 이동국 선수.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무대인데,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시간도, 팀의 의욕도 너무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나이지리아 전에서는 선발 혹은 어쨋든 출장할 가능성이 높은데, 워낙에 욕을 먹는 선수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10분 가지고 또 욕먹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쉴드 가동중입니다).

11. 아직 나이지리아 전이 남았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허정무 감독의 납득할 만한 전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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