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타카
2007. 11. 20. 13:18
2007. 11. 20. 13:18
우리 학교 (Our School, 2006)
현재 지구상에 '조선'이란 국호를 쓰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남조선'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음은 물론이요, 북한 역시 '조선'이 아니라
'북조선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기호상으로만 남아있는 통일 조선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재일동포사회에 존재하는 '조선학교'일 것이다.
이들은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바와 같이
남한에서는 이들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역시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나마 북한만이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지원금을 보내기 때문에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고향은 대부분이 남쪽이지만, 조국은 북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해보자면,
어찌보면 경제적으로 상황이 매우 어려운 북한에서도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남한 정부에서는 왜 이들을 아직도 남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예전 같으면 시대상황 등을 이유를 들어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어떤 이유로도 사실 타당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조선학교에서는 우리식으로 고등학교 3학년 졸업반이되면 그해 조국으로
수학여행을 딱 한 번 떠나게 되는데, 왜 남한으로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느냐는
감독의 물음에, 남한으로 가려면 대사관 등 여러가지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야하고,
달갑지 만은 않은 대접을 받는데, 그렇게 까지 해가면서 가야되는가 싶다는 선생님의 말에
더 안타까움이 더해질 수 밖에는 없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명준 감독이 3년간 홋카이도의 조선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사실적인 생활상을 직접 촬영한 것을 편집한 영화이다.
처음에는 남쪽에서온 이 낯선 감독에게 수줍음이 많은 어린 학생들도 별로 친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면서 '명준 감독' , '명준 오빠' 등으로 불릴 정도로
친숙한 관계가 되었다. 감독의 말처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내내 감독과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분단이라는 그늘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감독이 이를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던 때는
북으로 수학여행을 오르는 만경봉호에 함께 탑승할 수가, 접근할 수가 없었을 때
단 한 번 뿐이었다고 한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감독에게 뱃머리에서 '명준감독~'하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감독 자신만큼이나 보는 사람들도 감동적이었다)
재일동포사회의 문제에 관한 영화들은 이미 몇 차례 있어왔다.
<고 (Go)>나 <박치기>등을 보았다면 이 다큐멘터리 속의 이야기가
그리 어색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텐데,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이 두 영화와 같지만,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우리 학교>는 이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영화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이전 영화들을 볼 때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우리 학교>를 보고 난 다음에는, 현실적으로 내가 처한 환경에서 이 상황을 호전시키기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던지, 일본 우익들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던지 하는
감정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로 소박한 한 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있고,
일본 내의 조선학교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생기게 되는 많은 어려움들과
그 속에서 민족성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조선 학교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재일동포 사회까지.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했다가도 금방 눈물 짓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실 영화에서도 그렇고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렇고,
조금은 부족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지고 말았을 때, 그리고 그 때 그 구성원들이 패배에 슬퍼하는 순간을 담은 영상들은 많이 봐왔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조선학교 축구팀이 다른 일본 학교 팀에게 패배한 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에게 경기의 패배는 단순히 패배 이상에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눈물을 흘릴 때 차마 그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을 정도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들은 자신의 명예나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뛰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들 스스로가 축구가 최종 목표이거나 축구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 아이들도
아니었으나, 자신들이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 경기에 참가하고
여기에서 승리를 거둬서 재일 동포 사회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기 위해,
일종의 '책임감'에서 우러난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경기에 지고 난 뒤에도 한참을 그자리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때 함께 슬퍼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졸업식 장면에서도,
3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2시간이 조금 넘는 분량의 다큐멘터리였으나,
그 속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한 아이들이 졸업을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오랜 추억을 조금이나마 공유한 탓인지, 아이들이 '우리학교'를 떠나는 마음이
어떨지 조금이나마 이해한 탓인지 정말로 나오려는 눈물을 악을 쓰고 겨우겨우 참아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생님이 하신 말,
'힘들고 지칠 땐 언제든지 우리학교를 찾아오십쇼, 여기는 동무들의 영원한 모교입니다'라는 말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깟 생각은 절대 할 수 없게 만드는 너무나도 감동스런 한 마디였다.
재일동포 사회의 특수성과 그들만이 겪게 되는 어려움.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민족이고, 어쩌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도
더욱 더 한반도에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는 현실.
그리고 우리가 매번 소원을 이야기하라고 할 때 장난삼아 이야기하는 '조국 통일'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나에게도
감동과 눈물외에 여러가지 많은 생각할 거리와 행동할 거리를 전달해주었다.
철학적이고 인간적이고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면에 있어서도
참으로 할말도 생각해볼 일도 많은 영화이지만,
이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라도
꼭 다시 몇 번이고 극장을 찾아야겠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글 / ashitaka
** /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수히도 많았지만,
말로 하기 보단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그리고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을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