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도 언급하였듯이 그 동안 영화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장동건은 <친구>한 편으로 최고 흥행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 그가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이후 선택한 영화는 의외의 저예산 영화인 <해안선>이었다. 워낙 이전에 흥행참패를 많이 겪었던 이력이 있어서 인지, 장동건은 이른바 ‘떳을 때 바싹 버는’ 길을 버리고 김기덕 에게로 안겼다. 이러한 그의 모험아닌 모험은 일단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흥행과 비평은 제쳐두더라도 배우인 장동건을 위해서 말이다. 김기덕 감독은 <섬>, <수취인불명>등 이전 영화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한정된 공간과 분단 상황 등을 그려왔는데 이 작품 <해안선>역시도 한정된 공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감했었던 것처럼 거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같은 부담스러운 이야기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한 인간에 대한 고뇌와 고통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강한철 상병(장동건 분)은 해안경비대 소속의 군인이다. 그는 제대 날짜만 세고 있는 다른 군인들과는 다르게 임무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하고 반드시 간첩을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는 의지가 강한 남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술김에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왔던 근처에 사는 두 남녀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 간첩으로 오인한 강한철 상병은 무자비하게 남자에게 총격과 수류탄을 퍼붓는다. 하지만 상황종료후 이들이 간첩이 민간인임을 알게 된 강한철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고, 총살된 남자의 애인이었던 여인도 심한 정신적 충격에 늘 웃으며 근처를 떠돌게 된다. 정신적 이상으로 강한철 상병은 제대를 하지만, 사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는 다시 군복을 입고 해안선으로 돌아가게 된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리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그저 동정과 조롱을 받을 뿐이다. 그 자신은 임무에 너무도 충실한 탓이었지만, 출입금지 구역을 침범한 민간인을 사살한 죄책감과 충격은 한낱 표창장으로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조직에서 세뇌당한 이는 피해자로 평생을, 아니 일생을 마감하게 되고 우리는 그렇게 또 금방 잊고 만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 그리고 해안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설정은 한 인간의 심리극을 나타내기에 더할 나위없는 것 이었다. 또한 김기덕 감독 자신은 해병대 출신으로 이 같은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주인공 강한철 상병 외에도 상처받은 여인인 미영, 그리고 강상병과 동기인 병사, 그리고 미쳐버린 동생의 오빠. 이들은 자신의 의도였던 아니던 간에 모두 씻을 수 없는 분노와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러한 감정들은 어느 곳, 어느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낙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했던 여러 명의 군인들이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음모를 도모하는 장면은, 상처받기도 쉽지만 또한 무섭도록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록 영화는 대형 블록버스터 급 지원을 받지는 못한 저예산 영화였지만, DVD 타이틀은 다른 외국영화 타이틀들과 비교하여도 크게 뒤떨어질 것이 없는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일단 화질과 음질을 살펴보면, 1:85:1의 아나몰픽 화면으로 검푸른 바닷가와 우거진 수풀 등 배경 등을 깔끔하게 선보이고 있다. 섬세한 화면의 표현만큼 사운드 면에서도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데, 한 밤중을 빗발치는 총알 소리는 높은 분리도로서 실감나게 전달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DTS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다음은 서플먼트인데, 무엇보다도 반가운 서플먼트는 바로 김기덕 감독과 장동건이 참여한 음성해설이다. 딱딱하지 않고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의 음성해설은, 장면에서의 감독과 배우의 의도와 부가 에피소드 등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메이킹 필름에서는 ‘해안선 신병들의 지옥훈련’ ‘김기덕, 장동건의 이중주’ ‘넘어서는 안될 선’ ‘본격 심리 드라마’ ‘전쟁 없는 전쟁영화’란 제목들로 나뉘어 성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작과정을 전한다. 외국 타이틀들과는 다르게 자막이 아닌 성우의 목소리로 듣는 제작과정은 매우 흥미있는 요소라 하겠다. 이외에도 스틸 겔러리 에서는 노래 한 곡을 들으며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두 가지의 예고편과 TV 광고 장면도 수록되어있다.
타이틀의 메인화면에 등장하는 헤드카피문구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비약 해안선에만 머무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선은 표면적 해안선 보다는 내면적인 인간의 심리적 요소에 더 가깝게 닿아있는 듯 하다. 우리가 영화 속 상처받은 인물들을 보며 마냥 슬퍼할 수만 없었던 것, 그리고 극중 강한철 상병이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것, 이것들 또한 이 영화 속 에서만 머무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03.02.14
글 / 아시타카
'블루레이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몽키즈 _ What a Wonderful World (0) | 2007.11.26 |
---|---|
The Doors _ 살아있음을 기억하라! (0) | 2007.11.26 |
피아니스트 (Pianist) _ 생존에 관한 보고서 (0) | 2007.11.26 |
콘택트 (Contact) _ 펜사콜라, 그 곳에 가고 싶다... (1) | 2007.11.26 |
인디아나 존스 (Indiana Jones) _ 왜 기념비적인가? (0) | 2007.11.23 |