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Memories Of Matsuko, 2006)
 
영화들 가운데는 개봉이전은 물론, 그저 누가 캐스팅되었다 혹은 이 얘기가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부터 무한한 기대를 갖고 보게 되는 영화들도 있고, 정반대로
아무런 기대도 없이 보게 되었다가 '과연, 이 영화를 놓쳤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오버스런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영화들도 있다.
 
이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아무런 기대가 없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장르라고 하니까,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저질 코미디는 아니라고들
하니까, 워낙에 새로운 일본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터니까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된 것을 사실이지만, 간단히 말해 그저 웃고 즐기러 극장을 찾았던 것이었는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재미와 감동과 여러가지 들을 느끼고 경험하게 된
정말, '이 영화를 놓쳤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전혀 오버스럽지
않을 정도의 멋진 영화였다!



본래는 무거운 분위기의 소설이었던 원작에 비해 이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리듬과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다. 물론 갈 수록 처절해지다못해 보기조차 힘든 마츠코의 일생의 불행은
그대로지만, 감독이 그리는 방식은 무거움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말처럼 슬픈 일을 슬프게 보이도록 강조해서
슬퍼지는 기법도 있지만, 슬픈 상황을 유쾌하게 그리면서 나중에 가서는 유쾌하게 그리는데로
보는 이가 슬퍼지도록 많드는 더 임팩트한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영화 속 마츠코의 일생은 그야말로 불행의 연속, 최악 그 자체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덮으려다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그 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며, 나중에는 본인에 대한 사랑마저
완전히 잃게 되어 삶의 의미를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마츠코는 TV연속극 주인공에게, 무대위에서 노래하는 가수에게 등
다른 인물과 다른 인생에 감정 이입을 하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고,
남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 되고마는(자신의 행복은 결여된채),
그러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게 된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 무거운 분위기를 100% 느낄 순 없지만,
이 이야기를 영화가 아니라 단순히 시나리오로서만 읽어보았어도
애인에게 매번 폭력을 당하고, 또 그 애인은 결국 보는 앞에서 자살을 선택하고,
나중엔 여기저기 이상한 곳에 엮이게 되어 인생의 최악의 경험들도 하게 되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고, 감옥에서 복역도 하고, 나중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고 만다는 이야기는, 사실 유쾌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초 암울의 무거운 이야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유쾌한 분위기와 다채로운 영화로 탄생시킨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아마도 영화의 곳곳에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음악(노래)들과 상영시간 내내 꿈꾸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던 독특한 영상미라 하겠다.
 
장르 특성상 뮤지컬로 분류될 만큼 이 영화에서 노래가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마츠코의 감정 변화가 대사 보다는 노래로서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되며,
빠르게 설명되어 지는 마츠코의 '일생'을 각 사건마다 함축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노래와 그 가사말듯이었다.
 
그리고 매우 놀랐던 것은 수록된 노래들의 장르가 비슷한 듯 하지만
팝, 동요, 엔카, 힙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장르로 그려지고 있으며, 겉핥기 식이 아니라
제대로 그 장르의 맛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놀랐다.
특히 감옥에서 펼쳐지는 힙합 곡 'What is a Life'는 인트로 부분에서 죄수 복을 입은
여죄수들을 훑어내려가는 카메라 웍부터 고전 뮤지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도미노식 안무와
힙합 뮤직 비디오에서 자주보아왔던 형식의 영상들이 정말 놀라웠다.
아무래도 이런 영상이 가능했던 것은 수년간 CF감독으로 활동했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경력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노래들과 노래가 흐르는 부분의 영상이 더 돋보였던 것은
감독이 이 장면들에서 전형적인 고전 뮤지컬 영화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가씨와 건달들> <사랑은 비를 타고>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같은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노래를 주고 받거나 노래가 삽입된 부분에서 일정한 형식의 패턴이 존재하는데,
이런 부분들을 정확히 찝어내고 있기 때문에, 절로 웃음이 (웃겨서라기보다는 흥분되어서)
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그나마 최근 본 뮤지컬 영화 가운데 '프로듀서스'가 재미있었던 이유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영화의 주 모티브가 되었던 동요를 마츠코의 인생에
한 부분씩 함께 했던 인물들이 한 소절씩 나눠 부르는 장면에서는
<매그놀리아>에서 느꼈었던 전율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꿈꾸는 듯한 영상.
시작부터 지나치게 붉은 색감으로 시작된 영화는 시종일관 외곡된 색감과 뿌연 영상으로
진행되는데, 어쩌면 혐오스러울 정도로 처절한 마츠코의 인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주기 위한 배려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인생을 살아온 마츠코 자신이
항상 꿈을 꾸고 있음으로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종종 프랭크 밀러의 <씬시티>가 떠오르기도 했었는데,
나레이션도 그렇고, 만화같은 배경과 색감이 한 몫을 했다.
그리고 더 만화같은 하늘과 강 옆에 주욱 늘어선 그 길.
 
영화는 지워도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디즈니영화의 히로인이 실수로 다른 문을 열어버린다면 마츠코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라는
시점에서 영화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디즈니 만화에서나
볼법한 형형색색의 이미지, 또 '백설공주'가 숲속을 산책할 때나 봤던 것 같은
나비때도 그렇고, 동화적인 상상력이 극대화된 영상은 정말 지워지지가 않을 듯.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재미를 주려고 작정한 설정들이 몇가지 있는데,
사실 타이틀 제목이 나올 때 부터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흡사 <벤허>를 연상시키는 강조된 폰트로 뿌려지는 영화의 타이틀과 주연 배우들을
한 화면에 주루룩 나열하는 고전 스타일의 크레딧부터, 이 영화는 고전 영화의 특성들을
재미와 더불어 새롭게 승화시키겠다는 거침없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츠코가 교사이던 시절 강에서 배를 타고 학생들과 노래하는 장면은
누가봐도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TV에서 등장하는 '화요 미스테리 극장' '수요 미스테리 극장' '심야 미스테리 극장'등
제목만 바꿔가며 똑같은 낭떨어지 추격 설정을 보여준 것도 작정한 장면이었다 ㅋ



주연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에 대해서는 누구도 왈가와부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마츠코'라는 캐릭터 자체가 배우의 연기력을 극대화시킬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긴 했지만, 그녀가 보여준 연기는 러닝 타임 동안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전해줄 수 있는
수준급의 연기였다. <역도산>에서의 나카타니 미키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을만큼
완전 '마츠코'가 되어버린 그녀에게 더할나위 없는 찬사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뭐 마츠코를 제외하고는 가장 비중있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쇼'역할에는 에이타가
출연하고 있는데, <좋아해>나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임에도
영화에 너무 심취해버린지라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냥 '어디서 본 배우인데'하는 생각만 했었다니 --;
 
<허니와 클로버>에서 만났었던 이세야 유스케가 '류'역할로 등장하고 있고,
<워터보이즈> <일본침몰>에 등장했던 에모토 아키라 등 이외에도 몇몇 영화에서
얼핏얼핏 얼굴을 익혀왔던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시바사키 코우도 거의 단역에 가까운 분량에 출연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멀리서 첨 보았을 때는 주인공이 시바사키 코우인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만큼 나카타니 미키와 시바사키 코우가 닮은 듯 하다 ㅎ)
 
 
앞서 얘기한것처럼 단순히 웃고 즐기려는 편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가
매우 웃고, 매우 울고,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얻고 말았다.
일본 영화에 계속 관심이 가는 이유는 이 같이 새로운 스타일과 이야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더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이 영화를 놓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새겨본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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